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브랜드가 90% 독점하고 있는 시장에 차별화 전략으로 승부 걸어
연간 830억 개비의 담배를 생산하는 인도는 중국(3,150억 개비)과 브라질(851억 개비)에 이어 세계 3위 담배 생산국이다. 인도의 국민담배라 불리는 ‘골드 플레이크’를 제조하는 인도 최대 담배 기업 ITC가 시장의 79%를 점유하고 있고, 세계 1위 담배 회사인 필립모리스의 인도 합작 법인인 GPI가 11%, ITC의 자회사인 VST가 약 8%를 차지하고 있다. 사실상 ITC가 인도 담배 시장의 90% 가까이 독점하고 있다.
이처럼 토종 브랜드의 힘이 막강한 인도 담배 시장에 국내 기업 KT&G가 도전장을 냈다. 인도에는 없었던 초슬림 담배와 캡슐 담배를 전략 상품으로 내세웠고, KT&G 브랜드를 내건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었다. 인도에 특정 담배 브랜드 전용 매장이 들어선 건 처음이다.
지난 달 29일 인도 펀자브주 잘란다르시 ‘코트 스트리트(법원 거리)’에 있는 한 담배 가게를 찾았다. 이곳은 인도 수도 뉴델리에서 북서쪽으로 약 380㎞ 떨어진 지역이다. 가게 주인 아만 씨는 “인도 담배 맛은 다 고만고만한데 한국 담배는 독특해서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KT&G는 지난 7월부터 ‘보헴 시가 슬림핏’과 ‘엣지9’ ‘엣지 블랙’ 등 3종류의 담배를 인도에 수출해 판매하고 있다.
인도 담배 시장은 타르 함량(10㎎ 이상)이 높고, 길이가 69㎜나 72㎜인 레귤러(굵은 담배) 제품이 대부분이다. 반면 KT&G의 주력 수출 제품인 보헴 시가 슬림핏은 저타르(5㎎)에 길이가 100㎜인 초슬림 제품이다. 이 담배는 일반 궐련 종이 대신 시가향이 함유된 특수 궐련 종이로 제작돼 시가를 피우는 듯한 느낌이 나고, 필터 부분에 있는 캡슐을 터뜨리면 상쾌한 맛이 난다.
보헴 시가 슬림핏 한 갑의 가격은 300루피(약 4,800원)로 골드 플레이크나 말보로와 같다. 인도 뉴델리의 대졸자 평균연봉이 약 35만~55만 루피(약 571만~816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담뱃값이 상당히 비싼 편이다. 때문에 인도에선 담배를 갑이 아닌 개비로 구매하는 문화가 퍼져 있다. 보헴 시가 슬림핏과 엣지 블랙, 엣지9의 개비당 가격은 각각 15루피, 12루피, 10루피다.
잘란다르의 번화가 ‘모델 타운’의 매장 ‘라란 빤 숍’에 가니 ‘보헴’이라고 적힌 LED 진열장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인도 정부가 가게 간판에 담배 회사 이름이나 브랜드를 노출할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방식으로 홍보를 한다. 가게 점원 수실 씨는 “디스플레이(전시) 효과가 아주 크다. 진열장을 보고 한국 담배를 문의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KT&G는 30일 잘란다르 시내 대학가에서 플래그십 스토어 준공식을 개최했다. 현지 대학생들에게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서다. KT&G 담배 수입사 ‘레벨1 인디아’의 디팍 한다 본부장은 “인도는 삼성이나 현대차, LG 등 한국 기업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데, 한국산 담배 역시 비슷한 평가를 받고 있다”며 “젊은 대학생이 많은 잘란다르에서 시작해 델리로 판매망을 넓혀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KT&G는 내수 시장을 벗어나 세계 시장으로 눈을 돌리며 수출 기업으로 변신하고 있다. 1998년 처음 수출을 시작했고, 1999년 26억 개비에 불과하던 해외 판매량은 2017년 554억 개비를 넘어서 18년 만에 20배 이상 성장했다. 2017년에는 해외 매출 1조원을 돌파하는 등 세계 5위 담배 기업으로 성장했다.
KT&G는 인도 시장을 스리랑카, 네팔로 이어지는 서남아시아 지역 거점으로 삼아 수출을 더욱 늘릴 계획이다. 이창우 KT&G 글로벌브랜드 실장은 “수출국가를 내년까지 100개국, 2025년까지 200개국으로 늘려 5년 내에 글로벌 ‘빅4’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잘란다르(인도)=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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