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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 新쪽방촌] “청년 등골 빼는 임대업 규제하고 저렴한 공공임대 늘려야”

입력
2019.11.05 04:40
수정
2019.11.05 06:51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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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년 주거, 더 이상 방치 안 된다

한국일보는 ‘대학가 新쪽방촌’ 기획을 통해 대학가 원룸촌이 건물주의 임대수익 극대화를 위해 불법으로 쪼개지는 ‘신(新)쪽방’ 현상을 수면 위로 드러내고, 고시원으로 밀려나는 청춘의 이야기를 들었다. 또 누군가를 착취하지 않으면서도 청년 세대를 위해 살 만한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도 엿보았다. 마지막으로 현장과 학계에서 오랫동안 주거권을 고민해 온 전문가들에게서 청년 주거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물었다. 서종균 서울주택도시공사(SH) 주거복지처장,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 최지희 ‘민달팽이 유니온’ 위원장이 최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 16층 회의실에서 함께했다.

최은영(왼쪽) 한국도시연구소장, 최지희(가운데)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 서종균(오른쪽) SH 주거복지처장이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청년 주거 정책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최은영(왼쪽) 한국도시연구소장, 최지희(가운데)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 서종균(오른쪽) SH 주거복지처장이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청년 주거 정책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한국일보는 서울 성동구 사근동 원룸촌의 방 쪼개기 실태(본보 10월 31일 자 1ㆍ3ㆍ4면)를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이하 최은영)= ‘불법 쪼개기 원룸’ 실태를 보니 상당히 해결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2000년대 초 서울 구로구에서는 쪼개져 있던 ‘벌집(여러 방이 다닥다닥 붙은 저소득층 주거의 한 형태)’의 공간을 다시 터서 넓히는 현상이 발견됐다. 임대인이 ‘더 이상 이런 곳에 사람이 살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신쪽방’ 현상은 십여 년 사이 역전된 상황을 보여 준다. 서울의 많은 집들이 중산층 주거용으로 바뀌고 저렴 주거가 사라지다 보니, 임대인들이 공간을 계속 쪼개고 열악하게 만들어도 수요가 끊이지 않는다.

최지희 민달팽이 유니온 위원장(이하 최지희)= 저도 제일 처음 산 곳이 ‘미니 원룸’이라 불리는 집이었다. 가벽을 사이에 두고 에어컨이 절반만 걸쳐진 불법 건축물도 있었다. 주거 빈곤 청년들은 집에 정착하지 못하고 주로 바깥에 머무는 ‘방의 외부화’라는 문제를 겪고 있다. 기성세대는 ‘징징대면서도 프랜차이즈 카페는 문전성시’라며 청년들을 괘씸해 하지 않나. 그 이면은 불완전한 거처에 살고 있기 때문에 청년들이 계속 밖으로 겉도는 거다.

서종균 서울주택도시공사(SH) 주거복지처장(이하 서종균)= 사근동에 기숙사와 월 40만원이 아닌 15만~20만원 수준 공공임대주택이 대량 공급된다고 상상해 보자. 아마 ‘신쪽방’이 늘어나는 추세가 중단되거나, 시장에서 도태될 것이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분명하다. 첫째, 저렴한 공공임대 재고를 많이 확보하는 것. 둘째, 기준 이하의 거처를 착취적으로 임대하는 사업자들을 규제하는 것. 이런 큰 목표를 정하되,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쓸지 기술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이 지난달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청년 주거 정책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이 지난달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청년 주거 정책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불법 건축물이 근절되지 않고, 청년 등 취약 계층의 거처로 파고드는 까닭은 무엇일까.

최지희= 애초에 부동산 관련 정보가 너무 어려워서 집에 관한 정보를 사람들이 잘 모른다. 우리 사회가 어떻게든 ‘호갱’이 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덜 손해 보는 구조이지 않나. 공인중개사가 임대차 계약 시 ‘중개대상물확인설명서’를 제대로 쓰지 않으면 최고 500만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하지만 주거 상담을 진행하며 만난 세입자 중에 그런 것을 받지 않은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서종균= 구청 건축 담당 공무원은 허가를 내 주고 이행강제금을 물리는 업무만 할 뿐,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겪는 문제나 주거 정책을 일일이 고려하지 않는다. 국토교통부의 고민은 ‘쪽방’ ‘고시원’ 수준에 머무를 뿐, ‘불법 건축물’ 단계까지 내려와본 적이 없다. ‘신쪽방’에 대해서는 어떤 정책을 체계적으로 제시해야 할지 관료 사회의 고민의 깊이가 굉장히 얕다.

