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된 특약매입 지침 일단 미뤄… 전문가들 “근로제 보완책 등 필요”
백화점 세일 등 유통업체 판촉행사에서 백화점과 입점 업체가 비용을 반씩 분담하도록 강제하는 규제를 도입하려던 공정거래위원회가 한 발 물러섰다. 애초 계획보다 분담 의무에 예외 조건을 늘리고 적용시기도 내년으로 미룬 것이다. 새 규제로 당장 11월 펼쳐지는 ‘코리아 세일 페스타’와 향후 백화점 정기세일 등이 아예 사라질 수 있다는 현장의 우려를 받아 들인 조치다.
전문가들은 최근 기업들이 저마다 비상경영에 나서는 상황에서,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기업들의 투자와 활력을 도울 방안 마련에 힘써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31일 공정위는 2014년 제정된 ‘대규모 유통업 분야의 특약매입거래에 관한 부당성 심사지침(일명 특약매입 지침)’ 효력이 30일로 끝나 이날부터 새 지침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개정된 새 지침에는 백화점, 아울렛, 대형마트 등 유통업체가 판촉행사를 할 때 ‘최소 50% 이상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간 입점업체에게 과도한 판촉 비용을 떠넘긴 유통업체의 ‘갑질’을 견제하기 위해서다. 입점업체가 자발적으로 세일에 참여할 경우에만 유통업체의 50% 이상 부담 의무를 면제토록 했다.
강화된 지침에 유통업계는 “현실을 무시한 규제”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백화점들은 연간 네 차례 진행하는 정기 세일이 사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11월 열리는 코리아 세일 페스타 보이콧 움직임까지 일었다.
현장의 강한 반발에 공정위도 한 발 물러섰다. 입점업체의 ‘자발성 요건’을 판단할 때 ‘유통업체가 사전에 행사를 기획ㆍ고지했다는 정황만으로 입점업체의 자발성이 무조건 부인되는 것은 아니다’는 단서를 단 것이다. 백화점이 정기 세일 날짜를 정해도 입점업체 스스로 세부 판촉 내용(가격 할인폭 등)을 기획한 뒤 동참한다면 입점업체의 자발성을 인정해 50% 분담 의무를 면제하겠다는 의미다. 공정위는 또 판촉비용 부담 관련 규제 시행 시점도 내년 1월1일로 미뤘다. 코리아 세일 페스타 참여 업체들의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의도다.
전문가들은 이번 공정위의 ‘규제 속도조절’처럼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기업활동 지원사격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한다. 최근 일본 수출규제를 계기로 정부가 일부 기업들에게 특별연장근로를 인가해 주고, 공정위가 수출규제 관련 산업에 한해 계열사간 거래를 부당한 내부거래로 보지 않기로 한 것도 시장 현실을 감안한 규제 완화의 연장선상에 있다.
기업들이 몸을 웅크린 채 저마다 투자를 줄이고 있는 만큼 정부라도 투자를 유도할 노동, 산업 규제의 속도 조절 같은 유인책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적잖다. 김태기 단국대 교수는 “중소기업들은 탄력근로제나 선택근로제 등 주52시간제의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보완책이 나오지 않으면 시행 시점이라도 미뤄 달라고 아우성”이라며 “제도가 잘 정착되기 위해서는 속도 조절을 통해 기업들이 준비할 시간을 벌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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