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영유아 야간진료센터
7일 오후 11시쯤 경북 경주시 동국대경주병원 영유아 야간진료센터.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엄마가 젖먹이를 안고 상기된 표정으로 들어섰다. 아이는 아무리 달래도 연신 칭얼거렸다. 당직근무 중이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입에서 “감기”라는 말이 떨어지자 그제서야 아이 엄마는 안도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한밤중에 아이가 아프면 그냥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리거나 대구의 큰 병원으로 가야만 했는데, 집 가까운 곳에 전문의가 항상 있으니 든든하다”고 말했다.
경주시의 영유아 야간진료센터 설치 지원사업이 실질적인 저출생 대책으로 주목 받고 있다. 지역민에 대한 의료서비스 제고는 물론 관광객들도 인정하는 명품행정이라는 평가다.
경주시 영유아 야간진료센터는 3월 동국대경주병원 응급실에 설치됐다. 소아과전문의 4명과 전담간호사 8명이 교대로 24시간 1년 365일 상주한다. 혈액검사, 컴퓨터단층(CT)촬영, 입원 등 원스톱 서비스체계를 갖췄다. “아이 낳아 기르기 좋은 도시”를 만들겠다는 주낙영 경주시장의 공약사업으로 시작했다.
주 시장은 “경주에도 영유아 진료 의료기관이 6곳이나 있지만 밤이나 주말, 공휴일엔 의료공백이 발생한다”며 “영유아 환자에 대한 치료의 골든타임을 확보, 의료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안심하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위해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경북은 인구 10만명당 의사 수가 135.2명으로 세종시를 제외하곤 전국에서 가장 적은 지역이다. 서울(300.8명)은 물론 강원(172.5명)보다도 적다. 23개 시ㆍ군 중 13개 시ㆍ군에 분만산부인과가 없고, 5개 군에는 일반 산부인과도 없다. 영유아 환자를 전문적으로 진료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도 찾아보기 힘들다. 전국에서 가장 넓은 면적에 비해 이농에다 저출산고령화로 소멸을 걱정해야 할 지경이기 때문이다.
세계적 관광도시 경주시도 예외는 아니다. 10월 현재 경주시 주민등록 인구는 25만5,448명. 30만을 넘던 시절과 비교하면 많이 줄었지만, 지방 중소도시치고는 선방한 편이다. 하지만 지난해까지 경주지역엔 야간에 진료하는 소아과전문의는 전무했다.
경주시는 취약시간대 영유아 환자 의료공백 해소를 위해 영유아 야간진료센터 설치에 나섰다. 지난해 9월부터 동국대경주병원과 협의를 시작했다. 시의회를 설득해 관련 예산을 확보했다. 시는 센터 운영에 필요한 의료진 확보 비용의 절반을 부담키로 했다. 시 지원분은 연간 8억원이 넘는다.
특히 전문의를 4명이나 채용했다는 점에서 이목을 끈다. 의료계 관계자는 “지방 중소도시에선 서울보다 연봉을 2, 3배의 준다 해도 외면하는 게 현실인데, 4명이나 뽑았다는 것은 역사적인 일”이라며 “연봉도 연봉이지만 충분한 인력을 확보함으로써 적절한 휴식을 보장할 수 있게 됐고, 이는 곧 의료의 질 향상으로 이어진다”고 평가했다.
이수현(33ㆍ경주시 용강동ㆍ주부)씨는 “한밤중에 아이가 아파 보챌 때 애태우는 부모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린다면 영유아야간진료센터 설치 예산을 아까워하면 안 된다”며 “출산장려금도 좋지만 아이를 믿고 키울 수 있는 의료환경을 만들어 주는 야간진료센터야말로 진정한 저출산대책”이라고 말했다.
센터는 관광객 유치에도 도움을 줄 전망이다. 경주시와 동국대경주병원에 따르면 3월 센터 개설 후 9월까지 내원환자는 2,956명. 평일 밤 1,257명, 토요일 616명, 일ㆍ공휴일 1,083명이다. 이 중 경주지역이 76%로 가장 많았지만 인접 포항 영천 울산지역 환자도 있었고 특히 관광객이 18%에 달했다. 경주시는 관내 호텔, 리조트 프런트에 영유아 야간진료센터 안내문을 비치하는 등 영유아를 동반한 관광객들의 불편해소에 나섰다.
무작정 대도시 병원을 찾던 관행도 개선되고 있다. 상급종합병원인 칠곡경북대병원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경주지역에선 단순 감기환자도 한밤중에 우리 병원을 찾는 바람에 응급실 운영에 부담을 주는 일도 있었지만, 이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현지에서 처치가 돼 왜곡된 의료전달체계를 개선시키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병원 측은 영유아 환자를 성인과 분리된 공간에서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진료할 수 있도록 응급실한쪽에 마련된 센터를 독립된 공간으로 옮기기로 하고 리모델링 공사에 착수했다. .
이동석 동국대 경주병원장은 “우리 병원이 24시간 영유아응급진료센터를 운영함으로써 취약시간대 영유아 의료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게 됐다”며 “지역민들의 불편을 덜어주는 것은 물론 영유아를 동반한 외지관광객들에게 ‘경주는 아이가 갑자기 아파도 믿고 갈 수 있는 곳’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어 관광산업 활성화에도 도움을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경주=김성웅 기자 ks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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