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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여년 동거인 임종 전 13억원 인출한 80대 집행유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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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여년 동거인 임종 전 13억원 인출한 80대 집행유예

입력
2019.11.11 11:19
수정
2019.11.11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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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부지법.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동부지법. 한국일보 자료사진

60여 년을 함께 산 동거인의 임종이 다가오자 통장에서 13억원 가량을 꺼내 사용한 80대가 유죄를 선고 받았다. 재판 과정에서 동거인 A(88)씨는 세금을 아끼기 위해 돈을 동거인 계좌에 차명 보관했고, 설령 돈이 동거인 소유더라도 생전에 은행 계좌 사용 권한을 위임 받았다고 주장했지만 인정받지 못했다.

서울동부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 민철기)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지난달 31일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고 11일 밝혔다. 재판부는 A씨가 사망한 B씨와 60년 이상 동거하며 재산 형성에 기여한 점, B씨 재산의 상속인에게 피해액을 돌려준 점을 참작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A씨와 B씨는 혼인신고를 하지는 않았지만 60년 이상을 함께 살아온 동거인이자 함께 사업을 벌인 동업자였다. A씨 1심 판결문과 B씨 형제ㆍ조카와 A씨간 손해배상소송 판결문을 종합하면, B씨는 1950년대부터 A씨와 동거하며 함께 재산을 쌓아왔다. 이들은 서울 종로구 일대에서 달러를 사고 팔아 이윤을 남기는 ‘달러 장사’로 밑천을 모은 후 종로구와 성동구 일대에 토지를 사들여 임대 수익을 함께 거둬들였다.

문제는 B씨가 사망하면서 남긴 재산을 두고 빚어졌다. B씨는 폐암이 악화돼 2016년 3월 29일 국립중앙의료원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해 5월 13일 사망했는데, A씨는 3월 31일부터 사망 전날까지 35회에 걸쳐 B씨 계좌에서 13억3,700여 만원을 인출해 사용한 것.

이에 B씨의 동생과 제수, 조카 등 상속인 9명이 A씨를 사기와 횡령 혐의로 고발했고 손해배상 소송까지 제기하며 반발하고 나섰다. 손해배상에 대해선 A씨가 9명에게 총 10억원 가량과 지연 이자를 지급하라는 판결이 지난해 8월 24일 서울고등법원에서 확정됐다.

A씨는 재판에서 B씨가 별다른 경제활동을 하지 않았으며, 재산을 늘린 건 자신이라고 주장했다. A씨는 “어린 시절부터 돈을 벌기 시작해 달러 장사 등을 통해 많은 재산을 축적했다. 동거를 시작한 이후에도 아무런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피해자를 부양하며 계속 재산을 늘려왔다”며 “강력범죄에 노출될 위험에 대비하고 세금도 절약할 목적으로 명의를 빌려 계좌를 개설했다”고 주장했다. 1970년대부터 일해온 가사도우미는 “B씨가 생전에 아무런 경제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는 등 유리한 정황도 있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A, B씨가 쌓아온 재산에 대해 각자의 몫을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성동구와 종로구 일대 토지 지분을 A씨와 B씨가 절반씩 나눠가진 점이나, 임차인들이 B씨 명의 계좌로 임대료 등을 지급 한 점 등이 근거였다. 재판부는 또 B씨가 호스피스 병실에 입원했을 당시 간병인에게 “조카 며느리가 살갑게 잘 대해줘 재산을 물려주고 싶다”고 수 차례 말한 점 등도 언급했다. A씨는 판결에 불복해 7일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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