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회사의 의약품을 대신 만들어주는 ‘위탁생산’이 제약ㆍ바이오업계의 성장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자체 보유한 우수 기술력과 설비를 폭넓게 활용해 시장에서의 영향력과 수익성을 모두 확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탁생산은 제약 분야의 매력적인 사업 모델로 평가 받는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들어 위탁생산을 강화하는 기업들이 속속 늘어나고 있다. 위탁생산은 JW중외제약과 삼양바이오팜 같은 토종 제약사들에게는 해외시장 진출, 삼성이나 SK 같은 대기업에겐 바이오 분야에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발판이 되고 있다.
지난달 29일 삼양바이오팜은 항암제 원료물질과 완제품을 생산하는 대전 공장을 증설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서 만드는 제품 일부는 삼양바이오팜이 국내에 판매하고, 나머지는 독일과 일본, 중동, 동남아시아로 수출한다. 이를 이용해 현지 제약사는 최종 제품을 만든다. 외국 제약사들의 원료나 제품을 삼양바이오팜이 대신 생산해주는 것이다.
공장 증설이 완료되면 삼양바이오팜은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의 GMP(우수 의약품 제조관리 기준) 인증을 받을 계획이다. 선진시장으로 수출을 확대하기 위해서다. 삼양바이오팜 관계자는 “증설 공장 가동 후 현재 연간 120억원 수준인 수출 규모를 2025년 500억원으로 늘리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위탁생산은 CMO(계약제조기관)라고 불리는 일부 전문업체들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국내외 제약사들이 높은 수준의 기술력과 설비를 확보하면서 점차 CMO의 영역을 넘보기 시작했다. 영양수액 원천기술을 보유한 JW생명과학은 충남 당진 수액 공장을 증설하고 전자동화해 국내외 수액 제조사들의 제품을 위탁생산하고 있다. 또 JW중외제약은 두타스테리드 성분의 탈모치료제를 처음 알약 형태로 만든 이후 10여개 제약사에게서 위탁생산 요청을 받았다.
JW중외제약 관계자는 “위탁생산은 높은 수준의 기술력, 생산 노하우, 최신 설비가 필수”라며 “향후 베트남에서도 동남아를 대상으로 위탁생산 사업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JW중외제약은 지난달 베트남 의약품 제조사 유비팜을 인수했다.
기업들이 위탁생산에 눈독을 들이는 건 생산설비를 갖추지 못한 작은 바이오기업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작은 기업으로선 대규모 시설 투자 없이 제품을 생산할 수 있고, 위탁생산 기업으로선 추가 수익원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다. 업계에 따르면 위탁생산 업체는 통상 약값의 30~40% 수준인 제조원가의 30~40%만큼 마진을 붙여 고객사에 공급한다. 약값이 1,000원이면 제조원가는 400원 정도가 되는데, 위탁생산 업체는 540원에 만들어주는 것이다. 대형 제약사라도 신약개발이나 마케팅 같은 핵심 영역에 집중하기 위해 생산은 타사에 위탁하는 경우가 느는 추세다. 덕분에 세계 위탁생산 시장은 2015년 이후 연평균 8% 넘게 성장하고 있다.
위탁생산은 제약업체들이 불확실성 높은 신약개발에 지속적으로 투자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해주는 역할을 한다. 다양한 의약품을 생산할수록 대형 수주가 수월해진다. 제약 분야에 뛰어든 대기업들이 위탁생산 사업의 몸집을 키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SK㈜는 한국과 미국, 유럽에 분산돼 있는 위탁생산 법인을 합친 통합법인 SK팜테코를 내년 1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에 출범시킬 예정이다. SK 관계자는 “지난해 위탁생산 사업 총 매출은 4,800억원이었다”며 “2025년 이후 사업 가치를 10조원 수준으로 육성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 대표주자인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위탁개발(CDO), 위탁연구(CRO)로도 영역을 확장했다. 실험실 단계에서 대량생산으로 넘어가는 공정을 대신 개발해주거나 약 개발에 필수인 실험도 대행해준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관계자는 “지난 5월 기준으로 올해에만 위탁생산 7건, 위탁개발ㆍ연구 20건을 수주했다”고 말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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