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드업 코미디 이색 아마추어 2명]
스리잡 송하빈씨 “오전엔 수영강사ㆍ주말엔 민속촌… 10분 웃음 주려 1주일 올인”
한 곳에서 10시간 동안 술을 마셨다. 남ㆍ여 80여 명이 모인 자리였다. 한국의 대학교 MT 문화가 그에겐 충격이었다. “종교의식 같았죠. 앞에 교주만 없지.” 방은 따로 쓰지만 한 집에서 남녀가 함께 술을 먹고 자는 일도 위험천만해 보였다. “선배가 ‘우린 이렇게 자’라고 했는데 어떻게 아무
일도 안 일어났는지는 술 마신 다음 날에 알았어요. 10시간 동안 술을 마시면 새끼손가락 움직일 힘도 없거든요.”
2016년 9월 서울 대학로 인근의 한 소극장. 그는 ‘한국생활백서’를 주제로 스탠드업 코미디를 선보여 극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당시 우리나라에선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을 찾기 어려웠다. 자신이 겪은 ‘모험’을 촌철살인으로 표현한 이는 터키 출신 알파고 시나씨(29)씨.
웃음의 전파는 그의 불행에서 시작됐다. “그해 7월, 터키 군부 쿠데타로 해직 기자가 됐어요. 반정부 언론사들을 숙청해 회사가 문을 닫았죠.” 지난 1일 서울 홍익대 인근 카페에서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 직전에 만난 알파고씨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다 ‘스탠드업 공연을 해보자’ 싶어 도전했다”라고 말했다. 한국과 달리 터키에선 스탠드업 코미디가 대중문화 주류라 그에겐 익숙했고, 지적인 장르로 통해 도전하기에 거부감도 없었다. 그는 당시 터키 유명 민영 통신사인 지한통신의 한국 특파원이었다.
“숙청”이란 한국말도 자유롭게 쓰는 알파고씨는 2004년 한국땅을 밟았다. 터키에서 과학고를 나와 이스탄불기술대학에 다니다 한국으로 유학을 왔다. 애초 이스탄불기술대학과 결연을 맺은 카이스트에서 공부하려 했으나 돌연 인생 여정을 틀었다. 국제 정치 분야에 빠져 충남대에서 정치외교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2010년엔 서울대 대학원에 진학해 외교학 석사과정도 밟았다. 과학고에서 월반해 같은 학년 또래보다 두 살 어렸던 그는 한국 문화 습득도 빨랐다. 쿠르드족 출신 이 외국인이 한글로 쓴 논문 주제는 ‘한국의 5ㆍ16 쿠데타와 터키의 5ㆍ27 쿠데타 비교’(2018)였다. 그는 현재 한 인터넷 언론사의 기자이고, 지난 3월엔 책 ‘독립기념일로 살펴보는 세계 독립의 역사’를 낸 작가이기도 하다. 강연과 더불어 JTBC 예능프로그램 ‘비정상회담’과 MBC에브리원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등에 출연하며 방송 활동도 한다.
코미디언이 아닌 알파고에게 스탠드업 코미디는 “사고를 단련하는 구도의 훈련”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생각은 많은 데 그 생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죠. 스탠드업 코미디는 조각가가 생각을 다듬는 것과 같아요. 어떤 시각으로 보면 웃길 것인지를 고민하고 이야기를 다듬죠. 관객은 공감의 과정을 통해 나를 발견하고요. 이야기에 반응한다는 게 바로 잊고 있던 나를 알게 되는 거니까요.” ‘직업사냥꾼’인 알파고씨는 스탠드업 코미디 도전을 ‘미생’들에게 추천했다.
알파고씨는 15년 여 동안 한국에서 이방인으로 겪은 경험을 스탠드업 코미디 소재로 주로 쓴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 사이 기싸움이 있어요. ‘내가 한국에 대해 더 잘 안다’는 식이죠.” 그는 이날 귀화시험 등을 소재로 공연을 꾸렸다. 객석에선 웃음이 터졌다. 공연 후 알파고씨에게 카톡을 보내니 다음과 같이 답문이 왔다. “작년에 귀화했어요.”
