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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모랄레스 결국 하야… ‘탈정치’ 거세지는 중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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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모랄레스 결국 하야… ‘탈정치’ 거세지는 중남미

입력
2019.11.11 17:29
수정
2019.11.11 18:54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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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 사임을 발표하자 수도 라파스 시민들이 거리로 몰려 나와 기뻐하고 있다. 라파스=EPA 연합뉴스
10일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 사임을 발표하자 수도 라파스 시민들이 거리로 몰려 나와 기뻐하고 있다. 라파스=EPA 연합뉴스

“라틴아메리카 시민들이 화가 났다. 이들은 이데올로기 논쟁에 얽매이지 않고 지역정책에 초점을 맞춘 정치인을 원하고 있다.”(워싱턴포스트ㆍWP)

정정 불안이 중남미 대륙을 휩쓸고 있다. 칠레, 볼리비아, 과테말라, 에콰도르, 베네수엘라 등 대부분 나라에서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한 목소리로 정부 퇴진을 외치는 중이다. 급기야 10일(현지시간) 볼리비아에서는 부정선거 논란에 휘말린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이 스스로 직을 내려놓는, 하야를 택했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이날 TV연설을 통해 “이런 갈등에 이르게 된 것이 매우 가슴 아프다”며 의회에 사의를 전했다. 분노는 정부성향이 좌파냐 우파냐를 가리지 않는다. 관심은 오직 불평등한 부의 분배, 부정ㆍ부패 등이 촉발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데 모아져 있다. ‘정부 대 시민’의 공고한 전선이 형성된 것이다.

중남미는 그간 시대별로 범주화할 수 있는 흐름이 존재했다. 1960년대는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미국의 대결로 상징되는 반(反)제국주의 움직임이 컸다. 또 1980년대는 장기 경기침체에 따른 ‘잃어버린 10년’이 있었다. 그 여파로 1990년대는 신자유주의가 득세했고, 2000년대는 다시 반작용으로 온건 사회주의 물결, 이른바 ‘핑크타이드(Pink Tide)’가 대륙을 풍미했다. 그때마다 좌파와 우파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지지를 얻으면서 이 지역의 정치적 특징을 대변했다.

하지만 요즘 중남미 반정부 시위 양상은 탈정치 색채가 뚜렷하다. 대표 사례가 각각 좌우 정부가 집권한 에콰도르와 칠레다. 레닌 모레노 에콰도르 대통령은 최근 반정부 시위 탓에 정부 일부 기능을 수도 키토에서 과야킬로 임시 이전해야 했다. 정부의 유류 보조금 폐지 정책에 반발한 저소득층의 분노가 엄청났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레노 당선의 1등 공신이었지만 민생 문제 앞에서 주저 없이 등을 돌렸다. 반대로 칠레는 2010년대 들어 중남미 경제가 줄줄이 몰락하는 와중에도 연평균 4%대 성장을 구가하며 견실한 나라 곳간을 유지했다. 그러나 단돈 50원 지하철요금 인상이 가져온 후폭풍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개최까지 포기해야 할 정도로 막대했다. 경제규모가 커질수록 빈부격차도 확대되는 모순에 성난 민심이 폭발한 것이다. 칠레 서민층의 교통비 비중은 월급여의 20%에 달한다. WP는 “만성 불안에 시달리는 이웃 나라들과 달리 칠레는 보수 정부 아래서 높은 생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착각했다”며 “50원 시위는 더 나은 서비스와 경제개혁을 요구하는 국민의 열망을 일깨웠다”고 진단했다. 결국 좌우를 뛰어넘는 분노의 종착지는 삶의 질 향상에 있다는 얘기다.

정부의 부도덕성은 시민들의 불신을 한층 배가시킨 요인이 됐다. 모랄레스는 원주민 출신 첫 대통령으로 중남미 좌파정권의 퇴조에도 14년간 굳건히 권좌를 지켰다. 하지만 헌법까지 고쳐가며 4연임을 시도하다 부정선거 시위를 불렀고, 군경까지 사퇴를 요구하면서 불명예 퇴진으로 이어졌다. 현지 정치분석가 프랭클린 파레자는 로이터통신에 모랄레스 하야를 “갈등의 시작”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부재로 그간 카리스마 통치방식에 가려진 민생 요구가 거세질 게 뻔하고 이를 수용할 정치적 타협이 쉽지 않을 거란 우려이다.

부패 정권의 말로는 베네수엘라를 보면 보다 명확해진다. 베네수엘라는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에 대항하는 반정부 시위가 3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그사이 나라 경제는 파탄 나 벌써 수백만명이 살기 위해 인근 국가들로 탈출을 감행했다. 유엔은 3월 공개한 보고서에서 “베네수엘라 국민의 94%가 빈곤 상태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남미의 양대 강자,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도 안심할 수만은 없는 처지다. 최근 정권이 교체된 아르헨티나는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좌파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를 슬기롭게 해결하지 못하면 민심은 언제든 돌변할 수 있다. 브라질 역시 8일 석방된 좌파 진영의 대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이 우파 본색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에 맞서 정치적 세 대결에만 골몰할 경우 시민들의 혁신 요구가 분출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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