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억만장자이자 미디어기업 블룸버그통신의 사주이기도 한 마이클 블룸버그(77) 전 뉴욕시장이 결국 2020년 미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 당초 민주당의 ‘대선 잠룡’으로 꼽히던 그는 지난 3월 공개적으로 불출마 선언을 한 바 있지만, 최근 들어 당내 경선 참여를 적극 준비하고 있다고 볼 만한 징후가 계속해서 포착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가 대선 도전을 공식화하면, 민주당 경선에도 어떤 식으로든 큰 폭의 판도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7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블룸버그와 가까운 복수의 인사들을 인용해 “블룸버그가 최근 몇 주 동안 백악관행 도전을 저울질하고 있으며, 조만간 경선 출마 신청서를 제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WP)와 CNN방송 등 다른 미 언론들도 잇따라 같은 소식을 전했다.
NYT 등에 따르면 ‘3선 뉴욕시장’(2002년 1월~2013년 12월 재임) 출신인 블룸버그는 앨라배마주(州) 경선 출마 신청서를 민주당에 이번 주 중 제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앨라배마주의 경선 신청 마감일은 8일로, 다른 주보다 훨씬 빠르다. 블룸버그는 이미 앨라배마주에 참모들을 보내 경선 참여를 위한 사전 준비작업도 모두 마쳐둔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블룸버그와 그의 보좌관들은 이날 민주당 유력 인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대선 출마를 진지하게 고민 중’이라는 의사도 전달했다. 해리 리드(민주당) 전 상원의원은 블룸버그가 ‘경선 참여’를 못 박은 건 아니라면서도 “통화의 의미는 분명했다. ‘좋은 주말 보내라’는 건 아니었다”고 NYT에 말했다. 다만 블룸버그의 대변인은 “아직 최종 결정을 내리진 않은 상태”라고 덧붙였다.
앞서 민주당의 거대 후원자인 블룸버그는 지난해 10월 민주당 당원으로 재가입했다. 젊은 시절 줄곧 민주당원이었다가 공화당으로 옮겨 뉴욕시장에 당선된 지 17년 만이었다. 때문에 대선 출마의 사전 포석으로 해석됐는데, 올해 3월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꺾을 수 있지만, 민주당 경선 통과가 힘들 것”이라며 출마 포기 의사를 밝히고는 ‘후방 지원’ 역할만 맡겠다고 했다.
내년 선거일(11월 3일)을 1년 앞둔 가운데, 블룸버그가 7개월 전 결정을 번복한 건 ‘이대로는 트럼프의 재집권을 막는다고 확신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현재 민주당 경선에선 진보 색채가 뚜렷한 엘리자베스 워런(매사추세츠) 상원의원과 버니 샌더스(무소속ㆍ버몬트) 상원의원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온건 중도 성향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지지율 정체, 저조한 선거자금 모금 실적 등으로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는 상태다. 블룸버그로선 대선 승리에 필수적인 ‘중도층 표심 공략’을 위해선 본인이 나설 수밖에 없다고 결심한 셈이다. 그의 수석전략가인 하워드 울프슨은 “트럼프는 미국에 전례 없는 위협이며, 그의 패배를 확실히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며 “하지만 지금의 민주당 후보들이 그 일(대선 승리)을 해낼지 블룸버그는 우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NYT는 “블룸버그의 참여는 민주당 경선 레이스에 지각 변동을 초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도 성향인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는 커다란 위협이 될 수 있는 데다, 당내 보수와 진보 간 이념ㆍ정책 논쟁에도 불을 붙일 게 뻔하다는 것이다. WP는 특히 “(워런ㆍ샌더스의 공약인) 부유세 도입을 둘러싼 논쟁이 재점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블룸버그는 지난 1월 부유세에 대해 “헌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한 바 있다. 워런 등의 급진적인 공약에 등을 돌리려던 민주당 지지자들의 표를 블룸버그가 끌어올 수 있다고 내다보게 하는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 측도 그의 출마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트럼프 캠프의 한 인사는 CNN방송에 “블룸버그는 트럼프보다 부유한 뉴욕 기업가라는 점에서 (트럼프의 지지층을 흡수할 수 있는) 위협적 존재”라면서도 “그러나 민주당 경쟁 후보들이 블룸버그를 꺾는 데 몰두하느라 결과적으로 트럼프에는 호재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선 출마 경험이 없는 블룸버그는 아직 ‘현미경 검증’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에, 민주당 경선이 후보들 간 흠집내기 경쟁을 벌이는 ‘진흙탕 싸움’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