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셋의 보험영업 달인 한상철씨
“내가 송해하고 같아.”
갑자기 무슨 말인가 했다. 인터뷰를 시작한 지 50여분이 지났을 때였다. 다음 질문을 하려고 잠시 취재수첩을 뒤적이던 참이었는데, 그가 그 짧은 틈을 비집고 이 말을 툭 던졌다. ‘맥락 없이 웬 송해?’ 순간, 기자의 입에서 맴돌던 이 말은 이내 “예?”라는 되물음으로 바뀌었다. “내가 1927년생이여. 송해랑 나이가 같다고.” 노익장을 자랑하는 방송인 송해씨처럼 나도 왕성하게 일을 하고 있는데, 왜 내 나이를 묻지 않느냐는 걸로 읽혔다. 하기야 그를 인터뷰하게 된 이유의 90%가 나이였으니, 그의 말이 꼭 틀린 건 아니었다. 더구나 미리 인터뷰 취지를 알렸던 터라, 여느 인터뷰이와 달리 당신의 ‘춘추를 여쭙고’, “그 연세가 믿어지지 않는다”, “건강 비결이 뭐냐”는 경이감을 연발하며 인터뷰를 시작했어야 옳았다. 하지만 어쩌랴, 이미 늦은 걸. 어쨌거나 우리 나이로 아흔세 살. ‘곧은 자세와 카랑카랑한 음성도 정정하게 기운에 차 보이는’ 그는 KB손해보험 광주 백두대리점 설계사 한상철씨다.
이젠 손주뻘 되는 보험설계사들과 경쟁 아닌 경쟁을 펼치고 있는 그는 자동차보험업계의 살아 있는 레전드로 불린다. 매년 7억여원어치의 보험을 팔아 연봉 2억1,000만~2억4,000만원을 챙기는 게 벌써 15년째다. “아직도 매달 180여명씩 자동차보험 계약을 체결하고 있어. 물론 신규뿐만 아니라 갱신 계약도 포함돼 있지. 아마 매월 자동차보험 매출액이 6,000만원은 넘을 거야.” 이 정도면 ‘영업의 달인’이라고 해도 토를 달 사람은 없어 보였다.
지금이야 달인 소리를 듣지만 그렇다고 그가 처음부터 ‘보험쟁이’는 아니었다. 그의 전직은 경찰이었다. 한국전쟁이 끝난 이듬해 경찰에 입문해 32년간을 형사로 살았다. 경찰 재직 당시 그는 ‘도둑 잡는 베테랑 형사’로 이름을 날렸다. 한 달에 평균 10여명씩을 잡아들였다. 요즘처럼 폐쇄회로(CC)TV도 없던 시절인 걸 감안하면 놀라운 검거 실적이다. 당시 동료들은 그런 그를 두고 “도둑놈과 연(緣)이 붙었다”며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그땐 도둑놈들이 담배 냄새를 맡고 다 도망가고 그랬어. 통행금지가 있던 때라 그 시간에 골목 어귀 같은 곳에 숨어서 담배 피우는 사람들은 십중팔구는 경찰이었지. 도둑놈들이 그 냄새를 맡고도 ‘나 잡으시오’ 하고 오겄어? 나는 담배를 안 피우니 (도둑을) 많이 잡았지. 그땐 정말 집에 안 들어가고 도둑만 잡으러 다녔어.”(웃음)
그의 투철한 사명감은 1961년 5ㆍ16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부도 인정했다. 그는 1965년 박정희 정부가 전국 경찰관 중 국가관과 청렴도가 높은 경찰관을 차출해 정보기관에 파견 근무토록 한 3명 중 한 명이었다. 그 후 21년을 정보기관에서 일을 했고, 1986년 정년 퇴임했다. 정보기관에선 무슨 일을 했는지 궁금했지만 그는 “그때 (정보기관에서 보고 들었던) 일은 죽을 때까지 말 못 한다”고 했다. 이렇듯 그는 뼛속까지 경찰이었다.
그랬던 그가 보험업계에 뛰어든 건 사기꾼에게 사기를 당한 뒤였다. 그는 퇴직 후 “회사 임원을 시켜준다”는 사기꾼의 꾐에 넘어가 6개월 만에 퇴직금을 모두 날렸다. 그는 “묘한 놈이 (나한테)붙어서 당해부렀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베테랑 형사 출신이었지만 세상 물정 모르고 사기꾼에게 당했다는 말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당시 KB손해보험 전신인 ㈜범한화재해상보험 광주지점장이던 후배가 소식을 듣고 찾아와 보험설계사를 권유했지만 선뜻 나서지도 못했다. “꼿꼿한 경찰 기질이 몸에 배어 있는데, 과연 고객들에게 허리를 굽혀야 하는 보험영업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지. 그런데 후배가 끈질기게 설득하더라고. 그래서 ‘그래 못할 게 뭐가 있겠냐, 한번 해 보자’ 하고 뛰어들었지.”
