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싸라기 땅에 역세권 청년주택 짓는 청년 사업가 2인
청년주택 건설 시행사인 주식회사 당당의 장요섭(42) 이사는 직원 A(30)씨가 사는 월세 50만원짜리 강남 숙소(원룸텔)의 열악한 상황을 잊을 수 없다. 침대, 책상, 책장 정도 겨우 놓을 수 있는 대학가 원룸 크기에 조그마한 화장실이 있는 5평이 채 안 되는 공간이었다. 빨래는 공용 세탁기를 쓰고, 복도에 놓인 건조대에서 말렸다. 공용 주방은 방이 있는 4층이 아닌 2층에만 있어 라면 하나 먹으려고 해도 여간 번거롭지 않은 열악한 주거환경이었다. 그는 “출퇴근 시간 때문에 사무실 근처에 거처를 마련한 직원 숙소는 강남이라 그런지 숙소 환경에 비해 월세가 턱없이 비쌌다”고 했다. 그가 청년들에게 값싼 임대료에 적정한 주거공간을 갖춘 청년주택을 고민하게 된 계기다. 장이사가 이런 생각을 지인들에게 알리자 ‘미친 짓’이라고 아우성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작고한 부친이 남기고 간 강남의 금싸라기 땅(2,800㎡, 약 850평)에 청년주택을 짓겠다고 나선 마당이었기 때문이다. 서초구 양재역 역세권에 379세대(지상 22층, 지하 5층)의 임대형 주상복합건물 건축 계획이다. 강남 지역의 지하철 역 근처는 교통 좋고, 쇼핑몰, 문화ㆍ체육 시설 등도 가까워 오피스텔이나 상가 건물을 지어 분양하면 돈 버는 것은 떼 논 당상. 그런 곳에 8년 동안 분양도 못하고 시세보다 낮은 임대료로 만 19~39세 청년, 신혼부부에게 집을 빌려주겠다니 당장 모친부터 반대했다고 한다. 그는 “의미 있는 사업을 해보고 싶다고 설득해 허락을 받았다”고 했다. 사업 비용, 임대료 등을 시뮬레이션 해서 분석한 결과로도 주변 건물에 비해 이익을 덜 낼 뿐이지 절대 손해 보는 게 아니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구내식당, 어린이집 등 청년세대 눈높이 맞춘 서비스 제공
그렇다고 대충 짓는 것도 아니다. 추가 비용이 들고 공사 기간도 길어져 건설사에 건물 내ㆍ외부 디자인을 알아서 하라고 하지만 장 이사는 디자인 전문 회사 4곳을 추천 받아 공모전을 열었고, 1등을 한 곳에 외부 디자인을 맡겼다. 실내 디자인은 또 다른 전문가들에게 의뢰했다. 특히 청년세대들이 다양한 취미 활동을 즐기는 점을 감안해 다양한 형태의 수납 공간을 만들 계획이다. 다른 청년주택들이 보통 4ㆍ5개 타입으로 짓는 것과 달리 다양한 수요를 반영해 11개 타입으로 설계했다. 장 이사는 “조금이라도 넓은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가장 작은 크기인 17㎡ 크기 호실을 6개로 대폭 줄이는 대신 23㎡(32개실), 30㎡(34개실)의 특별공급 물량을 늘렸다”고 했다. 꼭대기 층에는 구내 식당도 들어선다. 아이 있는 맞벌이 부부도 부담 없이 아침을 챙겨먹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어른 4,000원, 어린이 2,000원에 1식 4찬이면 저렴한 가격에 나쁘지 않은 식사다. 상가 2층에는 국공립 어린이 집을 만들어 맘 편히 아이를 맡길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장 이사는 “원래 주민센터 같은 공공시설로 설정된 공간인데 어린이집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에 서울시와 서초구를 설득했다”고 한다. 이 주상복합건물은 내년 1월 착공에 들어간다. 장 이사는 “청년세대가 숨 막히게 살지 않도록 좋은 주거환경을 마련해 제공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청년세대들이 몸 뉘일 곳만 있으면 들어간다는 생각은 금물이다. 지난 8월 가장 먼저 입주자 모집에 나선 충정로역 역세권 청년주택 사례가 그렇다. 전체 499실의 평균 경쟁률이 18대 1을 기록했음에도 신혼부부용 35제곱미터(㎡) 형은 지원자 미달이었다. 장 이사는 “위치도 좋고 새 집이지만 청년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점들이 담겨있지 않으면 선택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집 내부 사진을 찍어 남들에게 자신 있게 보여줄 수 있는지 따지는 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세대의 한 특징이다. 기성세대는 디자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지만 청년세대는 디자인도 깔끔하고 실용적인 집에 살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그런 장이사에게는 뜻을 같이 하는 동지가 있다. 내년 1월 은평구 구산역 인근에 217세대(지상 19층, 지하 2층)의 청년주택 공사를 시작하는 주식회사 덕영의 황진구(34) 대표. 건축 디자인을 전공한 황 대표도 전문 회사와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틀에 박힌 디자인을 ‘복사+붙여 넣기’ 하는 식은 안 된다”며 “벽의 위치, 벽과 벽 간격, 문을 여닫을 때 차지하는 공간, 변기에 앉았을 때 다리를 어느 정도까지 펼 수 있는 지 등 청년 주거자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끔 세세한 부분까지 고치기를 반복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세심한 고려는 지방 출신인 그가 도시계획을 전공한 대학원 때까지 5평(16.5㎡) 남짓의 원룸에 혼자 때로는 친구와 둘이 살며 이 돈 내고 이런 곳에서 살아야 하나라는 답답함과 아쉬움이 많았기 때문이다.
