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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ㆍ아세안 미래, 재난 협력으로 다진다

입력
2019.11.04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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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문재인 대통령이 필리핀 마닐라 필리핀국제컨벤션센터(PICC) 서밋홀에서 열린 제19차 한-아세안(ASEAN) 정상회담에서 각국 정상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고영권기자
2017년 11월 문재인 대통령이 필리핀 마닐라 필리핀국제컨벤션센터(PICC) 서밋홀에서 열린 제19차 한-아세안(ASEAN) 정상회담에서 각국 정상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고영권기자

2008년 인도네시아 서북단 끝 아체주(州)에서 열린 국제재난구호협력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다. 아체주는 2004년 12월 발생한 쓰나미로 주민 약 17만명이 목숨을 잃은 곳이다. 유수프 아체주지사는 회의에서 아체주 재건을 지원한 국제 사회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유수프 주지사는 자신이 아체주 분리 독립 운동을 주도한 자유아체운동(GAM)의 지도자 출신임을 밝히고, 많은 희생을 감수하며 인도네시아 정부와 30년 가까이 치러온 내전을 단번에 종결시킨 것은 단 한 차례의 쓰나미였다고 말했다. 재난이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비극을 초래한 반면, 평화 또한 가져온 이 역설적인 상황을 설명하며 글썽이던 그의 눈빛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올해 1월 행정안전부에서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 있는 주아세안(ASEANㆍ동남아시아국가연합) 한국대표부로 파견되면서 인도네시아와 두 번째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간 인도네시아, 베트남을 비롯, 대부분의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매년 5% 이상의 높은 경제성장을 이룩하면서 아세안 지역은 글로벌 경제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이에 따라 미국, 일본, 중국 등 많은 국가가 아세안 시장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다.

우리 정부 또한 2017년 아세안과 함께 ‘사람 중심의 평화와 번영의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 나간다는 신(新)남방 정책을 발표하고, 주아세안 대한민국대표부 조직을 대폭 확대해 신남방 정책의 최전선 기지로 삼았다. 신남방 정책의 핵심 비전인 사람(People) 상생 번영(prosperity) 평화(Peace)의 3P는 아세안을 우리의 경제 시장이라는 시각에서만 바라보는 것을 배격하고, 경제 협력뿐만 아니라 사회ㆍ문화 교류 확대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협력을 지향한다.

신남방 정책 비전인 3P를 실천하기 위해 현재 한국과 아세안 간 다양한 분야에서 공동 사업들이 추진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재난 관리 협력이다. 이야말로 사람, 상생 번영, 평화 3P의 가치를 모두 아우르는 핵심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아세안 지역엔 2004년 인도양 쓰나미, 2008년 사이클론 나르기스, 2013년 태풍 하이엔, 2018년 술라웨시 지진 등 4, 5년을 주기로 대형 재난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재난 관리 분야는 아세안 내에서도 회원국 간 법적 구속력을 지닌 재난공동대응협정을 만들어 가면서까지 가장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아울러 최근 아세안은 아세안의 재난 관리 체계 발전에 한국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 줄 것을 요청해 오고 있다. 그간 아세안 지역에 대형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해외 긴급구호대 파견이나 구호 물자를 적극 지원하는 한편, 동남아 국가들에 홍수 예보 및 경보시스템 등 재난 안전 기술을 보급해 왔던 한국에 대한 신뢰가 쌓여온 결과일 것이다.

아세안의 희망에 부응해 우리 행정안전부, 소방청이 아세안 사무국, 인도네시아 재난방재청 등과 함께 아세안 지역 재난전문가 양성, 정보통신(IT) 기술을 활용한 훈련 프로그램 개발 등의 사업을 공동 추진하기로 결정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일회성 보여주기식 지원이 아닌 우리의 기술과 경험을 근간으로 아세안의 재난 대응 능력을 본질적으로 개선하는데 기여하고, 우리 또한 아세안으로부터 배운다는 겸허한 자세로 추진되고 있는 이 협력들은 3P 정신의 진정한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아체에서 오랫동안 이어진 피의 분쟁을 기적과 같이 끝낼 수 있었던 것은 어떠한 정치 이념이나 사상, 경제적 이익에 의한 게 아니었다. 재난 피해를 본 주민들을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하는 일이 우선이라는 사실을 인도네시아 정부와 아체 반군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아무런 이해타산 없이 오직 소중한 생명을 지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한ㆍ아세안 재난 관리 분야에서의 협력 강화 노력이야말로 우리 신남방 정책의 지향점인 ‘사람 중심 한ㆍ아세안 공동체’ 구축에 중요한 밑거름이 아닐 수 없다.

이수홍 주아세안 대한민국대표부 행안관(주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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