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경기 수원에 소재한 부국원(富國園) 내에 걸렸던 벽걸이 괘종시계가 80여 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온다. 당시 부국원에 근무했던 할아버지가 고이 간직해 왔던 시계 등의 유물을 손자가 기증하면서 가능하게 됐다.
부국원은 국가 기업이 아닌 개인이 운영하는 종묘·농기구 회사였으며 부국원 건물은 1923년 건립된 것으로 ㈜부국원의 본사였다. 부국원은 서울 명동과 일본 나고야에 지점을, 일본 나가노현에는 출장소를 둔 대기업에 속했던 곳이다.
4일 수원시에 따르면 수원시 영통구에 사는 이모씨는 지난달 23일 괘종시계와 부국원 화재해상보험 주식회사가 발행한 화재해상보험증서, 거래 검수서, 부국원 수취 엽서·봉투, 일제강점기 우표 등 부국원 관련 유물 141점을 시에 기증했다.
특히 거래 검수서에는 부국원이 함경북도를 비롯한 여러 지역 농회와 거래한 농산물 내역이 담겨있다. 당시 부국원 경제 사정과 농업 구조까지 파악할 수 있는 귀한 자료다.
이 유물들은 수원 신풍초등학교와 화성학원(수원고등학교 전신)을 졸업하고 1926년 부국원에 입사한 이씨의 할아버지가 20여년 간 근무하면서 처리한 서류와 생활용품 등이다.
1996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손자 이씨가 소중히 보관해오다 최근 부국원 건물이 근대역사문화전시관으로 바뀐 사실을 우연히 알고 나서 유물을 시에 기증하기로 결정했다.
익명을 원한 이씨는 기증하는 자리에서 “어린 시절 할아버지께서 부국원 건물을 가리키며 내가 오랫동안 일했던 회사라고 말씀하셨다”며 “소중한 할아버지의 유품이 다시 빛을 보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수원시는 이씨가 기증한 유물이 당시 농업 구조, 부국원 경영 사정 등을 파악할 수 있어 연구·전시자료로서 가치가 높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시는 기증유물의 보존처리 및 자료 해제 작업을 거친 후 시민들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수원시 관계자는 “1930~40년대 종자·종묘 거래 내역 등 당시 부국원 사정을 파악할 수 있는 희귀한 자료를 기증해주셨다”며 “지속해서 자료를 발굴해 부국원 연구를 활성화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수원시 팔달구 향교로 130번지에 있는 부국원 건물도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해당 건물은 한국전쟁 이후 수원법원·검찰 임시청사(1952~1956년), 수원교육청(1950년대 말~1963년), 공화당 경기도당 당사(1970년대) 등으로 활용됐다.
이후 1981년부터 ‘박내과 의원’으로 오랫동안 사용했다. 개인소유였던 건물이 개발로 인해 2015년 철거 위기에 놓이자 수원시가 매입해 복원했다.
구 부국원 건물은 2015년 국민문화유산신탁의 시민이 뽑은 지켜야 할 문화유산 12선에 선정됐으며, 2017년 10월에는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698호로 지정되며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기도 했다.
수원시는 2016년 복원계획을 수립해 전문가 자문 아래 원형조사·복원공사를 했고, 지난해 11월 ‘근대문화공간 수원 구 부국원’을 개관했다. 수원 구 부국원 1~2층은 상설전시관, 3층은 교육공간·사무실이다.
임명수 기자 s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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