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 트위터, 소통 창구 넘어 정치ㆍ외교 정책 수단으로
“(시프는) 하류인생이다. 그를 반역죄로 봐야 한다.”
이렇게 거침없는 대통령이 또 있을까요? 정적에 대한 공격으로 종종 도마에 오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얘깁니다. 지난달 기자들 앞에서 자신의 탄핵을 추진하는 민주당 소속 애덤 시프 하원 정보위원장을 향해 “하류인생” “헛소리” 등 거친 언사를 쏟아내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죠.
사람과 대면할 필요가 없는 소셜미디어에서 그의 입은 더 자유로워집니다. 최근 뉴욕타임스(NYT)가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를 전수 조사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그는 취임 후 무려 1만 1,000여건의 트윗을 날렸습니다. 그 중 누군가를 공격하는 트윗은 5,889건으로, 칭찬하는 트윗(4,876건)보다 더 잦았죠.
백악관 참모들과 각료들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때부터 그의 잦은 말실수를 수습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곤 했는데요. 급기야 일부 참모들은 2017년 트위터 본사에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 발송을 연기해달라 요청할 계획까지 세웠었다고 하네요. 도대체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 기행이 어느 정도이길래 그럴까요? 그의 ‘트위터 정치사’를 돌아봤습니다.
◇오바마 흠집내기부터 16세 소녀 조롱도
2016년 대선 후보 시절부터 그는 남다른 독설가의 면모를 보였습니다. 그 해 7월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민주당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공개 지지하자 그는 곧바로 흠집내기에 나섰는데요. 트위터에 “오바마 대통령과 사기꾼 힐러리의 대선 캠페인 유세에 동원될 '에어포스 원'(대통령 전용기)을 위해 납세자(미국 국민)들이 엄청난 돈을 부담한다”며 “이는 완전히 수치스러운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취임 첫 날에도 가장 먼저 오바마 정부의 업적 지우기에 나섰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핵심 정책인 ‘오바마케어’(건강보험제도) 폐지를 추진하면서 그는 “국민들은 오바마케어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고 했죠.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미 증시가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훈풍을 타자 트위터에서 “만약 민주당(클린턴)이 당선됐다면, 여러분 주식의 가치는 대선일로부터 50% 하락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죠.
그의 트위터는 다루기 힘든 관료에게 망신을 주고 그를 통제하는 수단으로도 활용됐습니다. 2017년 2월 시애틀 연방지방법원의 제임스 로바트 판사가 트럼프 대통령의 '반(反) 이민' 행정명령에 제동을 걸자 그는 “미국의 법 집행력을 빼앗아간 소위 판사라는 자의 의견은 터무니가 없으며 뒤집힐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판사가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들에게 우리나라를 열어줬다"며 대놓고 그를 비판했죠.
16세 소녀도 트럼프의 독설을 피해갈 수는 없었습니다.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지난 9월 유엔 총회 기후행동정상회의에서 기후변화 대책 마련에 소홀한 정치인들의 책임을 추궁하고 나섰는데요. 이 격정적인 연설이 끝난 후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그녀는 밝고 멋진 미래를 고대하는 매우 행복한 어린 소녀처럼 보였다. (그녀를) 보게 돼 너무 좋다"고 조롱하는 듯한 글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툰베리가 자신의 트위터 계정 자기소개에 ‘밝고 멋진 미래를 고대하는 매우 행복한 소녀’라고 써 이에 응수하고, 몇몇 외신이 트럼프 대통령의 처신을 비판하면서 그의 트윗이 다소 민망해졌죠.
이 외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정책이나 주요 사안을 발표하는 창구로 트위터를 이용해 왔습니다. NYT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초 백악관 집무실에서 보좌진과 언쟁을 벌이다가 짜증이 나 서랍에서 아이폰을 꺼내 들었습니다. 그는 스마트폰을 책상 위에 던지듯 내려놓고 “내가 지금 바로 결정을 내리길 원하냐”면서 더 이상의 논쟁은 없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트위터를 통해 당장 본인의 결정을 전 세계에 통지할 수 있다는 위협이었지요.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는 소통의 수단을 넘어 미국 정부가 작동하는 구조의 일부이자, 정치 통제의 수단으로 자리잡은 것입니다.
◇“트위터 대통령 감당 못 해” 비판도
국제사회에서는 그의 트윗에 대한 평가가 분분합니다. 새로운 정치 모델을 만들었다는 평도 나오지만, 편파적이고 감정적인 트윗이 외교정책에 혼란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트위터 정치’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꾸준히 나오고 있는데요. 민주당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는 2017년 그를 향해 “죄송하지만 미국은 ‘트위터 대통령’을 감당할 수 없다”며 “당신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진지한 정책을 추진하는 대신 트위터에 만족하고 있다는 데 대해 많은 미국인이 우려한다”고 전했습니다.
외교ㆍ안보 분야 측근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말실수에 대한 뒷수습을 하느라 진땀을 뺀다는데요. 다나 셸 스미스 전 주 카타르 미국 대사는 2017년 "해외에서 고국의 뉴스를 들으며 일어나는 게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며 “오늘도 우리 민주주의와 제도에 관해 설명하며 하루를 보내야 한단 걸 알면서 일어난다"고 호소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기행을 매일 해명하기가 힘들다는 한탄입니다.
제임스 매티스 전 미국 국방장관의 연설문비서관이던 가이 스노드그래스는 지난 5일 "정책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동맹, 파트너들과 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트윗 하나가 올라와서는 수개월 동안 계획한 일을 망가뜨린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 정치로 제 발등을 찍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나 남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 등 역사적 외교 이벤트를 앞두고 트윗 등으로 관련 내용을 알리거나 뒤집어 전 세계 외교가가 경악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죠.
최근 트위터가 미국 대선을 1년 앞두고 모든 정치 광고를 금지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측은 즉각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는데요. 트럼프 재선 캠프의 한 관계자는 “트럼프와 보수 진영의 입을 막으려는 좌파들의 또 하나의 시도”라고 비난했다고 합니다. 다만 사용자 스스로 정치적 발언을 게시하고 공유하는 기능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하니,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정치는 내년 11월 대선까지는 계속되겠죠.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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