국토부가 방향을 잡아야 한다. 국토부가 컨트롤타워가 되어 전국적으로 불법 건축물 실태를 조사하는 기관을 만들 수도 있고, 정책 방향에 대한 지침을 만들 수도 있다. 그 안에서 지방 정부가 여건을 맞춰서 시행하면 된다. 그런데 이러한 일들을 국토부가 여태껏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건축 허가는 지방 정부의 일’이라며 미루기 바빴다. 그에 더해 지방 정부가 불법 건축물의 원상회복을 위해 전담자를 배치해서 관리ㆍ감독을 철저하게 하기 시작하면 상황이 굉장히 달라질 것이다. 변화의 여지들이 주변에 굉장히 많은데, 체계적인 노력이 부족해 현재까지 이르렀다.

최은영= 지난 5월 한국일보 ‘지옥고 아래 쪽방’ 기획에 대해서도 취약 계층의 주거에 대해 국토부가 계속 고민해, 10월 24일 국토부 발표에 관련 대책이 포함됐다. 언론이 계속해서 화두를 던져야 한다.

-전 세계 인구가 몰리는 뉴욕, 런던, 파리 등 해외 대도시는 어떠한가.

최은영= 선진국은 최소한의 면적 이하는 아예 임대를 하지 못하게 돼 있다. 우리는 주거기본법상 최저주거기준이 있지만 강행 규정이 아니다. 건축 승인을 받을 때만 고려할 뿐, 세를 놓을 때에는 최저주거기준이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뉴욕에서는 민간 임대주택사업자가 악덕인 경우에 도시에서 명단을 공개하기도 한다. 한국은 그런 식의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내기는커녕, 심지어 불법 주택까지 방치하고 있다.

최지희= 영국은 주거 환경 평가 인증제가 굉장히 세심하게 마련돼 있다. 집의 조건에 따라 등급을 매기고 표준 임대료 기준을 제시한다. 한국은 집을 볼 때마다 ‘이런 집이면 대체 얼마여야 하느냐’는 감도 없다. 집주인이 내놓는 것이 시장 가격이다. 이런 제도들을 벤치마킹해서 근로감독관처럼 서울시에서 주거감독관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최지희 민달팽이 유니온 위원장이 지난달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청년 주거 정책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최지희 민달팽이 유니온 위원장이 지난달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청년 주거 정책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학업, 취업 등의 이유로 한 군데 정주(定住)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청년은 다른 주거 취약 계층과는 구별되는 지점이 있는데.

최은영= 청년 세대의 목소리가 제도권 정치에 닿지 않는다는 데에서 태생적 한계가 있다. 불균형한 정치적 힘이 근본 원인이다. 청년들에 비해 해당 지역에 살지도 않는 임대인들의 목소리가 너무 크다. 구청장, 시ㆍ구의원, 국회의원 등 선거에 기반을 둔 정치인들이 불법을 자행하는 임대인들과 동맹을 맺고, 가진 것 없는 청년들에겐 아무도 힘이 되어 주지 않는다. 대학 기숙사가 지어지지 못하는 근본 원인은 건축 허가권이 구청 등 기초단체에 있다는 점이다. 구청장이나 군수 등 기초단체 선출직 공무원들이 불법 건축물 규제 등 권한을 가지고 있는데, 이들이 기득권 기성세대의 정치적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과거에는 이렇게까지 잔인한 방식으로 착취하진 않았다. 결국 청년들은 이런 사회에선 못 살겠다며 저출생 등으로 반응하고 있다. 서울 지역 청년 주거빈곤율은 계속해서 올라가고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 상황이 연쇄적으로 이어질 것이다.

