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일 국회의원들이 양국 관계의 돌파구 마련을 위해 머리를 맞댔지만 강제동원 배상문제를 둘러싼 입장 차이를 재확인했다. 1일 일본 도쿄(東京) 중의원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일ㆍ일한 의원연맹 합동총회에서 일본 측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근거로 한국이 강제동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누카가 후쿠시로(額賀福志郞) 일한의원연맹 회장은 이날 인사말에서 “현재 한일관계가 최대 위기라고 불리는 이유는 ‘구 한반도 출신 노동자’(강제동원 피해자)를 둘러싼 문제에 대한 한국 대법원 판결과 지금까지의 한국 정부 대응이 청구권 협정에 저촉됐다”며 “한일관계의 법적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는 사태를 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한국의 역대 정권은 한일 기본조약과 청구권 협정을 준수했다”며 “문재인 정권에서도 선인들의 경험과 교훈을 통해 배우고 국가와 국가 간 약속을 지키며, 양국이 미래를 향해 전진해 나가기 위해 대립이 아닌 협조 체제를 구축하길 바란다”고 했다.
가와무라 다케오(河村建夫) 일한의원연맹 간사장은 기조연설에서 지난해 한국 대법원 판결에 대해 “한일관계의 법적 기반인 기본 조약과 청구권 협정을 흔들 수 있다”며 “이 문제는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된 것이므로, 한국의 사법 판단이 있었다고 해도 한국의 내정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이 문제 해법의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및 일본의 수출 규제 강화 문제의 해결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재검토와 일본 수출 규제 철회를 맞교환하는 방안은 한국 측이 강제동원 문제 해법을 제시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일본 정부의 입장을 반복한 셈이다.
한국 측 강창일 한일의원연맹 회장은 “강제동원 배ㆍ보상 등 역사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대화를 꾸준히 이어나가야 한다”며 “피해 당사자들이 입은 상처와 결부된 민감한 사안인 만큼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7월 일본 정부가 한국을 상대로 단행한 수출 규제 조치 이후 백색국가 제외, 지소미아 종료 결정으로 이어졌다”며 “자유무역질서를 앞장서 흔드는 행위는 국제사회로부터 지지를 얻기 어렵다”고 일본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김광림 한일의원연맹 간사장은 기조연설에서 “양국 의원연맹이 앞장서 갈등으로 얼룩진 2019년을 떠나 보내고 2020년에 한 차원 높은 교류와 협력의 새 장을 열어나가기를 기대한다”고 의원 외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날 회의에선 강제동원 배상판결, 수출 규제, 지소미아 등 한일 현안 외에 한일 의원들이 참여하는 도쿄올림픽 특별위원회 설치에 대해서도 논의됐다. 이낙연 국무총리와 문희상 국회의장은 이날 회의에 축사를 보냈지만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보내지 않았다. 한일의원연맹과 일한의원연맹은 한국일 의원들의 초당파적인 교류단체로 매년 양국에서 번갈아 합동총회를 개최하고 있다. 올해는 강 회장을 포함한 47명의 한국 의원들이 일본을 찾았다. 당초 9월 개최될 예정이었지만 한일갈등 분위기 속에 한 차례 연기됐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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