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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신용보증기금 ‘무분별 소송’... 부실보증 책임 떠넘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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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신용보증기금 ‘무분별 소송’... 부실보증 책임 떠넘기기

입력
2019.11.01 04:4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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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한국일보]신용보증기금의 사해행위 취소소송 현황 그래픽=신동준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신용보증기금의 사해행위 취소소송 현황 그래픽=신동준 기자

작은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A씨는 최근 공공기관인 신용보증기금(신보)에게 소송을 당했다. 신보는 2016년 12월 A씨 회사에 채무가 있는 B사가 자사 보유 부동산에 근저당권을 설정해준 것을 문제 삼았다. 앞서 B사는 신보의 보증으로 금융 대출을 받았다가 부실에 빠졌는데, B사가 이 돈을 갚지 않으려 A씨 회사에 담보를 제공하는 수법으로 자산(부동산)을 빼돌렸다는 것이다. 신보는 A씨에게 근저당권을 말소하고 부동산을 B사에 돌려줘야 한다고 요구했다.

A씨는 신보의 소송 제기에 “황당했다”고 말했다. B사로부터 11개월어치 공사 자재 납품대금을 받지 못한 탓에 B사 부동산을 담보로 잡은 것뿐인데, 신보는 마치 A씨가 B업체의 ‘재산 빼돌리기’에 작당이라도 한 양 몰아세웠기 때문이다. A씨는 “우리 같은 중소기업이 거래처와 신보가 보증 계약을 맺었다는 걸 어떻게 알겠나”라며 “납품대금을 받지 못해 피해를 본 건 우리 업체인데, 신보 요구대로 근저당권이 일방적으로 말소되면 돈을 어디서 받으라는 말이냐”고 성토했다.

A씨가 신보에게 당한 소송은 이른바 ‘사해행위(詐害行爲) 취소소송’이라 불린다. 사해행위는 채무자가 일부러 채권자에게 손해를 가하려 하는 행위로, 빚을 갚지 않으려 보유 자산을 빼돌리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 과정에서 자산이 제3자에게 넘어갔다면, 채권자는 그를 상대로 채무자에게 자산을 돌려줄 것을 소송을 통해 요구할 수 있다.

신보는 이런 사해행위 취소소송을 자주 제기한다. 담보 능력은 부족하지만 신용도를 갖췄다고 판단되는 중소기업에 금융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보증서를 제공하는 것이 주된 업무이다 보니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보증을 서준 회사가 돈을 제대로 갚지 않으면 신보가 우선 금융사에 채무를 이행한 뒤 회사에 변제를 요구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해당 업체가 돈을 빼돌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신보가 소송을 남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31일 본보가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신보가 2015년부터 올해 9월까지 5년간 제기한 사해행위 취소소송은 4,347건으로 집계됐다. 매달 평균 76건에 달하는 수치다.

더구나 신보는 이 중 1,035건(23.8%)에서 패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로 인해 신보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게 된 재산의 규모는 3,800억원에 이른다. 신보가 소송 네 번 중 한 번꼴로 지면서 채권 확보에 실패한다는 얘긴데, 패소 사건 중 상당수는 A씨처럼 억울하게 소송에 휘말린 사례일 확률이 농후하다. 더구나 신보는 소송 제기에 앞서 가압류부터 신청하는 경우가 많다. 선의의 피해자라면 법원이 판결을 내리기 전까지 재산권을 침해 받게 되는 셈이다.

신보가 당장의 부실보증 책임을 모면하는 수단으로 소송에 의존하고 있다는 의심도 제기된다. 본보가 입수한 신보 내부자료(사해행위 취소소송 검토 절차)에 따르면, 부실기업 재산을 얻은 제3자는 신보에 소명자료를 제출해 선의를 입증해야만 소송을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신보는 선의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을 구체적으로 세우지 않은 채 ‘주관적 요건’으로 분류하고 있다. 사실상 담당 직원의 자의적 판단에 맡긴 셈이다.

이 때문에 신보의 사해행위 취소소송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김 의원은 “신보 스스로 부실기업 재산 취득 거래의 진정성을 검증하려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며 “이런 과정을 모두 거쳤는데도 사해행위라는 판단이 들었을 때에만 신중하게 소송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대폭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신보도 개선 의지를 밝혔다. 신보는 김 의원에게 제출한 공식 입장을 통해 “사해행위 취소소송 검토 과정에서 ‘주관적 요건’으로 분류된 영역에 대해 판단 기준을 구체화하는 방향으로 절차를 개정하겠다”며 “부실기업 재산의 취득 거래와 관련해 확인 가능한 사항을 먼저 검토하고 개인정보보호 등으로 객관적 자료를 입수하지 못하면 당사자와의 면담을 거쳐 판단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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