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은 낡은 기득권일 수도
사라지는 것 지키려 하기보다
늘어나는 새 일자리 노동권 강화 시급
지난주 일자리 정부를 자처해온 정부가 충격에 빠졌다.
통계청의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 결과 지난해 8월보다 비정규직이 86만명 증가했고, 정규직은 35만명 감소한 것이다. 통계청은 ‘일자리 질’이 급격히 나빠진 것이 아니라 조사 방법의 변화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정년까지 일할 수 있는지’를 묻는 문항을 추가해 아니라고 답하면 비정규직으로 분류하는 바람에 비정규직이 과거 조사보다 35만~50만명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현 정부 들어 근로계약이 1년 이상이면 ‘상용직’이란 이름으로 정규직과 같은 범주에 묶어 정규직이 사라지고 있는 실상을 감춰왔다는 점이 드러났다.
또 정부가 ‘최저임금 1만원’과 ‘공공부문 정규직화’를 이끌면 나머지 노동시장이 따라올 것이라던 기대가 잘못됐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비정규직 중 정규직 전환이나 임금 인상 여력을 갖춘 공기업ㆍ대기업 소속 비정규직은 20%에 불과하고 나머지 80%는 사용자가 지급능력이 없는 중소ㆍ영세업자라는 현실을 외면한 채 “정책적으로 편하고 정치적으로 선명한 길을 택했던 정부와 민주노총에 그 책임이 있다”는 노동자운동연구소 한지원 연구원의 지적이 핵심을 짚어준다.
보수 진영의 진단도 궤를 같이한다. “대기업 공기업 위주 강성노조가 배 불리는 사이 비정규직은 늘고 영세 자영업자는 줄폐업했다“는 것이다. 그 해법은 정규직과 노조를 ‘과잉 보호’하는 정책을 철폐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일수록 정년이 보장되는 안정적 일자리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과연 누가 먼저 대의를 위해 기득권을 포기할지 의문이다.
진보 진영의 해법도 공허하긴 마찬가지이다. 요약하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서두르거나, 정규직 비정규직의 구분에 얽매이지 말고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대우 격차를 줄여 양자 간의 갈등을 해소하자고 말한다. 하지만 구체적 실현방법에 대한 제시 없이 당위적 주문에 그친다.
보수ㆍ진보 모두 악화하는 일자리에 대한 올바른 해법을 내놓지 못하는 사이 노동시장은 빠르게 우회로를 찾아내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점점 더 많은 일자리가 공급되고 있다. 바로 ‘긱(Gig) 이코노미’의 급속한 성장이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는 최근호에서 오늘날 미국 대졸 취업자의 30~40%가 긱 이코노미 영역으로 취업하고 있다고 밝혔다. 2055년이 되면 전 세계 고용의 60%가 긱 이코노미를 통해 이뤄질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긱은 20세기 초 미국 재즈클럽 주변에 모인 연주자들을 즉흥적으로 고용해 공연하던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온 디맨드(On demand) 일자리’ 또는 ‘일시적 일자리’란 의미이다.
국내 긱 이코노미 대표 사례인 ‘타다’가 최근 검찰에 기소된 것은 우리 노동시장이 당면한 도전이 무엇인지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정부는 유망 신산업 육성과 기존 택시 사업 기득권 보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결국 ‘타다’를 택시 업종의 규제를 받게 해, 혁신성을 질식시키는 최악의 결정을 내렸다. 기존 택시 기사의 권익을 지킨다는 명분이었지만, 택시 기사의 권익은 타다 기사의 권익을 택시 수준으로 끌어내려서 지키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택시 기사가 이직하려 할 만큼 타다 기사의 보수와 처우가 높아지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긱 워커(긱 이코노미 종사자)의 노동권 보장이 필요하다. 또 다수 노동자가 단기 계약을 하는 특성을 고려해 플랫폼 사업체의 공익성을 강화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유럽연합(EU)의 노동정책은 이미 그 길로 가고 있다. 마르그레테 베스타거 EU 집행위원회 수석 부위원장은 지난달 25일 승차 공유 우버나 음식 배달 딜리버루 등 플랫폼 업체의 긱 워커에게 단체 교섭권을 부여하기로 했다.
긱 이코노미가 확대될수록 ‘정규직’을 둘러싼 논쟁은 무의미해진다. 정부의 노동정책이 지키고 늘리려 애쓰는 정규직은 조만간 무너져 버릴 모래성일지도 모른다. 사라지는 일자리에 매달리기보다 새로 출현하는 일자리인 긱 워커의 노동권을 보강할 제도 마련을 서두를 때이다.
정영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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