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비스 칼라닉 우버 창립자이자 전 최고경영자(CEO)가 2014년 한 대학에서 우버에 대한 강의를 하는 모습. 칼라닉 전 CEO는 우버 내 만연했던 성추행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는커녕 스스로도 문제를 일으키면서 2017년 주주들에 의해 우버에서 쫓겨났다. EPA 연합뉴스

“기업이 다양성과 포용성을 넓히는 방향으로 혁신을 하지 않으면 재작년 우버처럼 어쩔 수 없이 기업 문화를 통째로 바꿔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될 겁니다. 우버는 그 이전부터 조금씩 새어 나오던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리더들이 무시했기 때문에 큰 위기를 겪었고, 성장통 끝에 이제는 사내 다양성과 포용성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거죠.”

전세계 최대 혁신 기업으로 평가 받는 미국의 우버는 2017년 회사 문을 닫을 뻔한 위기를 겪었다. 우버에서 일하던 엔지니어가 기업 내 성추행 및 성차별 실상을 폭로했고, 우버는 애초 이를 묵살하다 논란이 커지자 내부 조사를 거쳐 관련자 20여명을 한꺼번에 해고했다. 게다가 이 사건으로 내부 감사를 진행하던 도중 창립자이자 당시 최고경영자(CEO)였던 트래비스 캘러닉이 직원들에게 전체 메일로 성희롱성 메일을 보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CEO가 쫓겨나기도 했다. 짧은 시간 동안 급속하게 성장하느라 내실을 다지지 못한 스타트업 내부에서 곪고 있던 문제가 터진 셈이다.

우버는 이를 수습하기 위해 지난해 3월 한국계 미국인 이보영(44)씨를 최고 다양성ㆍ포용성 책임자(CDIOㆍChief Diversity&Inclusion Officer)로 임명했다. 국내에서 다소 생소한 CDIO는 미국 대형 기업이 주로 두는 임원 직책으로, 사내 다양한 소수자 그룹이 차별 받지 않도록 기업 문화 형성을 담당하는 책임자다. 세 살 때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가 스스로가 ‘아시아계 미국인 여성’이라는 소수자 정체성을 겪으며 살아온 이 CDIO는 미국 내 다양성ㆍ포용성 분야 최고의 전문가다. 높은 매출과 빠른 성장만을 목표로 달려오던 우버는 이 CDIO 임명을 계기로 기존 문화를 반성하고 뿌리부터 통째로 조직 문화를 혁신하기 시작했다.

◇“획일화된 집단의 ‘근자감’은 기업 성과 떨어뜨리는 주범”
지난해 우버에 합류한 이보영 우버 최고 다양성·포용성 책임자(CDIO)가 7일 서울 강남구 위워크 선릉에서 다양성과 포용성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곽주현 기자

7일 서울을 방문한 이 CDIO는 기업 내 다양성과 포용성이 중요한 이유에 대해 공들여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 CDIO는 경제 성장 속도에 가장 큰 가치를 두고 다양성과 포용성 확보를 뒷전으로 미뤄두고 있는 한국 기업들의 현 상황을 정확히 짚어내며 “미룰 때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상명하복’식 군대 문화를 뼈에 새긴 남성 위주의 기업 문화는 당장 일하기에 편하겠지만, ‘쉬운 방향’으로만 가서는 조직이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생산성의 차이다. 이 CDIO가 소개한 수많은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업 내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이 모일수록, 그리고 이들이 조직 내에 잘 포용될수록 업무 성과는 물론 구성원들의 자발성이 매우 높아진다. 특히 미국 미시간대 연구에 따르면 다양성이 높은 그룹일수록 결정 오류를 범할 확률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면 서로의 편견을 극복해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 CDIO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불러온 미국 월가의 위험하고 비윤리적인 행동은 결국 다양성 부족에서 온 ‘집단오류’ 때문이라는 것이 이 연구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아무리 이 사실을 알려주더라도 기업들은 현 상태를 쉽게 바꾸려 하지 않는다. ‘끼리끼리’ 모인 구성원들은 실제 성과에 비해 자신들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 CDIO는 “주변에서 능력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은 하늘을 찌르는 사람을 본 적 있을 텐데, 그들은 연령과 성별 등 여러 측면에서 ‘다수자’일 확률이 높다”며 “누군가가 자신이 틀렸다고 지적하거나 도전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획일화된 구성원들끼리는 ‘근자감’을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하면서 자기만족에 머물고, 굳이 조직 내 다양한 사람들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CDIO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 내 다양성과 포용성 확보를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선제적으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결국 우버처럼 어쩔 수 없이 하게 될(force to)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수많은 ‘미투’와 ‘갑질 논란’ 사태를 겪으며 피를 흘리고 나서야 조직 문화를 혁신하겠다며 나선 수많은 국내 기업들이 이미 좋은 본보기다.

연령, 성별, 국적, 장애여부, 외모, 종교, 성적취향, 교육수준, 결혼여부 등 다양한 정체성이 한 데 모여 다양한 시각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게티이미지뱅크
◇“한국 직장 내 다양성ㆍ포용성 확보 시급하다”

이 CDIO가 보기에 아직 한국은 갈 길이 멀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성차별이나 이주민 차별 등이 존재한다는 것을 기업들은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라며 “알고도 아무 일을 안 한다면 결국엔 강제로 끌려가게 될 거다”라고 단언했다. 이를 위해서는 ‘높은 연차에 뽑을 만한 여성 후보군 자체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중년 남성들로만 채워지는 고위직에 저연차 여성을 파격적으로 임용하는 등의 급진적인 정책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 CDIO는 “어린 아이에게 끊임 없이 칭찬해주면 성과가 훨씬 좋게 나타나듯이, 연공서열에 의한 자동 승진이 아닌 파격 임용은 ‘당신이 이 일에 적임자니 잘 해낼 것’이라는 조직의 기대와 믿음을 보여주면서 좋은 성과로 이어진다”며 “젊은 여성이 높은 위치에서 잘 해낸다는 상징성은 궁극적으로 회사 평판에 큰 도움이 되면서 지원자 수준이 높아지고, 회사 구성원들의 사기도 덩달아 높아지는 선순환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양성과 포용성을 확보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기업이 이를 잘 관리하는 것이다. 아무리 구성원들이 다양하더라도 리더가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고 획일화된 방식으로 끌고 간다면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이 강화되기 때문이다. 이 CDIO는 “보여주기식으로 뽑아놓기만 하고 지속적인 지원을 해주지 않는다면 결국 실패한다”며 “결국 리더들이 다양성과 포용성의 중요성을 깨닫고 솔선수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제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