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연예계에 기분 좋은 바람이 불고 있다. 배우들의 ‘재발견’ 러시다.
2007년 가요계에 데뷔한 이후 메가 히트곡인 ‘미쳤어’와 ‘토요일밤에’로 여자 솔로가수 계보의 새 역사를 썼던 손담비. 가수로서 흥행가도를 달리던 그는 2009년 ‘드림’을 시작으로 연기에 발을 들였다.
2012년에는 MBC 연기대상 특별기획 부문 여자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하며 배우로서의 자질을 입증했던 그는 지난 2013년 마지막 앨범 발매를 끝으로 본격적인 배우로의 전향을 알렸다. 이후 ‘가족끼리 왜이래’ ‘미세스 캅2’, 영화 ‘배반의 장미’ 등에 출연하며 꾸준히 연기에 도전해 왔다.
하지만 ‘가수 손담비’로서의 이미지가 너무 너무 강했던 탓일까, 오롯이 배우로 전향한 이후 약 5~6년간 손담비는 크게 배우로서 빛을 보지 못하며 아쉬움을 자아냈다. 마지막 드라마 출연작이었던 ‘미세스 캅2’ 출연 이후 3년 여 간 예능을 제외하곤 안방극장 차기작은 전무했으며, 그 사이 개봉했던 영화 주연작인 ‘배반의 장미’ 역시 이렇다 할 흥행 스코어를 기록하지 못했던 상황 속에서 ‘배우 손담비’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 드디어 손담비에게도 한줄기 빛이 들었다. KBS2 ‘동백꽃 필 무렵’을 만나 연기 인생의 꽃을 피운 것이다.
손담비는 ‘동백꽃 필 무렵’에서 까멜리아 알바생 향미 역을 맡아 열연 중이다. 극 초반 습관적인 도벽과 남다른 촉, 비상한 관찰력 등 독특한 설정으로 주목 받았던 향미는 이후 연쇄살인마 ‘까불이’에게 살해당한 피해자로 강력하게 추정되며 극의 중심에 자리 잡았다. 극 중 ‘키플레이어’ 역할을 하고 있는 향미를 완성한 것은 발군의 연기력을 불사른 손담비였다.
3년 만에 안방극장 복귀를 알린 손담비는 전작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표정부터 말투, 눈빛까지 모두 실제 향미를 보는 듯 혼연일체 된 모습이라는 호평 속 디테일을 살린 캐릭터 연출까지 더해지며 그의 ‘인생 캐릭터’가 탄생했다. 실제로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아 뿌리 염색을 채 하지 못한 향미의 리얼한 헤어스타일은 손담비가 직접 제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연기력의 성장뿐만 아니라 디테일까지 고민한 그의 노력이 제대로 빛을 발하고 있다.
KBS2 ‘녹두전’의 강태오 역시 데뷔 후 오랜 시간을 돌아 ‘인생 캐릭터’를 만나며 역대급 시너지를 발휘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 2013년 웹드라마 ‘방과 후 복불복’으로 데뷔했던 강태오는 이후 ‘최고의 연인’, ‘당신은 너무 합니다’, ‘쇼트’, ‘그 남자 오수’, ‘첫사랑은 처음이라’ 시리즈 등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려왔다. 다양한 작품에 꾸준히 출연하며 필모그래피를 쌓아왔지만, 데뷔 이후 약 6년 간 ‘배우’ 강태오를 대표할 만한 ‘인생작’이 탄생하지 않았다는 것은 치명적인 아쉬움이었다.
그런 그에게 ‘녹두전’ 속 차율무는 역대급 연기 변신의 기회였다. ‘인생작’, ‘인생 캐릭터’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 모자람이 없는 연기로 이 같은 기회를 200% 살려낸 그는 최근 안방극장의 ‘소름 유발자’로 활약 중이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녹두전’에서 두 남녀주인공과는 달리 원작에 없는 캐릭터를 맡은 강태오의 존재감은 극 초반 꽤나 미비했다. 하지만 극 중반부, 강태오가 가진 반전이 드러나면서 그의 존재감은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그의 정체가 능양군, 훗날의 인조라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강태오는 정체를 밝힌 뒤 본격적으로 흑화하기 시작한 차율무의 심리를 완벽한 완급조절로 그려내며 ‘역대급 빌런’에 등극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섬뜩함으로 무장한 악인의 모습부터 왕 앞에서 벌벌 떠는 모습까지 섬세한 심리 묘사는 지금껏 그가 다져왔던 탄탄한 연기 내공을 입증하며 시청자들을 압도했다. 특히 그가 목을 졸리는 장면에서는 ‘실제 목이 졸리지 않고는 저런 연기가 나올 수 없다’ ‘그 동안 강태오의 연기력을 왜 몰라봤나’라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줄 잇는 등, 그의 재발견에 대한 호평은 끊이지 않았다.
‘녹두전’을 통해 배우로서 새로운 매력을 조명하며 재발견을 알린 이는 또 있다. 배우 장동윤이다.
장동윤은 앞서 2016년 웹드라마 ‘게임회사 여직원들’로 데뷔한 이후 ‘솔로몬의 위증’, ‘학교 2017’ ‘시를 잊은 그대에게’ ‘땐뽀걸즈’ 등에 출연하며 신인답지 않은 연기력을 입증해 왔다. 하지만 데뷔 이후 약 2년간 상당수의 출연작에서 학생 역할을 도맡아 온 그에게 다양한 역할에 대한 아쉬움은 그에게 숙제로 남아있었다.
‘녹두전’은 그에게 배우로서의 스펙트럼 확장은 물론, 그동안 가려져 있던 ‘배우 장동윤’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기회였다. 극 초반 파격적인 여장에 도전하며 ‘여자보다 더 예쁜’ 비주얼로 파격적인 연기를 선보였던 그는 현재 김소현과의 가슴 절절한 로맨스까지 완벽하게 소화하며 다채로운 매력 발산에 성공했다. 여장 연기 당시에도 부정적인 반응 대신 ‘자연스럽다’는 긍정적인 시청자들의 반응이 전해졌다. 그의 안정적인 연기력이 바탕이 된 덕분이었다.
이번 작품 속 ‘전녹두’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 체지방을 감량한 덕분에 전작들에서 보여줬던 ‘학생 같은’ 이미지에서 탈피해 ‘남성적 매력’까지 장착했다. 연기로도, 배우의 이미지에 있어서도 강렬한 존재감을 입증하며 한 계단 성장을 거듭한 셈이다.
세 사람 외에도 현재 방송 중인 MBC ‘어쩌다 발견한 하루’ 속 남자 주인공인 SF9의 로운과 이재욱 역시 작품을 통해 이전과 다른 존재감을 입증하며 주가 급상승을 알리고 있는 배우들 중 하나다.
좋은 작품 속 번뜩이는 연기로 빛을 발하는 배우들의 재발견은 언제나 반갑다. 특히 그것이 예기치 못한 발견일 때는 더욱 그렇다. 간절했던 기회의 문을 열고 드디어 자신의 ‘진짜 가치’를 증명하는 데 성공한 이들이 앞으로 그려갈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도무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홍혜민 기자 hh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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