그러나 보험설계사의 길은 만만치 않았다. 그의 우려대로 경찰에서 보험설계사로의 ‘체질 개선’이 쉽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게 고객을 피의자 다루는 듯한 말투가 자꾸 튀어나와 애를 먹었다. 그는 “2년 넘게 대리점 적자운영이라는 ‘수업료’를 내고서야 겨우 영업이 뭔지 알겠더라”고 했다.
하지만 그가 보험설계사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경찰 물’이었다. 교통사고를 당한 자신의 고객을 가해자로 둔갑시킨 경찰을 찾아가 호되게 꾸짖고 사건을 바로잡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보험계약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여기에 고객들이 사고가 나면 밤낮없이 곧바로 사고현장에 달려가 사고 수습을 돕는다고 알려진 것도 도움이 됐다. “새벽에 잠자다가 잠옷 입고 사고현장에 간 게 한두 번이 아니여. 그런 모습을 본 택시기사들이 내 명함을 뿌려주며 입소문을 내주더라고.” 고객 만족을 이끌어 내는 이런 근면함과 성실함은 결국 그를 보험왕으로 만들었다. 그는 회사 내에서 영업 실적 상위 1%에 드는 최우수 직원에게 주는 ‘골드멤버’에 1998년부터 올해까지 21년 연속 뽑혔다. 이 기록은 국내 보험업계에선 처음이다. 그 외에도 그가 받은 각종 보험과 관련된 상(賞)은 차고 넘친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더 이상 탈 상이 없다.”
그는 보험 사기도 여러 건 잡아냈다. 그는 2002년 4월 근로자재해보험을 들었던 고객이 일을 하다가 아킬레스건이 끊어졌다며 보상금 2억7,000만원을 청구하자 본능적으로 보험 사기 냄새를 맡았다.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면 1m도 걷기 힘들 텐데, 해당 고객이 자기공명영상촬영(MRI) 검사를 받으라는 병원 외래 초진 의사의 지시를 무시하고 10여일 뒤 검사를 받은 걸 수상히 여긴 것이다. 그는 경찰에 직접 고소한 뒤 재판까지 끌고 가 보상액을 2,000만원대로 낮췄다.
이쯤 되면 회사 측에서도 그냥 있을 수는 없을 터. 2004년 당시 LIG손해보험 호남본부장은 “개사(開社) 이래 이런 설계사는 없었다”며 특진을 상신하고, 한씨에게 1년간 업무추진비 30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는 “할 일을 한 것뿐”이라며 거절한 뒤 “차라리 종신형 명예고문직을 달라”고 했다. 업계에선 “판공비가 싫다니, 뭐 저런 사람이 있냐”는 반응이 나왔다. 그의 고집을 꺾지 못한 회사 측은 “널 속에 들어가도 고문 직함을 드리겠다”며 그를 호남보상부 고문으로 모셨다. 그는 “사장 위에 고문 아니겄어? 난 그걸로 만족해”라고 웃었다. 이 역시 업계 최초다. 그는 고문이 된 뒤에도 가짜 진단서로 보험금을 타 내려던 보험설계사 3명을 적발해 옷을 벗기기도 했다. 2013년 당시 구자준 LIG손해보험 대표이사 회장이 이임식 당시 “목숨 걸고 회사 일을 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며 이임사의 대부분을 그에 대한 칭찬으로 할애한 건 업계의 유명한 일화다.
그의 영업 비결은 꼼꼼하고 철저한 ‘애프터 서비스’다. “고객을 새로 확장하는 것보다 1명의 고객이라도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게 성심껏 관리하는 게 중요하지. 그러다 보니 고객 스스로 다른 사람을 소개해 주더라고. 돈(보험료)만 받고 끝내면 안 되는 게 세상이야. 고객에게 진심을 다 하면 잘 되게 돼 있어.” 그는 지금도 고객들에게 매년 한두 번씩은 반드시 전화해 안부를 물으며 고객 관리를 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그가 다시 질문을 재촉했다. “나는 건강 하나는 타고났어. 내가 생각해도 희한하단 말이여. 지금껏 잔병 하나 키워본 적도 없어.” ‘안부’라는 단어가 나오자, 1년에 한 번 건강검진을 받을 때 말고는 평생 병원에 가본 적이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친구들은 다들 하늘나라로 갔고 두 명이 남아 있는데, 이 녀석들은 집에서 못 나오고 있다”고 했다. 병상에 누워 거동을 못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런 그에게 향후 계획을 물었더니, 대답이 걸작이다. “계획은 무슨, 없어! 이대로 쭉 하는 거지. 다시 태어나도 보험설계사를 할 거여.” 그는 다소 성의 없는 말투로 들릴 수 있겠다 싶었는지 이내 말을 바로잡으며 웃었다. “이 목숨 다할 때까지 보험설계사 일을 해야죠. 보험설계사는 정년이 없잖아요.” 그는 그렇게 1막보다 긴 인생 2막을 펼치고 있었다.
광주=글ㆍ사진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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