최지희= 청년 주거빈곤은 ‘젊을 때 잠깐 고생’식의 일시적인 현상이 결코 아니다. 지금 원룸에 살고 있는 청년이 훗날 아파트에 살 수 있을까. 취업을 하고도 쭉 원룸에 살 가능성이 크다. ‘민달팽이 유니온’은 대학생 세입자들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이는데, 설문조사에 ‘청년 피 빨아먹는 임대업자’ ‘등골 빨아 기생하는 집주인’ 같은 말들이 출현하는 빈도가 잦아졌다. 청년 세대의 분노, 사회의 갈등으로 나타나는 것들, 청년 세대의 보수화 등과 주거 환경이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서종균= 양극화가 심화하는 국면에서 시대에 맞는 대응이 필요하다. 대도시 중심 1인 가구가 필요로 하는 저렴한 주택이 굉장히 부족하다. 그 공급을 어떤 형태로든 늘리는 게 앞으로 5~10년 사이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최근 역세권 2030 청년주택(이하 청년주택) 등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공급이 늘어나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다.

서종균 SH 주거복지처장이 28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청년 주거 정책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서종균 SH 주거복지처장이 28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청년 주거 정책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최근 청년주택은 온라인에서 ‘5평(16.51㎡) 면적’ 논란으로 큰 홍역을 치렀는데.

서종균= 5평이라는 면적에만 주목하는 건, 청년주택의 모든 가능성을 가려 버리는 것이다. 청년주택의 몇 가지 의의를 보자면 청년들이 필요로 하는 입지(역세권)와 시기에 주택을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개발 방식 측면에서도, 공공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찾았다는 점에서 미래지향적인 측면이 있다. 민간 사업자에게 용적률 상향 등 인센티브를 주고 주택을 어떤 식으로 구성할지를 함께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본다.

최지희= 하지만 공공이 나서서 5평 임대주택을 만듦으로써, 임대업자들에게도 점점 더 작은 원룸을 공급해도 된다는 빌미를 줬다. 그래도 과거 공공임대주택 정책들이 보여 주는 ‘가난한 이들은 외곽에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서는 한 발짝 더 나아갔다. 사회 인프라와 모든 유무형의 자원, 기회, 정보 등은 중심부에 몰려 있지만, 잘 갖춰진 도심은 가난한 사람의 진입을 용납하지 않았다. 청년을 역세권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한 점은 굉장히 중요한 지점이다.

최은영= 저는 청년주택을 부정적으로 본다. 공공이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정을 투입하는 게 아니라, 민간에 ‘용적률 상향’을 당근으로 내밀어 손쉽게 해결하려 했다. 이로 인해 지하철역 부근 토지 가격이 전반적으로 상승한 것은 사회적으로 매우 큰 손실이다. 서울시는 2002년부터 열악하고 노후한 주택을 많이 샀기 때문에 그 건물을 부수고 용적률을 늘려 짓는 방식 등 공공이 가진 자원을 먼저 활용할 방안이 있었다. 청년주택은 순서가 잘못됐다.

서종균= 파리나 런던 등 해외 대도시는 도심에 집을 지을 때 10~20%가량을 무조건 임대주택으로 확보하게 한다. 그러면 모든 지역이 임대주택 관련 부담을 나눠 가져 형평에 맞고 공정하다. 우리는 청년주택 사업자에 굉장히 혜택을 많이 주면서도 공급량 중 20%를 확보하는 데 그쳤다. 굉장히 소박한 수준이다. 그 정도 민간사업자에게 혜택을 줬으면 공공임대 물량을 전체 40~50% 수준으로 확보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한국도 집을 지을 때부터 무조건 임대주택을 확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2022년까지 4만5,000명의 청년에게 20만원(최대 10개월)의 월세를 지원하겠다는 서울시의 발표는 어떻게 생각하나.

최은영= 중앙정부보다 발 빠르게 움직여 큰 의미가 있다. 국토부는 주거급여 수급 가구 내 부모로부터 독립한 20대 미혼 청년에 대해 주거급여를 2021년부터 지급하기로 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부모가 수급자가 아니더라도 가난할 수 있는 청년에게 월세를 지원한다. 청년은 학업이나 직장에 따라 떠돌아다니기 때문에 오히려 공공임대주택보다는 수당과 같은 방식이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신쪽방’ 등 불법 건축물에 대한 보완이 없으면 대학가 원룸 건물주의 부당 이익으로 귀속될 수 있으니 규제책과 함께 가야 한다고 본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이정원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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