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최근 6주 간 러시아 용병 200명 투입”
미군 없는 사이 영향력 확대…시리아 전략과 판박이
내전을 겪고 있는 리비아 서부의 아지지야 지역 내 한 야전병원에 민병대원 시신 한 구가 실려왔다. 환부를 살펴본 결과 총상으로 인한 사망이 분명했다. 다만 통상 나타나는 ‘관통상(Exit wound)’이 보이지 않았다. 이 시신뿐 아니라, 최근 총격을 당한 시신 다수가 머리나 복부에 손가락 굵기만한 구멍은 있었으나, 총알이 관통하진 않은 상태였다. 민병대원들은 “숙련된 러시아 스나이퍼(저격수)들의 솜씨”라고 말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5일(현지시간) “최근 6주 간 약 200명의 러시아 용병들이 리비아 내전에 투입됐다”며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에서 재차 힘을 키우겠다는 크렘린궁의 목표에 따른 움직임이라고 보도했다. 러시아 용병들의 전투력은 이미 정평이 나있으나 최근 리비아에서 활동하는 용병 중 상당수는 저격수인 것으로 보인다. 유럽 지역의 한 안보 분야 관리는 “관통상이 없다는 것은 ‘할로우 포인트(hollow point)’ 탄약을 사용한 증거”라며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활동하는 러시아 저격수들에게 희생된 시신들에서도 비슷한 총상이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할로우 포인트는 갈라진 모양의 탄두를 사용한 탄약으로 일반 탄약보다 관통력은 떨어지지만 파괴력은 훨씬 큰 탄약으로 주로 사냥꾼이나 저격수들이 사용한다. NYT는 “수호이 전투기와 정밀유도탄, 미사일을 동원해 리비아 내전에 개입하는 러시아가 지금은 저격수들까지 투입해 리비아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도모하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리비아는 현재 트리폴리 등 서부에 근거지를 둔 통합정부(GNA) 세력과 동부 최대 군벌인 칼리파 히프터가 이끄는 리비아국민군(LNA) 영역으로 갈려 내전 중이다. 통합정부는 미국과 터키, 유엔의 지지를 받는 한편 리비아국민군은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를 뒷배로 두고 있다.
언뜻 미국과 러시아 간 팽팽한 힘겨루기 양상을 보일 것 같지만, 실상은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리비아국민군이 우세하다. 미국 등 서방세력이 통합정부군을 지지하긴 하나, 리비아 동부 유전을 장악한 히프터와도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탓이다. 리비아는 미국 텍사스주(州) 3배 크기의 광대한 석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내전 중에도 하루 130만 배럴을 생산하고 있다.
심지어 미국은 자국민 안전을 이유로 지난 4월부터 리비아 주둔 미군 병력을 철수시키고 있다. 미국이 빠진 틈에 러시아로선 리비아에서 힘을 키울 수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이 같은 양상은 최근 시리아 사태를 연상케 한다. 지난달 초 미군이 시리아에서 철수하자, 러시아는 터키와 쿠르드족 간 중재자를 자처하며 이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일거에 확대했다. NYT는 “러시아가 시리아 사태에서 사용한 영향력 확대 교범이 리비아에서도 똑같이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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