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수명이 길어지면서 예전에 없던 다양한 경제ㆍ사회적 문제가 생겨나고 있다. 노년 재혼의 증가로 새 가족 간 재산 분쟁이 늘어나는게 대표적이다. 고령 인구는 부를 손에 움켜쥐고 있으려 하고, 나이든 자녀들은 ‘빨리 안 내놓냐’는 눈치를 보낸다. 일본은 20년 전부터 고령자들이 은퇴 이후에도 자녀 상속을 미루는 바람에 대규모 자금이 묶여 경제 활력을 둔화시키는 현상이 나타났다. 노년층이 재산을 물려주는 이들의 연령도 고령화하는 이른바 ‘노노(老老) 상속’ 현상이 나타났고 우리도 유사 현상을 겪고 있다.
□ 미래에셋은퇴연구소가 발간한 은퇴리포트 제43호 ‘고령사회와 상속시장의 현황 및 과제'에 따르면 2017년 과세 대상 상속의 피상속인(상속 자산을 물려주는 이) 중 51.4%가 80세 이상이었다. 이는 1998년 일본의 수치(46.5%)보다 높은 것이다. 2015년 일본에서 이 비율이 68.3%로 늘어난 것을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조만간 노노 상속 현상이 심화할 것이다. 특히 상속 자산 가운데 부동산이 59.8%에 이르는 것이 문제다. 자녀들과의 재산 분할 다툼으로 배우자를 떠나보내고 남은 이의 거주권이 위협을 받는 경우가 흔히 나타날 수 있다.
□ 어느 나라나 고령화에서 자유롭지 않고, 공동체와 가족의 구성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유년층은 줄고 노년층은 늘어나면서 가족 구조는 핵가족을 넘어 일인 가족 등으로 소규모 단위로 잘게 쪼개지고 있다. “예전에는 인간이 성장하고 가족이 형성되는 방식에 일정한 질서가 있는 듯 했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은 수평적인 가족 구조보다 수직적인 가족 구조 속에서 태어나고 성장한다. 즉 형제 자매나 사촌, 이모 고모나 삼촌이 없는 대신 조부모, 증조부모가 살아 있는 경우가 흔해진다.” (조지 매그너스, ‘고령화 시대의 경제학’)
□ 일본에서는 치매 환자가 늘면서 이들이 보유한 금융자산도 덩달아 늘고 있다. 일본의 치매 환자가 소유한 치매 머니는 143조엔, 저금리 등으로 다다미 바닥이나 장롱 등에 숨긴 돈도 50조엔에 달한다. 이 엄청난 규모의 금융자산이 동결되면서 돈이 돌지 않고 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결국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았느냐다”라고 했다. “돈 가진 고령층까지 나라에서 걱정하냐”는 지적도 있지만, 일본보다 고령화 진행 속도가 훨씬 빠른 우리도 ‘강 건너 불구경’할 때가 아니다.
조재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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