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7일 레바논 정부가 ‘왓츠앱(WhatsApp)’ 등 메신저 어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한 통화에 세금을 부과하겠다고 발표하자, 수도 베이루트의 리아드 알-솔 광장은 연일 시위 인파로 북적거렸다. 그러나 2주도 채 지나지 않아 레바논은 정치적 격변에 직면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10월 29일 사드 하리리 총리가 사임 의사를 발표하기 전후, 폭도들이 광장의 시위대를 향해 폭력을 휘두른 건 종파주의에 취약한 레바논 사회의 뇌관을 ‘제대로’ 건드린 풍경이었다.
시위 초기 레바논 거리는 진보적이다 못해 급진적인 구호들로 가득 찼다. 종파와 종교로 철저히 나뉘어 있는 ‘불안한 동거 사회’ 레바논에서 그 차이를 초월한 광장이 열린 건 고무적 현상이었다. 차도르를 입은 여성이 “자본을 타도하자. 금융(자본가의) 통치를 거부한다”와 같은 반(反)신자유주의 구호를 외치는가 하면, 레바논 중앙은행 앞에선 반미 구호와 함께 미국의 대(對)헤즈볼라 제재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담은 피켓들도 등장했다. 레바논 중앙은행 총재인 리아드 살라메는 현지에서 ‘가장 부패한 인물’로 주저 없이 꼽힌다. 그는 1993년부터 지금까지 26년간 은행 총재직을 맡고 있다.
일부 언론은 레바논 시위의 성격을 ‘반정부’라고 규정했지만, 오히려 ‘반체제’라는 표현이 더 타당할 것이다. 시위대는 현 정부(기독교, 이슬람 시아파, 이슬람 수니파가 참여한 집권연정) 퇴진은 물론, 기존 정치권의 전면 물갈이와 중앙은행 총재 등 사회 엘리트들의 총체적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모두 다 물러나라는 건, (문자 그대로) 모두 다 물러나라는 의미다(all of them means all of them)”라는 구호는 그래서 나왔다. 극심한 경제 불평등, 종신 권력을 누려 온 정치 엘리트들에 신물이 난 시민들은 그들이 권력 장악의 근거로 삼았던 이른바 ‘내전 후 체제(Post-Civil War Regime)’의 변화까지 요구하고 있다.
레바논의 ‘내전 후 체제’란 이런 것이다. 1975년 4월 시작된 레바논 내전은 종파 간 갈등에다 팔레스타인 분쟁 등 중동 정세까지 얽히면서 혹독하게 전개됐다. 그러다 1989년 10월 사우디아라비아 타이프에서 내전 종식에 합의했다. 바로 이 타이프 조약에 따라 오늘날 레바논은 이른바 ‘컨페셔널리즘(confessionalism)’으로 불리는 종파권력분담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종파 간의 권력 분담을 제도로 명시해 갈등을 막자는 취지다. 15년간 내전을 치른 국가가 도출해 낸 ‘안정화’ 자구책이라고 볼 수 있다.
그에 따라 총리는 수니파에서, 나라의 통합 역할을 부여받은 대통령은 기독교에서 각각 나오고, 국회의장은 시아파 정치권에서 맡는다. 문제는 자기 정파에 분담된 권력을 마치 종신 권력인 양 악용해 온 정치 엘리트들이다. 지난 30년간 각 정파 수장들은 수평적 권력 분배만 했을 뿐, 수직적 권력 이양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권력을 이양한들 대부분 정실주의에 따라 자녀나 친족에게 넘겨주는 수준이었다.
예컨대 현재 국회의장이자 부패 권력의 핵심 인물로 모두의 입에 오르내리는 나비 베리(81)는 레바논의 두 시아파 정당 중 한곳인 ‘아말운동’의 최고 수장이다. 그는 1992년부터 시아파에 분담된 국회의장직을 독점해 왔다. 전직 노동부 장관이자 사회인류학자인 샤르벨 나하스가 “이 나라는 지난 30년간 군벌이 통치해 왔다“고 말한 건 내전 시대의 수장들이 여전히 권력의 꼭대기에 있는 현실을 빗댄 것이다.