서울에서만 41곳에서 청년주택 사업(서울시 승인ㆍ고시 기준)이 추진되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업자들은 의무 임대기간인 8년이 지나면 일반에 분양을 하거나 임대료를 크게 올려 개발 이익을 확보할 생각을 한다. 일부에서 청년주택에 대해 ‘먹튀’ 논란을 제기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단호했다. 8년 뒤에도 분양이나 매각을 하지 않을 생각이다. 조금 덜 벌면서 청년세대 주거난 해결에 작은 보탬이 되겠다는 소박한 욕심이다.
◇낮은 임대료에도 이익은 남는다
디자인과 편의시설 이상으로 신경 쓰는 부분은 두 사람이 신경을 쓰는 부분은 임대료다. 원래 청년주택의 임대료는 한 건물 내에서도 3가지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한국감정원 시세를 기준으로 공공임대는 시세의 55% 내외에서 서울시가 직접 정하고, 민간임대 중 특별공급은 사업주가 서울시가 공사 전과 입주자 모집 전 두 차례 협의를 통해 시세의 85% 이하, 일반공급은 시세의 95% 이하로 정할 수 있다.
두 사람은 이 기준선보다 더 아래로 잡고 있다. 황 대표는 구산역 청년주택의 월 임대료(특별공급 분)를 1인 가구 용(전용면적 17.6㎡) 보증금 3,600만원의 경우 35만원, 보증금 4,800만원의 경우 29만원으로 정했다. 그는 “주변 시세 85%를 적용했을 때와 비교해 월 3만원씩 낮춰 12개월치 임대료로 13개월을 지낼 수 있게 한 것”이라며 “건설사와 자금을 대출해 준 은행을 열심히 설득. 서로 조금씩 양보해 얻은 결과”라고 설명했다.
장 이사는 양재역 청년주택 월 임대료를 시세의 85%가 아닌 75% 선으로 결정할 생각이다. 그는 “발코니 확장 공간을 감안하면 임대료 인하 효과는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장 이사는 양재역 청년주택의 시세의 85%을 적용하는 특별 공급 비중을 서울시가 지정한 20%보다 5% 포인트(P) 높인 25%로 정했다. 대신 시세의 95%를 적용하는 일반공급 비중은 80%에서 75%로 낮아졌다. 임대료가 보다 저렴한 집을 더 많이 공급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보증금 비율도 기존 30%→40%, 40%→50%로 10%P씩 올려 입주자들의 부담을 더는 쪽으로 정했다.
두 사람의 이러한 배려는 받은 만큼 돌려준다는 의지다. 청년 주택 건설을 통해 일반 건물보다 용적률을 2~3배 정도 높게 건물을 지을 수 있었고, 싼 이자로 대출도 받았던 만큼 그 이익 분을 청년 입주자들에게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청년주택의 경우 일반 용적률보다 2~3배 더 높일 수 있다. 또 서울시 여신위원회의 사업자 선정을 통해 시중 은행이나 한국주택금융공사(HF) 로부터 일반 대출보다 훨씬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고 서울시가 최대 1.5% 이자 지원도 해준다. 장 이사는 “부친이 물려주신 땅에 랜드마크가 될 만한 멋진 건물을 짓고 싶었지만 용적률 제한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며 “청년주택을 통해 주변에서 가장 높은 22층 건물을 올릴 수 있게 됐으니 그 혜택을 청년들에게 나누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대료를 낮춰 입주자의 자금 사정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면 청년주택 전체에 혜택이 돌아간다는 점도 고려했다. 입주자들이 청년주택 상가에서 소비를 하면 상가도 살고 자신들은 또 다시 임대료를 더 낮출 여력을 갖게 되는 선순환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황 대표는 “청년주택 내 상가뿐만 아니라 인근 헬스장이나 학원과 제휴를 맺어 입주자들에게 할인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주변 상권에도 도움을 주면 자연스레 청년주택이 지역 거점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두 사람 모두 현재 책정한 예상 사업비와 임대료 대로라면 입주자를 100% 모집할 경우 첫해부터 이익이 날 것이라고 했다. 임대료를 낮추더라도 이익은 남는다는 것이다.
역세권 청년주택을 통해 알게 된 두 사람은 아예 손을 잡고 또 다른 청년주택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현재 서울 동부 지역에 사업 부지를 보고 있는 상태. 장 이사는 “서울 내 ‘동-서(우장산역)-남(양재역)-북(구산역)’ 네 방향에 거점을 하나씩 만들어 체인 형태로 운영해 보려 한다”며 “역세권은 청년들에게 거주뿐만 아니라 일하고 즐기는 공간이기 때문에 창업 인큐베이팅, 문화 창작 등 다양한 공간 활용이 가능하게 서비스를 확대해 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향후에는 임대 중심의 부동산 시장이 될 것이라는 예측과 함께 멀리 보고 청년주택 사업을 진행하겠다는 두 사람의 복안이다. 한국 사회는 집을 소유 대상으로 보지만 뉴욕, 도쿄 등 해외 주요 도시에서는 오래 전부터 임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한국도 그렇게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황 대표는 “청년세대가 서울에서 자신 소유 집을 마련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며 “가격 부담이 크기 때문에 큰 돈 들여 집을 사는 대신 집을 빌려 사는 추세가 강해질 것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청년주택도 충분히 사업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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