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녕씨, 경찰 배지 떼고 야구단 간판선수로 
 ※ 은퇴 이후 하루하루 시간을 그냥 허비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삶에서 재미를 찾지 못하고, 사소한 일에 분노를 표출하기도 합니다. 은퇴 후 삶은 어때야 하는 걸까요. <한국일보>는 우아하고 품격 있게 인생 2막을 살고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매주 수요일 연재합니다.
남양주 실버 야구단의 박효녕씨가 지난달 19일 경기 남양주시 한양대 야구장에서 포수 장비를 갖추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남양주=차승윤 인턴기자

‘딱’ 하는 파열음과 함께 타구가 날아가자 방망이를 내던지고 1루를 돌아 전력 질주를 한다. 탄탄하게 다져진 몸매에 헬멧까지 쓰고 있으니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야구 실력이다. 지난달 19일 경기 남양주시에 있는 한양대 야구장에 모인 이들은 50대 후반부터 70~80대까지 초로의 신사들로 구성된 남양주 실버 야구단이다.

박효녕(63)씨도 은퇴 후 야구로 새 삶을 충전하고 있는 실버 야구단의 단장 겸 간판 선수다. 그의 이력은 화려하고 다양하다. 경찰관으로, 경기도의원으로, 벤처기업 중역으로 정치ㆍ경제ㆍ사회 다방면에서 봉사했다. 박씨는 “1991년까지 남양주경찰서 등에서 형사정보 주특기 경위까지 지냈고, 이후 국회의원 비서관으로 일했던 경험으로 1995년 경기도의원에 나가 선출돼 공직에 몸담았다”면서 “38년 젊은 세월을 보낸 지역 사회에서 이젠 야구로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라며 미소를 지었다.

유도, 태권도를 두루 섭렵한 경찰관 출신답게 그는 아직도 청년 못지 않은 신체와 운동 능력을 자랑한다. 삶의 일부분인 운동을 놓을 수 없던 박씨는 은퇴 후에도 조기 축구나 등산, 트레킹, 골프 등을 직접 해 보거나 추천 받았지만 정작 마음에 와 닿은 건 야구였다. 그는 “7년 전 퇴직 후 무슨 운동을 해 볼까 고민하던 차에 지인의 권유로 야구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났다. 초등학교(3~6학년) 때 야구를 했는데 늦게나마 가슴 한 구석에 간직했던 꿈을 이뤘다”면서 “야구 자체도 즐겁지만 야구하는 주말을 기다리는 주중의 많은 시간들이 소풍 가기 전날의 설렘처럼 엔돌핀이 돌고 삶의 활력소가 된다”라고 말했다.

박효녕(왼쪽)씨와 김종홍 남양주 실버 야구단 감독. 남양주=차승윤 인턴기자

실버 야구 경력 8년인 박씨의 포지션은 야구에서 가장 힘들다는 포수. 그는 “초등학교 때 포수를 했었는데 신기하게도 무려 50년 전의 감각이 기억나더라”면서 “무거운 장비를 차야 하고, 경기 내내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해야 하지만 가장 중요하고 쓸모 있는 자리라는 자부심이 크다”고 했다. 타순은 1번을 맡고 있는 박씨는 프로야구에서도 보기 드문 ‘발 빠른 포수’다. 올 시즌 타율도 3할4푼5리나 된다.

전국에 수많은 사회인 야구팀이 있지만 실버리그는 50세 이상부터 가입할 수 있다. 남양주 야구단을 비롯해 현재 수도권 8개팀이 3월부터 11월까지 월 2회 경기로 시즌을 치르고 우승팀을 가리는 플레이오프도 연다. 또 대구ㆍ경북 지역에도 6개팀이 영남리그를 치르고 전주를 중심으로 한 전북 12개팀과 광주를 중심으로 한 광주ㆍ전남지역 7개팀도 각각 호남리그를 치른다. 팀 당 15~20명 선수로 꾸려진 실버 야구단은 그저 야구가 좋아 시작한 이들부터, 주변 지인의 권유로 입단하는 경우 등 입문 루트가 다양하다.

김종홍(60) 남양주 실버 야구단 감독은 “사회인 야구단에서 활동하다가 나이가 들면 아무래도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눈치가 보이니까 실버 야구단으로 넘어오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심지어 초중고대ㆍ실업팀까지 선수로 활약했던 이들도 있다. 박씨처럼 선수로 못 다 한 꿈을 이루고자 야구공을 잡은 것인데 김 감독에 따르면 투수의 경우 수십년이 지났어도 선출(선수 출신)은 확실히 다르다고 한다. 그래서 선출 투수는 실버 야구단에서 55세 이상부터 받는다. 선출의 기준은 한국일보 주최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등록 여부다.

