호주 남동부지역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이 국가재난 수준으로 격상됐다. 폭염과 강풍까지 겹쳐 이대로 가다간 최대 도시 시드니도 화마에 휩싸이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NSW)주는 11일(현지시간) 주 전역에 일주일 동안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시드니에도 재난 단계의 화재 경보가 발령됐다. 인근 퀸즐랜드주를 합쳐 지금까지 100건이 넘는 크고 작은 화재가 발생해 ‘재앙적 위험’에 직면했다고 외신은 보도했다. 미국 CNN방송은 “화재 연기가 바다 건너 뉴질랜드에서 보일 정도”라고 산불의 파괴력을 전했다. 피해도 막심해 이미 600여곳의 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졌으며 3명이 숨지고 가옥 150채가 파괴됐다. 주말 NSW 코프스하버에서 열릴 예정이던 자동차 경주 FIA 월드랠리 챔피언십 대회 역시 취소됐다. AP통신은 “이번 산불로 NSW주 삼림과 농지 100만㏊가 소실됐는데, 이미 지난해 전체 화재 피해 28만㏊의 3배가 넘는 규모”라고 밝혔다.
산불 확산의 최대 위협 요인은 강풍이다. 기본적으로 매년 이맘때 고온 건조한 날씨가 지속되는 데다, 현재 최대 시속 80㎞가 넘는 바람이 불어 불이 빠른 속도로 번지고 있다. 소방관 3,000여명이 투입돼 진화에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11건은 아예 통제 수준을 벗어났다고 호주 기상당국은 분석했다. 심지어 셰인 피츠시몬스 NSW 산불방재청장은 “가급적 빨리 더 안전한 곳을 찾아야 할 때”라며 주민들에게 조기 대피 만이 최선의 해결책임을 강조했다.
속수무책인 국가적 재난 앞에 당국의 안일한 대처를 질타하는 비난 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갈수록 두드러지는 ‘기후 변화’로 대형 산불이 충분히 예상됐는데도 정부가 대비를 하지 않아 피해를 최소화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NSW주 일대는 삼림이 우거지고 비가 내리는 날이 드물어 지구 온난화 영향에 취약한 지역으로 꼽힌다. NSW주 소방구조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그렉 멀린스는 호주 일간 시드니모닝헤럴드 기고문에서 “스콧 모리슨 총리에게 4월과 9월 두 차례 기후 위기 및 ‘전례없는 화재’의 위험성을 경고했지만 정부는 별다른 해결책을 내놓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 모리슨 총리는 “지금은 (산불) 피해자들만 생각한다”며 확답을 피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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