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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집의 통찰력 강의] 국회는 법률가들의 것이 아니다

입력
2019.11.11 18:00
수정
2019.11.11 18:17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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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가는 전 국민의 0.06%에 불과하다. 아무나 차지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명석한 두뇌와 판단력 그리고 강한 의지와 끈기를 가진 사람들이 고난을 뚫고 얻어낸 자리다. 그런데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 분포를 보면 판검사 출신이 현 국회에서 무려 27명을 차지한다. 전체 국회의원의 거의 10분의 1이다. 인구 분포로 보면 0.06%에 불과한 법률가들이 275배 과잉 대표되고 판검사 출신을 따지면 거의 1,000배나 되는 셈이다. 반면 노동, 농민 대표자는 거의 없다. 가히 법률가 국회다. 그들이 분명 법에 대한 전문가이기는 하겠지만 이 정도의 대표성을 부여할 당위는 없다. 사진은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 앞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 한국일보 자료사진
법률가는 전 국민의 0.06%에 불과하다. 아무나 차지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명석한 두뇌와 판단력 그리고 강한 의지와 끈기를 가진 사람들이 고난을 뚫고 얻어낸 자리다. 그런데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 분포를 보면 판검사 출신이 현 국회에서 무려 27명을 차지한다. 전체 국회의원의 거의 10분의 1이다. 인구 분포로 보면 0.06%에 불과한 법률가들이 275배 과잉 대표되고 판검사 출신을 따지면 거의 1,000배나 되는 셈이다. 반면 노동, 농민 대표자는 거의 없다. 가히 법률가 국회다. 그들이 분명 법에 대한 전문가이기는 하겠지만 이 정도의 대표성을 부여할 당위는 없다. 사진은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 앞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 한국일보 자료사진

법은 복잡하다. 인간이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는 다양하고 비일관적이다. 시비를 가리고 진실과 정의를 지켜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아무나 법을 제정하고 시행하며 판정할 수 없다. 전문적인 지식을 가져야 한다. 수많은 법전을 두루 꿰고 엄청난 판례를 섭렵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헌법적 가치에 대한 확고한 가치관과 철학이다. 그런 전문가들에게 우리는 법을 맡긴다. 비양심적이고 사악한 자의 손에 그것을 쥐게 하는 순간 사회는 스스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만큼 준엄한 일이다.

법은 약자를 지켜주는 사회적 제도다. 강자의 횡포와 폭력 그리고 왜곡으로부터 보호하고 그릇된 언행을 일삼는 자들을 응징하는 사회적 약속이다. 그것은 늘 불변이다. 법을 집행하고 판결하는 사람에게 전문적 지식과 더불어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 그리고 시대정신에 대한 폭넓은 공감의 능력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한 그들의 상당수는 법의 지식은 풍부할지 모르나 인간에 대한 이해와 공감 그리고 시대정신에 대한 철저한 인식이 결여된 경우가 많았다.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할 것이다.

예전의 사법시험은 가장 어려운 시험이었다. 아무나 쉽게 넘볼 수 있는 시험이 아니었다. 한 번에 붙는 경우도 드물었다. 10년을 매달리다 끝내 좌절하고 포기하는 일도 예사였다. 그러나 시험에 합격하면 그야말로 팔자 고치는 일이기도 했다. 사법고시에 합격하면 온 동네가 떠들썩하게 자랑했다. 판검사를 길러낸 마을의 자부심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니 누구나 한번쯤은 꿈꾸는 로망이었다. 그러나 그 공부라는 게 너무 힘들어서 보통사람으로는 다른 것과 병행하기는 어려웠다. 일찌감치 목표를 정하고 고시 공부에만 매달렸다. 다른 학우들이 사회적 불의에 항거하며 맞서 싸울 때도 고시실에 박혀있었고 전적으로 매달리기 위해 절을 찾는 경우도 흔했다. 그 시대를 살면서 불의에 투쟁하지 못하고 혼자 공부만 하는 게 미안하기도 했겠지만 자신의 성공이 우선이었을 것이고, 때론 나중에 법조인이 되어 그 빚을 갚겠다고 스스로 자위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시대정신에 대한 깊은 통찰과 공감이 결여될 수밖에 없는 건 부인하기 어렵다. 그게 현실이었다. 사법고시가 폐지되고 로스쿨로 바뀌었어도 그 행태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단지 돈 많이 드는 로스쿨은 가난한 청년들에게는 접근하기 어려운 영토로 전환되었을 뿐.

청춘기의 열정을 뒤로 하고 사법고시에 매달린 집념과 나름의 대의는 분명히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대가에 대한 열망이 더 큰 경우도 많았다. 대의보다 개인의 성공이라는 열망이 더 컸다. 그랬던 이들 상당수는 일찌감치 권력의 맛에 길들여지거나 조직의 사악한 힘에 굴복했다. 저항하면 자기만 바보되는 카르텔 조직에서 어설픈 저항과 비판은 자기 무덤을 파는 일이라는 걸 아주 빨리 깨달았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거의 평생이 보장된 권력이고 행운이다. 그걸 놓칠 바보는 드물다. 법복을 벗으면 돈이 그들을 맞았다. 더 많은 돈을 벌려면 더 높은 자리까지 올라야 하는 악행의 구조가 작동하는 게 이 사회를 병들게 한다.

법률가는 전 국민의 0.06%에 불과하다. 아무나 차지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명석한 두뇌와 판단력 그리고 강한 의지와 끈기를 가진 사람들이 고난을 뚫고 얻어낸 자리다. 그들이 사회정의를 지켜주고 있기에 이만큼 질서와 정의가 지켜지는 건 무시할 수 없고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 분포를 보면 판검사 출신이 현 국회에서 무려 27명을 차지한다. 전체 국회의원의 거의 10분의 1이다. 인구 분포로 보면 0.06%에 불과한 법률가들이 275배 과잉 대표되고 판검사 출신을 따지면 거의 1,000배나 되는 셈이다. 반면 노동, 농민 대표자는 거의 없다. 가히 법률가 국회다. 그들이 분명 법에 대한 전문가이기는 하겠지만 이 정도의 대표성을 부여할 당위는 없다.

여전히 사람들은 판검사 출신에 대해 높이 평가한다. 공부 잘 했고 좋은 대학 졸업했으며 열심히 노력했고 성공했으니 선망의 대상일 것이다. 그것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표를 먹고 가는 셈이니 다른 직업군에 비해 훨씬 유리하다. 그런 유리함을 만들어주는 건 결국 유권자들이다. 선망과 자부(도대체 그게 무슨 대단한 ‘지역의 자부심’인지는 모를 일이다)가 그들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강기훈 사건을 비롯해 수많은 시국 및 공안사건을 조작하거나 무리하게 기소한 검사, 정권 입맛에 맞게 선고한 판사 출신들조차 아무런 반성도 없이 고개 빳빳하게 쳐들고 국회의원이 된다. 블랙코미디가 따로 없다. 이러니 법률가들이 지배하는 국회가 되는 것이다. 법의 전문가들이지만 정작 그들의 입법능력은 일반 시민의 법정신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자신들과 몸담았던 조직의 이해에 너무 민감하다. 이제 그들을 정리하자. 너무 많다. 전직 판검사 선망할 게 아니다. 내년 4월의 봄, 시대정신에 동떨어진 법률가 출신들을 걸러낼 기회다. 우리 손에 달렸다.

김경집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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