남양주 실버 야구단 선수들. 남양주 실버 야구단 제공

야구에서 삶의 의욕을 찾은 박씨는 ‘야구 전도사’가 됐다. 그는 “아무래도 연령대가 있는 팀이다 보니 건강을 위해 시작한 분들도 많다”면서 “야구를 하기 위해 일주일 동안 피트니스센터도 다니고 러닝도 하고 스스로 체력관리를 하게 된다”고 했다. 실버 야구단 중에서도 초고령 야구단으로 유명한 노노야구단에는 이동수, 장기완 옹 등 90세 노인도 2명이나 뛰고 있다. 70대 이상 선수들은 팀마다 3명 이상씩은 포진해 있다. 반면 아직은 ‘어린’ 축에 속하는 50대 선수들은 겨울에 동계 훈련도 따로 할 정도로 제법 야구단다운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그간 야구는 시니어들이 하기 힘든 종목으로 인식돼 왔다. 부상 위험이 높고 전문적인 종목이라 일정 연령 이상은 진입조차 힘들다는 편견 때문에 청ㆍ중년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하지만 2013년 발족한 실버야구연맹은 전국에 흩어져있던 시니어야구단을 끌어 모아 장년ㆍ노년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 스포츠로 새로운 영역을 구축했다.

박씨는 “어르신들이 하기에 어렵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도 있지만 야구는 공수 교대 시간, 볼 데드 상황 등 쉴 수 있는 시간이 많다. 오히려 축구보다 체력적인 부담이 덜 하다”면서 “점점 실버 야구단의 문을 두드리는 분들이 많아지는 추세다”라고 소개했다. 내년 시즌엔 2개 팀 정도가 늘어나 총 10개 팀 이상이 리그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김 감독은 “50대에 야구를 시작하려는 분들은 일반적인 사회인 야구단에 가입하기에 다소 민망해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분들을 위해서도 적극적으로 문호를 개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버리그의 가장 큰 특징은 콜드게임이 없다는 점이다. 사회인 야구는 4회 10점, 5회 8점 차 이상이면 콜드게임이 선언된다. 김 감독은 “실버 야구단은 승패보다 야구 자체를 만끽하자는 취지로 창단된 팀이다. 그래서 점수 차에 상관없이 2시간 시간 제한 규정만 두고 있다. 2시간 만이라도 원 없이 어린아이처럼 뛰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팀의 최연장자인 고문부터 단장, 감독, 코치, 총무, 주장까지 역할 분담도 철저하다. 리그 운영비는 팀원들이 주머니 사정에 따라 갹출한다.

실버 리그에서도 홈런이 나올까? 김 감독은 “홈런이 나온 적이 있긴 했는데 아무래도 담장을 넘기는 홈런은 거의 어렵고 그라운드 홈런은 종종 나온다”며 웃었다. 하지만 투수의 경우는 시속 120㎞까지 던지는 선수도 있다. 50대 후반의 나이에도 110㎞대를 던지는 투수들이 즐비하다고 한다.

박효녕씨(맨 오른쪽)가 타격을 하고 있다. 남양주=차승윤 인턴기자

실버 야구단은 해외 무대에까지 진출했다. 한국과 일본, 대만에서 모인 16개 실버 야구단이 자웅을 가리는 아시아 실버연식야구대회다. 9회째인 올해 대회도 15일부터 대만에서 열리는데 58세 이상 62세까지 참가할 수 있다. 김 감독은 “일본과 대만의 경우 단단한 경식구가 아닌 물렁물렁한 연식구를 이용한 실버 야구가 활성화돼 있다”면서 “우리도 연식구를 점차 도입해 리그를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를 준비 중인 동료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박씨는 “저들이 다 늦은 나이에 야구가 좋다고 모인 사람들이다”라며 “유니폼만 입으면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다. 몸이 아플 때도 야구하는 날만 되면 저절로 낫는다”고 웃었다. 또 “야구는 머리를 많이 써야 하는 운동이다. 수비는 수비대로, 타자는 타자대로, 주자는 주자대로 끝없이 상황을 예측하고 있어야 하며 수많은 개인 기록을 숙지해야 해서 치매 예방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야구 9이닝은 우리 인생살이와 비슷하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반드시 기회가 온다. 다만 그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으려면 평소에 기본에 충실해야 하고 실력을 배양해야 한다”고 한없는 ‘야구 예찬’을 설파했다.

남양주=성환희 기자 hhsung@hankookilbo.comㆍ

차승윤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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