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이 협상상대 최선희로 급 맞추면 협상팀 위상 강화
북미 실무협상 미국 측 대표인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국무부 부장관에 지명됐다. 비건 대표는 대북 정책도 계속 지휘할 것으로 알려져 북미 협상에 더욱 힘이 실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백악관은 이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 같은 내용의 인선을 단행했다고 발표했다. 비건 대표는 상원 인준 청문회를 거쳐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에 이은 국무부 2인자 자리에 오르게 된다. 존 설리반 국무부 부장관이 주러시아 미국 대사에 지명돼 전날 상원 인준 청문회를 마치면서 후임 인사가 이뤄졌다.
지난해 8월부터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를 맡아 대북 실무 협상을 이끌었던 비건 대표는 부장관 승진 후에도 대북 외교를 계속 책임질 것이라고 정부 당국자를 인용해 로이터통신 등이 전했다. 폼페이오 장관도 이날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북한 관련 노력에서 실질적 리더였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고 말했다. 이수혁 신임 주미 대사는 이날 비건 대표와의 면담 후 특파원들과 만나 “비건 대표가 자기 신분이 어떻게 되든 지에 관계 없이 북한 핵 문제는 계속 다루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고 말했다. 다만 부장관 업무가 광범위하다 보니 일상적 대북 업무는 알렉스 웡 대북특별부대표가 맡게 될 것이라고 워싱턴포스트(WP)가 전했다. 아울러 내년 선거에서 폼페이오 장관의 캔자스주 상원 출마 가능성이 계속 거론되고 있어 비건 대표가 국무장관 대행까지 맡을 수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대북 협상 대표가 국무부 2인자라는 막강한 자리에 오르면서 북미 협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이다. 국무부 부장관이 특정 국가 협상 대표를 겸직하는 것 자체가 이례적으로 대북 외교를 자신의 주요 성과로 여기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협상에 더욱 힘을 싣겠다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과거 6자 회담을 비롯해 대북 협상 책임자는 통상 차관보급이 맡았고 비건 대표도 차관보급으로 분류됐다가 차관을 넘어 부장관으로 두 계단이나 승격된 것이다.
대북 협상 대표의 위상 강화는 교착 상태인 북미 협상에 돌파구를 모색하려는 측면도 없지 않다. 북한 측 카운터파트가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에서 최선희 외무성 1부상으로 자연스럽게 올라가 북한 대미 외교의 실세인 최 부상과 비건 라인으로 실무 협상의 추진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안보전략연구실장은 “사회주의 국가일수록 외교에서 의전을 중요시하는 만큼 북한이 최 제1부상을 내보내 급을 맞출 공산이 크다”고 했다.
아울러 비건 대표가 합리적이고 진지한 태도로 공화 민주 양당으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고 비핵화 협상 타결에도 큰 애착을 갖고 있어 북한 입장에서도 긍정적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 그간 대북 강온파간 알력으로 잦은 혼선을 보였던 트럼프 정부의 대북 대응도 보다 유기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북 매파인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 재임 당시 백악관과 국무부간 불협화음이 자주 노출됐고 국무부와 재무부 등 부처간 엇박자도 적지 않았다.
비건 대표는 2001~2003년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당시 콘돌리자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과 호흡을 맞춘 바 있고 포드 자동차 국제 정부 담당 부회장을 역임했다. 트럼프 정부에서 대북특별대표를 맡아 한반도 문제에 깊이 관여하고 한국 정부 인사들과도 인연을 쌓은 비건 대표가 국무부 고위직에 오르면서 한미 동맹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이날 비건 대표와 면담하며 공식 업무 수행에 들어간 이 대사는 “비건 대표는 나의 의견을 매우 편안하게 생각하고 나도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좋은 친구를 국무부 고위 관료로 가진 것 같다”고 기대감을 보였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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