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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서 왔니, 서쪽서 왔니” 물으면 못 알아듣는 獨 통일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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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서 왔니, 서쪽서 왔니” 물으면 못 알아듣는 獨 통일둥이

입력
2019.11.1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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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장벽 붕괴 30년] 동독 3세대 모임, 화합 앞장서고… 청년세대선 ‘심리적 장벽’ 사라져

10대 시절 전후로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독일 통일 경험한 동독의 젊은 세대가 모여 만든 단체 '동독 3세대 네트워크'의 활동가 르네 슈텐베르크가 지난 8일 독일 베를린 시내의 한 IT 회사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베를린=최나실 기자
10대 시절 전후로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독일 통일 경험한 동독의 젊은 세대가 모여 만든 단체 '동독 3세대 네트워크'의 활동가 르네 슈텐베르크가 지난 8일 독일 베를린 시내의 한 IT 회사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베를린=최나실 기자

올해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을 맞은 독일은 내년 통일 30주년을 맞는다. 역설적이게도 분단 시절 가장 어렵게 보였던 정치 통합은 가장 먼저 이뤄졌다. 다음은 경제였다. 통일 후유증으로 2000년대 초만 해도 유럽의 문제아 취급을 받았던 독일은 이제 세계 국내총생산(GDP) 순위 4위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다. 그러나 아직까지 갈 길이 남은 ‘내적 통합’ 과제를 두고 독일은 시민사회와 정치권 모두 마음의 벽을 허물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여전한 동서독 간의 경제 격차, 동독의 대표성 문제 또는 심리학적 이유에 이르기까지 각자 원인 진단은 달랐지만, 독일에서 만난 이들은 입을 모아 ‘머릿속의 장벽’을 말했다.

8일(현지시간) 베를린의 한 IT 회사에서 만난 르네 슈텐베르크(37)는 “아직 동독 출신 사회 지도층이 극히 적다”면서 더 많은 동독인이 의사결정권을 가진 자리에 올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슈텐베르크는 1973~1984년에 태어나 10대 전후로 베를린 장벽 붕괴와 통일을 겪어 ‘격변기 아이들(Wendekinder)’로 불리는 ‘동독 3세대’다. 그는 회사에서는 40명이 속한 팀의 리더이자 동시에 ‘동독 3세대 네트워크’라는 단체의 활동가이기도 하다. 이들은 독일 화합이 진전되려면 동독의 문제와 경험을 이해하고 대변할 지도층이 늘어야 한다는 판단으로 다양한 캠페인과 공적 토론회 등을 열고 있다.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 기념일을 하루 앞둔 지난 8일 독일 베를린의 한 공유공간에서는 민주평통 베를린지회가 주최한 '웬 통일?' 청년 컨퍼런스가 열렸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동독 3세대 단체 ‘세제곱 관점’의 되르테 그림 활동가는 동독 출신으로서 자신이 겪었던 상실의 경험을 소개했다. 민주평통 베를린지회 제공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 기념일을 하루 앞둔 지난 8일 독일 베를린의 한 공유공간에서는 민주평통 베를린지회가 주최한 '웬 통일?' 청년 컨퍼런스가 열렸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동독 3세대 단체 ‘세제곱 관점’의 되르테 그림 활동가는 동독 출신으로서 자신이 겪었던 상실의 경험을 소개했다. 민주평통 베를린지회 제공

또 다른 동독 3세대 단체 ‘세제곱 관점’의 되르테 그림(41)은 통일 이후 찾아온 급격한 체제 전환과 경제적 타격이 동독인들에게 정체성의 혼란과 사회적 상실감으로 남았다고 강조했다. 그림은 “통일 직전 (동독 주민) 25%에 달했던 사회주의통일당(SED) 당원들이 하루아침에 자격과 학력을 인정받을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부모님도 통일 후 실직했다면서 “선생님들조차 이 상황을 뭐라고 설명할지 어쩔 줄을 몰랐다”고 회상했다. 이 단체는 3세대의 경험을 책으로 묶어 발간하는 등 동독의 ‘목소리 내기’에 노력하고 있다.

8일 독일 베를린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만난 카타리나 란드그라프 기민당(CDU) 연방의원이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동독 출신인 란드그라프 의원은 현재 연방의회에서 독한의원친선협회장을 맡고 있다. 베를린=최나실 기자
8일 독일 베를린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만난 카타리나 란드그라프 기민당(CDU) 연방의원이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동독 출신인 란드그라프 의원은 현재 연방의회에서 독한의원친선협회장을 맡고 있다. 베를린=최나실 기자

정부와 정치권도 사회경제적 격차 해소를 위해 노력 중이다. 이날 베를린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만난 카타리나 란드그라프 기민당(CDU) 연방의원은 “공식적인 쿼터제 비율이 있는 건 아니지만, 공기업이나 정부기관 수장을 정할 때 동독 출신을 우대하도록 공개적인 논의가 이뤄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동서독 경제 격차를 줄이기 위해 1991년 옛 서독 지역에 부과하기 시작한 ‘연대세’도 한 예다. 다만 연대세는 오는 2021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지될 예정이다.

물론 1990년 이후 태어난 ‘통일둥이’들에게는 이런 심리적 장벽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말도 나온다. 베른하르트 젤리거 독일 한스자이델재단 한국 사무소 대표는 “10년 전만 해도 사무실에서 일하는 독일 인턴에게 ‘동쪽에서 왔니, 서쪽에서 왔니’라 물으면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지만, 최근에 오는 친구들에게 같은 질문을 하면 ‘무슨 소리냐’라고 되묻는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동ㆍ서 분단의 상흔이 옅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다만 지금 당장의 독일 사회에서 나타나는 ‘마음의 통합’ 문제는 분단 한반도에도 고민해야 할 숙제거리를 던져주는 건 분명하다.

베를린=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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