그러나 권력 분담은 당장의 분쟁만 막았을 뿐, 종파 간 갈등의 씨앗까지 무력화시키진 못했다. 다른 커뮤니티를 향한 내재된 불신은 정치적 지반이 흔들리는 순간, 언제든 다시 폭발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게 레바논의 현실이다. 이번 시위 현장에서도 종파 변수가 불쑥 튀어나왔다. 지난달 22일 오토바이를 탄 한 무리의 남성들이 시위 현장에 몰려들었는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 여론의 다수는 이들을 ‘헤즈볼라’라고 단정하거나 추측하면서 확증편향을 조장했다. 그때쯤 이미 영어로 전해지는 레바논 시위 소식에서 헤즈볼라는 ‘반(反)헤즈볼라’의 레토릭과 함께 오르내렸다. 그러나 같은 날 헤즈볼라 공보국은 성명을 통해 “오늘 밤 베이루트 중심가로 향했던 오토바이 무리는 헤즈볼라와 전혀 상관이 없다”고 밝혔다.
레바논대 정치학과의 아말 사아드 교수를 비롯, 헤즈볼라 이슈에 천착해 온 레바논 논객들은 오토바이 무리에 대해 “나비 베리 국회의장이 이끄는 ‘아말운동’ 지지자들”이라고 지적했다. 아말운동과 헤즈볼라는 모두 시아파 정당이고, 하리리 총리의 집권연정에 가담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아말운동=헤즈볼라’라고 볼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내전 기간 중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눴던 두 시아파 정당은 여전히 간헐적으로 부딪치고 있다.
헤즈볼라의 지도자인 하산 나스랄라 사무총장이 시위와 관련해 첫 연설을 한 건 지난달 19일, 곧 시위가 시작된 지 사흘째였다. 그는 일단 “시위에 진정성이 있고, 시위대가 목표한 바를 모두 지지한다”고 전제했다. 그러나 헤즈볼라의 ‘조직적 참여’는 곤란한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했다. 하나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있는 시위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논리였고, 다른 이유에 대해선 이렇게 설명했다. “시위대 다수가 익명적 대중이고, 광장에 머물다가도 요구사항 몇 개만 이행되면 떠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헤즈볼라가 (조직적으로) 동참하면, 우리는 요구사항이 완전히 이행될 때까지 떠날 수가 없다.” 원칙과 규율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만큼, 개인보다는 조직의 결정을 우선시하는 무장정당으로서의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달 25일, 나스랄라의 두 번째 연설은 톤이 달라졌다. 그는 먼저 “우리가 시위대를 공격했다고 하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우리가 만일 광장으로 간다면 그건 반정부 시위 진영에 동참하는 형식일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이와 동시에 이번 시위를 반헤즈볼라 음모에 이용하려는 ‘외부 세력’이 있을 수 있다면서 혼란은 물론, 내전까지 우려된다고 경고했다. 그리고는 “헤즈볼라 지지자들은 광장에서 떠나라”고 말했다.
그사이 시위 소식에선 ‘안티-헤즈볼라’ 레토릭이 보다 늘어났고, 미국의 보수 논객들은 ‘친정부 헤즈볼라 대 반정부 시위대’라는 갈등 구도를 그려나갔다. 레바논 태생으로 미 보수 매체인 폭스뉴스의 ‘국가안보 및 외교정책’ 분야 논객으로 활동 중인 극우학자 왈리드 파레스도 그러한 경우다. 지난달 25일 그가 올린 트윗은 이렇다. “존경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님. 레바논 시민 200만명이 베이루트와 주요 도시에서 정부의 고질적 부패와 헤즈볼라의 테러 위협에 맞서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그들은 당신(트럼프)을 자유세계와 정의를 열망하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줄 리더로 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레바논을 다시 자유로운 사회로 만들고 싶어 합니다!”
한편, 벨기에 브뤼셀의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에서 이라크ㆍ시리아ㆍ레바논 분석가로 활동 중인 하이코 빔멘은 나스랄라의 2차 연설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나스랄라는 이 운동을 포용할 좋은 기회를 놓쳤다. 시위에 참여한 많은 이들이 헤즈볼라 지지자였음에도 말이다. 나스랄라는 종파주의가 배제된 선거법에 따라 선거를 다시 치르자고 호소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 대신에 그는 (총리의 개혁안을 지지하는 등) 현상체제 유지를 택했다.” 유사한 비판은 진보를 표방하며 헤즈볼라에 호의적 논조를 보여 왔던 레바논 언론 ‘알아크바르’에서도 나왔다. 이 매체는 지난달 29일 자 기사에서 헤즈볼라를 이렇게 질타했다. “헤즈볼라는 (물갈이) 시민운동을 시위 첫날 또는 둘째 날부터 끌어안고 (집권)동맹 세력에 압력을 가하면서 급진적 변화를 요구했어야 옳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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