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 위기에 처한 작은 공원이 2여년간의 우여곡절 끝에 제자리를 지켰다. 서울 경복궁 서쪽의 영추문 맞은편에 있는 419.4㎡(127평)의 ‘통의동 마을마당’ 얘기다. 2016년 10월 청와대가 민간인이 소유한 삼청동 주택을 경호상의 이유로 매입하기 위해 청와대 소유 공원이었던 통의동 마을마당과 맞바꿨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인근 주민들은 공원을 지키려고 백방으로 뛰었다. 현수막을 내걸었고, 구청과 시청, 국회, 청와대 등 관련 부처에 민원을 넣었다. ‘절차상 하자가 없다’ ‘불수리 내용에 해당된다’ 등 돌아오는 답변은 한결같이 부정적이었다.
주민들은 더 적극적으로 공원의 위기를 알렸다. 광화문광장에 나가 박원순 서울시장을 만나고, ‘촛불공원’ 행사를 기획하고, 공원을 오가는 이들에게 서명을 받아 탄원서를 냈다. 공원은 지난 2월 서울시가 다시 매입하면서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왔다. 공원 인근에 살고 일하는 황두진(황두진건축사사무소 소장) 건축가가 이 지난한 과정을 정리한 ‘공원 사수 대작전’(반비)을 최근 펴냈다.
1일 만난 황두진 소장은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고, 어떤 방식으로든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며 “우리 사회에서 공원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느냐에 관한 논의의 물꼬를 트는 사례가 되길 바란다”고 책을 쓴 이유를 밝혔다.
황 건축가는 공원을 되찾기까지 건축가로서 대표작 두어 개를 만들 수 있을 만한 시간과 노력을 빼앗겼다. 그는 20년 전 우연히 들른 공원의 정취에 반해 통의동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그는 “공원은 그 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며 “주민, 관광객, 노숙인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는 공원을 우리 사회가 만들고, 유지할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가”라고 말했다. 통의동 마을마당은 서울시가 1986년 사유지를 매입해 1996년 공원으로 조성한 곳이다.
황 건축가는 공원을 ‘뭘 해야 하는 게 없는 창의적인 공간’이라고 정의하며 공원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공원은 비어 있는 공간이어서 사용자의 감정을 투사할 수 있다”며 “슬플 때는 낙엽이 보이고, 기분이 좋을 때는 햇빛과 바람을 따듯하게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일반 건물이나 공공기관 건물처럼 일이 있어야 찾아가는 목적성 공간과 차별화된다는 것이다. 황 건축가는 “손에 잡히지 않고 보이지 않는 여유가 삶에 필요하다고 인정한다면 공원의 중요성이 무엇인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며 “공원은 문명이 발달한 사회에서 향유할 수 있는 특권”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황 건축가는 남산이나 북한산 등 시간과 힘을 들여 찾아가는 공원도 중요하지만 일상적인 삶과 밀접한 연관을 맺는 곳에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는 “작아도 좋으니 사람들이 쉽게 오가고, 주택이나 일터 등과 연결된 곳에 공원이 많아지면 삶의 질적인 차원에서 엄청난 경험의 차이를 가져올 것이다”고 말했다.
한창 진행 중인 통의동 마을마당 재조성 사업이 완료되면 황 건축가는 미국의 놀(Knoll)사 제품인 하리 베르토이아 의자 여섯 개를 둘 계획이다. 의자는 최고급 야외용 이동식 의자다. 그가 모금을 통해 4개를 마련하고, 그의 뜻에 공감한 놀사에서 2개를 기증한다. 황 건축가는 “지금까지 우리는 공공에 최고의 것을 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다”라며 “공공영역을 풍성하게 만들수록 우리의 삶은 더 크게 변화할 것”이라고 했다.
내년 7월 ‘도시공원 일몰제’ 시행을 앞두고 통의동 마을마당이 사회에 시사하는 바도 크다. 지방자치단체가 도시 계획상 공원으로 지정해놓고 20년간 사들이지 않은 공원은 공원 용지에서 자동 해제된다. 공원으로 지정됐지만 조성되지 못한 곳이 전국적으로 약 516㎢(1억5,609만평)나 된다. 황 건축가는 “공원은 오직 공공 소유로만 여겨져 왔는데, 이번 기회로 민간 소유이면서 공원의 공공적 기능을 유지하는 방법을 논의해야 한다”며 “공공이 소유하되 소유권의 일부를 주민에게 양도하는 등 시민 참여형으로 유도해야 공원을 오래도록 우리 곁에 둘 수 있다”고 제안했다.
공원 사수 대작전
황두진 지음
반비 발행ㆍ232쪽ㆍ1만6,000원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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