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이 ‘2~3년 단위의 전보 인사 제도’ 개선을 공언했다. 매해 인사철마다 1,000명 이상 판사들이 지역을 이동하는 인사 관행을 재설계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특정 지역의 장기간 근무를 허용하는 내용이라, 논란 끝에 폐지됐던 ‘향판(鄕判ㆍ지역법관제)’의 부활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6일 대법원에 따르면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은 최근 법원 내부망에 ‘2020년 법관인사제도 운영방향’을 올렸다. 골자는 “대법원장이 ‘대법원장의 전보인사 권한 축소 방안’을 사법행정자문회의 1차회의에 부의했으니 전보 인사 축소를 위한 ‘비경합법원 장기근무 제도’의 도입 여부가 검토 대상이 될 것”이란 설명이다. 이어 추가로 “장기근무 희망자가 정원 대비 일정 비율 이하인 ‘비경합법원’에서의 장기근무만을 허용하겠다는 것”는 설명을 덧붙였다.예를 들어 비경합법원 분류 기준을 50%로 정하면, 정원 80명인 지방법원에 40명 이하가 지원하면 신청자 전원이 장기근무를 허용 받는 식이다. 행정처는 △판단기준(비율) 설정 △권역별 차등장기근무 기간 △장기근무 기간 △연속 근무 가능 여부 △복수 신청 허용 여부 등을 향후 검토해야 할 쟁점으로 꼽았다. 2021년 2월 정기인사부터 적용될 수도 있다.
법관 인사는 신규임용 후 지방권-경인권-서울권 순으로 3~4년씩 옮겨 다니며 근무하다 15년차 즈음 부장판사가 되면 다시 이에 따라 이동하는 식으로 이뤄져왔다. 하지만 법조 경력이 있는 이들 가운데 법관을 뽑는 경력법관제가 정착되면서 새로 임용되는 젊은 판사들이 줄었다.
2014년 향판제 폐지도 악영향을 끼쳤다. 수도권 근무에 지원자가 몰리자 대법원은 2004년 퇴임 때까지 한 지역에서 근무할 수 있는 향판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2010년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황제노역' 논란 과정에서 향판이 지역 토호와 유착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폐지됐다. 대법원 관계자는 “당장 내년 정기인사만 해도 지방권 근무 법관이 100명 이상 부족해 지방 근무가 연장되는 경우가 다수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전보인사 관행 개선을 두로 법조계에서는 ‘사실상 향판의 부활’이란 해석이 나온다. 판사 출신 변호사는 “지원자가 적은 비경합법원은 당연히 서울과 먼 지역”이라며 “인구가 적은 곳일수록 토호와 유착 우려가 높아지기 때문에 부작용 방지 대책 마련이 개선안의 핵심이 될 것”이라 말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향판을 폐지한 건 대법원장의 인사권을 강화하려는 의도도 있었다”며 “향판의 부활을 부정적으로 몰기보다 부작용 방지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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