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사업장 돌며 전략회의
LG전자 스마트폰 베트남서 생산
롯데ㆍ이마트 실적 악화 현실화
지난 30일 경영진 간담회에서 비상경영체제 전환을 선언한 롯데 외에도 삼성전자, LG디스플레이, 대한항공, 쌍용차 등 주요 기업들은 이미 비상 체제를 운영중이다. 일부 기업은 적자가 지속되자 경영진을 교체하고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에 돌입하는 등의 극약처방도 내리고 있다. 글로벌 업황 부진으로 올해 실적이 ‘반토막’난 반도체 업계뿐만 아니라 디스플레이, 자동차, 항공, 유통업까지 거의 모든 산업 영역으로 빠르게 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 기업인 삼성전자는 이미 비상 경영체제에 돌입한 상태다. 세계 최대 수출 시장인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이 지속되고 있고, 일본이 주요 반도체ㆍ디스플레이 소재에 대한 수출 규제 조치를 내리는 등 ‘경제 보복’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6월부터 전국의 반도체, 디스플레이 사업장을 돌며 최고경영진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스마트폰 사업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삼성전자는 제품 생산을 하청업체에게 위탁하는 ‘제조업자개발생산(ODM)’을 확대하는 등 중저가 스마트폰 생산 라인의 전면 개편 작업에 착수했다. 삼성이 ODM 생산량을 얼마나 늘릴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지만, 삼성에 부품을 납품하는 국내 중소기업들은 공급처를 잃게 될까 잔뜩 긴장하고 있다. LG전자 역시 스마트폰 사업의 적자가 계속되자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생산라인을 베트남으로 이전하기로 했다.
액정표시장치(LCD) 디스플레이로 수년간 호황을 누렸던 LG디스플레이는 비상경영을 넘어 생존을 위한 혹독한 구조조정을 진행중이다. LCD 생산 기술을 따라 잡은 중국이 지난해부터 LCD 패널을 헐값에 대량 생산하면서,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싼 LG디스플레이 제품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이 급락했다. 3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중인 LG디스플레이의 올해 누적 적자폭은 1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주력 생산제품을 LCD에서 부가가치가 높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로 전환하는 작업에 착수했고, 임직원 2,500여명을 최근 감원했다. 경쟁사인 삼성디스플레이도 수익성 악화를 막기 위해 LCD 생산라인을 QD(양자점) 디스플레이로 전환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재계 5위 기업 롯데의 위기감은 주력인 유통사업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 2분기 롯데쇼핑의 대형마트ㆍ할인점 부문은 33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슈퍼마켓 부문 2분기 영업손실도 140억원에서 198억원으로 확대됐다. 급성장하는 온라인 쇼핑업체들과의 경쟁 심화, 한일 관계 악화로 인한 불매운동의 불똥이 튄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롯데의 유통 라이벌 신세계그룹의 위기는 지난 2분기 299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한 이마트의 실적으로 이미 현실화했다. 이마트가 영업적자를 낸 건 2011년 신세계에서 법인을 분리한 이후 처음이다. 20년 이상 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했던 이마트가 적자를 내자 신세계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외부 인사를 최고경영자(CEO)로 영입하고 사실상 비상경영에 돌입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최근 11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 중인 쌍용자동차가 가장 먼저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최근 임원수 20% 축소, 임원급여 10%, 삭감, 조직개편 등을 포함한 자구책도 추진 중이다. 르노삼성자동차는 위탁생산 하던 닛산 ‘로그’ 계약 종료로 생산량이 줄면서 최대 400명 규모의 희망퇴직 및 순환휴직을 실시했다.
일본제품 불매운동으로 인한 국내 여행객의 일본 여행 급감, 유가 상승 등으로 실적이 악화된 항공업계 역시 비상경영을 실시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이달 중순 창립 50년 만에 처음으로 ‘단기 희망휴직’ 제도를 실시했다. 2분기 1,015억원의 영업손실을 내자 인건비 절감을 위한 고육책이라는 분석이다. 매각 작업이 진행중인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4월부터 무급휴직을 실시했다. 저비용항공사(LCC)인 이스타항공도 최근 승무원을 대상으로 무급휴직 신청을 받는 등 긴축 경영에 돌입했다.
익명을 요구한 4대그룹 관계자는 “체감 경기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악인데, 정부는 여전히 낙관론만 펼치고 있다”며 “다른 기업 얘기를 들어봐도 당장 내년 사업 계획을 어찌 마련해야 할지 난감해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류종은 기자 rje31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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