유병재 ‘블랙코미디’ 보고 꿈 키운 송하빈씨 “즉각 소통이 스탠드업 코미디 매력”
“한 시간 동안 휴대폰 없이 지하철 타보셨어요?” 마이크를 쥔 사내의 물음에 객석에선 “어우”란 탄식이 무조건반사처럼 튀어나왔다. 휴대폰 없이 재미의 진공 상태를 견뎌야 하는 난처함, 생각만 해도 너무 알겠다는 공감에서 나온 반응이었다.
“남의 유튜브 보고, 인스타(그램) 보고… 드디어 내 키(187cm)가 쓸모 있는 키었구나 알았죠.” 사내는 휴대폰 배터리가 방전된 채 지하철을 탔다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승객의 휴대폰을 슬쩍 엿보다 생긴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송하빈(26)씨가 최근 1년 동안 서울 강남과 홍익대 인근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를 오가며 선보인 얘기다. 아마추어의 친숙한 생활밀착형 개그에 팔짱을 끼고 그의 무대를 지켜봤던 관객들은 하나 둘씩 웃음의 빗장을 풀었다.
“집이 인천이에요. 강남까지 나가려면 지하철로 한 시간이 걸리죠. 지하철을 타면 늘 승객을 관찰해요. 어느 날 어떤 분이 휴대폰으로 하염없이 유튜브를 보더라고요. ‘아, 여기에서 뭔가 파면 이야기 나올 수 있겠다’ 싶어 ‘양념’을 쳐 생활 농담을 만들었죠.” 지난 1일 서울 홍익대 인근 카페에서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 직전 만난 송씨는 “일상에서 이야기를 찾기 위해 일부러 (종로구) 동묘나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공원을 간다”고 말했다.
스탠드업 코미디에선 아마추어지만, 송씨는 경기 용인 민속촌에선 소문난 연기자였다. 그는 2016년 4월부터 민속촌에서 저승사자 등 캐릭터 아르바이트를 했다. 남의 집 벨을 누르고 도망치는 추억의 장난인 ‘벨튀’ 놀이에서 체대생 역을 연기해 개그맨 못지 않은 연기와 입담을 선보였다. “개그맨이 되고 싶어 2016년 1월 군 제대 후 바로 민속촌 아르바이트 오디션을 봤어요. 군대 사이버지식정보실에서 민속촌 캐릭터 아르바이트 영상을 보고 지원했죠. 개그맨이 될 가능성이 있나 확인하고 싶어서요.”
KBS ‘개그콘서트’ 등에 설 방송사 공채 개그맨을 꿈꿨던 송씨는 방송인 유병재가 2017년 낸 농담집 ‘블랙코미디’를 보고 스탠드업 코미디로 인생의 항로를 틀었다. 분장과 상황극으로 웃기는 것보다 관객과 즉각적인 소통으로 웃음을 자아내는 스탠드업 코미디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와서였다고 한다. 송씨는 “내가 관찰하고 또 하고 싶은 말을 하고 그 말에 누군가 공감해주는 게 멋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를 중심으로 스탠드업 코미디 바람이 불고 있지만, 스탠드업 코미디 시장이 대중화되기까지 갈 길은 아직 멀다. 아마추어에게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는 춥다. 본업으로 삼기엔 돈벌이가 턱없이 부족해 다른 일로 생계를 꾸릴 수밖에 없다. 송씨는 평일 오전엔 수영 강사로, 주말엔 민속촌에서 일한다. 송씨 같은 아마추어 개그맨들은 5~7명씩 팀을 이뤄 60~90분의 스탠드업 공연을 꾸린다.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10여 분. 무대에서 10여 분의 웃음을 주기 위해 그는 1주일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한다. 그런 송씨는 틈만 나면 무대를 찾는다. 서울 홍익대 인근 가수 지망생들이 찾는 클럽 ‘오픈 마이크’에 가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기도 한다.
“웃음을 기대하지 않는 곳에서 웃기면 진짜 웃긴 거잖아요. 절 단련하기 위해 가기도 하고요. 스탠드업 첫 무대의 공포를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 너무 썰렁해서 꿈에도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12세도 같이 즐길 수 있는 깨끗한 스탠드업 코미디를 선보이는 게 제 꿈입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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