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리그 한국인 최다골… 후반 연속골로 팀 승리 이끌어
자신의 태클로 다친 선수 위해 두손 모아 사과ㆍ쾌유 빌어
보통 공격수는 경기장에서 ‘골’로 이야기한다고들 한다. 구구절절한 이야기보다 한 순간의 골이 경기를 지켜보는 모두의 가슴에 송곳처럼 꽂히기도 한다. 골에는 선수가 말로 담아낼 수 없는 그 동안의 땀과 눈물이 담겨 있다. 축구의 언어는 말이 아닌 골인 셈이다.
7일 새벽 손흥민(27ㆍ토트넘)이 그랬다. 소속팀에서나, 대표팀에서나 에이스로서 늘 묵묵히 제몫을 다하는 손흥민은 이번에도 피치 위에서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전했다. 한국 축구의 역사를 새로 쓴 대표 선수로서의 긍지와 자신의 태클로 심각한 부상을 입은 동료에 대한 속죄가 담겨 있었다.
손흥민은 7일(한국시간)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의 라이코 미티치 경기장에서 열린 2019~20 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B조 4차전 츠르베나 즈베즈다와의 경기에 선발 출전해 후반 12분과 16분 연속골을 터트렸다. 2골을 넣은 손흥민은 도움도 1개 기록하며 팀의 4-0 승리를 이끌었다.
손흥민은 자신의 유럽무대 통산 122, 123호골을 기록하며 마침내 차범근(121골) 전 국가대표팀 감독을 넘어 한국인 역대 유럽무대 1부리그 최다골 신기록(123골)을 세웠다. ‘차붐’이란 애칭으로 불리며 분데스리가 최고의 용병으로 손꼽혔던 차범근도 12년이 걸렸던 기록을 손흥민이 10년도 안돼 갈아치운 것이다. 이제 손흥민이 골을 기록할 때마다 한국 축구의 역사가 바뀌게 된 셈이다.
손흥민의 득점은 다른 의미에서도 전세계 축구팬들에게 초유의 관심사였다. 불과 3일 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11라운드 에버턴전에서 벌어진 사건 때문이었다. 당시 손흥민은 경기 도중 안드레 고메스(26)에게 깊은 태클을 했고, 동료 세르지 오리에(27)가 넘어지는 고메스의 발목을 밟았다. 고메스는 발목이 꺾이는 심각한 부상을 당했는데, 손흥민은 고메스의 부상에 큰 충격을 받은 듯 한동안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손흥민에게 직접적인 책임은 없었지만, 죄책감 때문인 듯 눈물까지 보였다.
그 이후 손흥민은 묵묵히 3일 뒤의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준비했다. 그리고 축구 선수답게 골로, 그라운드 위에서 고메스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 즈베즈다전에서 손흥민은 후반 12분 페널티박스 안에서 강력한 왼발 슈팅으로 상대 골 망을 흔든 뒤 중계카메라를 향해 달려갔다. 골을 넣은 선수라고는 믿기지 않는 엄숙한 표정의 손흥민은 두 손을 모아 용서를 구하고 쾌유를 바라는 세리머니를 펼쳤다. 고메스를 향한 사과의 뜻이 담겨있었다.
손흥민은 경기 후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고메스에게 정말 미안하고 죄송스럽다”며 “당연히 팀을 위해 경기에 집중해야 했지만 동시에 존중의 표현을 하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더 앞으로 나아가고,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골과 세리머니가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대답이었다”고 전했다.
손흥민은 원래 골로 스스로를 증명하는 선수다. 유럽 무대 프로 데뷔를 앞뒀던 2010년 함부르크 시절이었다. 프리시즌 9경기 9골로 재능을 만개했던 18살 손흥민은 새끼발가락 부상으로 2개월간 데뷔가 미뤄진 적이 있다. 어린 선수로서 조급할 만도 했지만 복귀 후 리그 데뷔 경기였던 쾰른전에서 골키퍼를 재치있게 제치고 데뷔 골을 터트리며 우려를 기대로 바꿔놨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리그에 적응하지 못했던 손흥민은 2015년 선더랜드와의 리그 데뷔전에서 부진한 경기력으로 후반 61분 교체됐다. 팀 내에서 최하 평점을 받았고, 실망한 토트넘 팬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손흥민에게 온갖 비난을 쏟아냈다.
하지만 손흥민은 다음 경기였던 UEFA 유로파리그 조별리그 카라바흐전에서 멀티골을 기록, 처음으로 홈 팬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북런던의 원더보이로 재탄생했다. 이후 손흥민은 경기에 나설 때마다 골을 기록했고 결국 팀의 에이스로 거듭났다. 지난해 손흥민이 기록한 토트넘의 새구장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의 구장 1호골은 이를 뜻하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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