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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히 ‘싫다’해도 된다는 것, 가장 중요한 성교육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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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히 ‘싫다’해도 된다는 것, 가장 중요한 성교육이죠”

입력
2019.11.02 04:4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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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교사 15명 모인 ‘아웃박스’ 

 서울교대서 성교육 페스티벌 열어 

 “콘돔 뭐예요? 생리 왜 아파요?” 

 난감한 질문에 대답 노하우 전달 

1일 서울 서초동 서울교대 사향광장에서 열린 ‘성교육 페스티벌’ 전경
1일 서울 서초동 서울교대 사향광장에서 열린 ‘성교육 페스티벌’ 전경

초등학교 교실에선 항상 예상치 못한 질문들이 쏟아진다. “선생님? 콘돔이 뭐에요?” “생리하면 키 안 크나요?” “포경수술은 꼭 해야 하는 건가요?” “성관계는 어떻게 하는 거죠?” 교사들은 당황한다. 어색한 미소만 지으며 우물쭈물하다 그냥 넘기기 일쑤다. 선생인데 제대로 답을 알려주지 못한 거 같아 스스로 미안스러운 마음이 들다가도 한편으론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제대로 배운 적이 없는 거 같다.

1일 서울 서초동 서울교대 사향광장에서 열린 ‘성교육 페스티벌’ 한 켠에서 열린 ‘선생님, 성이 뭐예요?’ 세미나에선 ‘아이들에게 제대로 성교육을 해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하고 고민하는 초등학교 교사들이 모였다. 이날 세미나는 15명의 젊은 선생님들로 구성된 ‘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가 마련했다. 이날 세미나에선 이들이 지난 3년간 학교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며 익힌 ‘깨알’ 노하우들을 술술 풀어냈다.

성교육 때 중요한 건 뭘까. 바로 아이들에게 싫을 땐 ‘싫다’라는 표현을 거리낌없이 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아이들이 가장 하기 힘들어 하는 말이 뭔 줄 아세요? 바로 ‘싫다’는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말입니다.” 물론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바로 싫다고 할 땐 절대 ‘미안하다’고 하지 않는 것. 아웃박스 소속 성민주 선생의 말에 예비 선생님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날 모인 교사들은 성교육이 ‘정답 없는 난제’라고 토로했다. 이날 행사를 기획한 아웃박스 김수진(29) 교사도 그랬다. 어느 학년이든 1년에 6시간은 성교육을 ‘필수’로 해야 하는데, 정작 교대 다닐 적엔 단 한번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었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아마 보건 교사들이 대신 할 거예요. 성교육이라고 해도 ‘몽정은 이런 거예요, 생리는 이렇게 시작돼요’ 정도에 그치죠” ‘사귀는 사이라면 내가 저 아이의 손을 잡아도 되는 걸까’ ‘수업 중 나도 모르게 발기가 됐는데 이건 부끄러운 일일까’ ‘생리가 시작되면 원래 이렇게 아픈 걸까’, 아이들이 정말로 궁금해하는 것을 알려주자는 생각에 김 선생도 아이들 성교육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저작권 한국일보] 1일 오후 '성교육 페스티벌'이 열린 서울 서초동 서울교대 사향광장에서 만난 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의 소속 김수진(29)교사.
[저작권 한국일보] 1일 오후 '성교육 페스티벌'이 열린 서울 서초동 서울교대 사향광장에서 만난 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의 소속 김수진(29)교사.

김 교사는 ‘성교육’이란 ‘성평등 교육’의 한 자락이라고 강조한다.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배우는 건, 어디까지나 서로를 구분 짓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고 끌어안기 위해서니까요.” 그래서 1,2학년 아이들에게 발레리나를 남자로, 축구선수를 여자로 그리게 했다. 3,4학년에 접어든 아이들에겐 제 손으로 차별의 표현을 바로잡게 했다.

성교육지만 몸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고민한다.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한 여자 아이들은 ‘사탕껍질’ 같은 옷들을 입고 와요. 핑크에 레이스 일색. 이렇다 보니 오히려 저학년 어린이들 사이에서 성고정관념이 더 강하게 나타나요” 어린 아이일수록 부모가 여자아이, 남자아이에게 기대하는 성역할을 그대로 흡수해버리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은연 중에 강요되는 ‘여성성’이나 ‘남성성’의 경계를 지워내는 것도 중요한 이유죠.”

교사들이 성교육 때 사용하는 다양한 물품들.
교사들이 성교육 때 사용하는 다양한 물품들.

중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이 울상을 지으며 연락해올 땐, 특히 마음이 아프다. “중학교에 갔더니 남학생들이 생리하는 여학생을 두고 ‘피싸개’라고 놀리더라는 거죠. 생리를 소변처럼 ‘참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아마 초등학교 때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겠죠.” 혼자서 고군분투하는 것만으로는 쉽지 않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이유다.

그래도 김 교사는 요즘은 보람을 느낀다. “시작할 때만 해도 너무 막막했어요. 한 30년은 더 걸릴 것 같았는데, 3년 만에 체감하는 변화가 엄청 나요. 저 멀리 창원에서도 부산에서도 ‘함께하고 싶다’며 연락해오는 젊은 선생님들이 어찌나 많은지”라며 웃었다. 이날도 일찍 퇴근하고 삼삼오오 몰려든 2030 교사들로 페스티벌은 내내 활기가 넘쳤다.

글ㆍ사진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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