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이유미의 다시 광릉 숲에서] 은행나무의 세월

입력
2019.11.05 18:00
29면
0 0
위례 은행나무길(사진 산림청)
위례 은행나무길(사진 산림청)

깊을 대로 깊어진 가을입니다. 계수나무의 달콤함과 노란빛으로 시작된 가을은 서어나무의 잎새들과 함께 낙엽이 되어 흩날리며 이어졌습니다. 지난주 광릉숲 가을빛은 갈색, 노란색 그리고 조금씩 남아있는 참나무의 잎새들 사이로 복자기나무와 당단풍의 붉은 단풍빛이 돋보이는 풍광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주가 지난 오늘의 가을빛은 선연했던 붉은빛이 잎이 말라 퇴색하며 깊이를 더해가는 가운데 노란 은행나무 잎새들이 여전히 가을을 눈부시게 이어가고 있네요. 낙엽을 밟는 느낌도 운치 있어 쏠쏠한 행복으로 남습니다.

불과 며칠 사이에 은행나무의 시간이 왔구나 싶습니다. 어디 수목원뿐일까요 전국의 곳곳이 은행나무를 만나지 않고는 길을 걸을 수 없는 시간이 온 것이지요. 우리는 일 년에 한 번씩 이렇게 절실하게 은행나무를 느끼는 순간을 맞이하지만 사실 은행나무는 세월이라는 말로는 담을 수 없을 만큼 긴긴 시간을 담고 있습니다. 2억7,000만년전 오늘과 같은 모습의 인간이 지구상에서 본격적으로 출현하기 훨씬 전부터 살아왔던 나무니까요. 화석기록에 의하면 고생대 페롬기부터 살았던 은행나무는 중생대 쥐라기에서 백악기에 공룡들이 함께 살던 그 시기에 번성하였다고 합니다.

여러 가설이 있지만, 공룡시대의 마감과 같은 원인으로 짐작되는 것처럼 기후가 변화하여 빙하기가 찾아왔고 대부분의 곳에서 대부분의 생물들처럼 은행나무들은 사라졌거나 쇠퇴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중국 땅 일부가 피난처가 되어 우리가 오늘 보는 은행나무 한 종이 멸종의 위기에서 살아남았고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 땅에 사람이 살게 된 것은 5만년전이라고 하는데 은행나무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그로부터도 한참의 세월이 흐르고 또 흘러 10세기입니다. 화석을 떠나 살아있는 은행나무들의 기록된 세월은 그래도 가늠이 좀 되는 시간입니다.

문막 반계리 은행나무 – 늦은 가을 이 나무의 세월과 아름다움을 꼭 보시라고 권합니다.
문막 반계리 은행나무 – 늦은 가을 이 나무의 세월과 아름다움을 꼭 보시라고 권합니다.

현재 은행나무 자생지는 지구상에 오직 두 곳입니다. 중국 동부 저장성 텐무산과 남서부 충칭의 진포산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텐무산의 은행나무들은 개체별로 유전적 변이가 많지 않고 1,000년전 스님들이 심었다는 기록도 있어 진짜 오래 전부터 살아남아 스스로 살아온 자생지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은행나무는 언제부터 살았을까요. 화석의 기록을 보면 신생대 플라이스토세까진 한반도에 은행나무 종류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지만 살아있는 은행나무가 한반도에 들어온 것은 주로 불교의 영향으로 승려들을 통해서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는 용문사 은행나무로 1,000년이 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진화생물학자이며 은행나무 전문가로 알려진 피터 크레인은 ‘은행나무-시간이 망각한 나무’라는 책에서 해안 무역로를 따라 황해를 건너온 것은 16세기 말이라고 추정합니다. 세계의 오래된 은행나무를 유전적으로 분석한 연구결과는 참 재미있게도 캠퍼라는 사람이 일본에서 종자를 가져와 유럽에 퍼트렸다고 알려져 있는 것과는 다르게 유럽의 은행나무 노거수는 한국 그것도 청도의 은행나무와 유전적으로 유사하다는 것입니다. 기록된 역사로는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지금, 적어도 수백 년이라도 한반도에 있었을 은행나무의 흔적을 찾는 연구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은행나무의 세월을 생각하며 걷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노란 잎새들이 가을바람에 우수수 흩날립니다. 눈앞 하루하루에서 자유로워져 보라고 말하는 듯하네요.

이유미 국립수목원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