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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 도박 마약 사디즘… 미국을 파멸시키는 7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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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 도박 마약 사디즘… 미국을 파멸시키는 7가지

입력
2019.10.31 16:50
수정
2019.10.31 21:46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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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 연합뉴스

‘7개 키워드로 보는 미국 파멸 보고서.’

퓰리처상 수상자인 미국 언론인 크리스 헤지스가 낸 ‘미국의 미래’는 그 부제만으로 얼마나 진보적인 저서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실제 내용도 그렇다. 부제가 말하는 7가지 키워드는 쇠망, 헤로인, 노동, 사디즘, 증오, 도박, 자유. 20여년간 일간 뉴욕타임스의 종군기자로 활동해 온 그가 절망과 상처로 얼룩진 미국 전역의 사람들을 만나 보고 들은 이야기를 7가지 형태로 낱낱이 고발했다.

헤지스의 주장은 미국이 만성적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혐오 증대나 노동 문제는 물론이고 대중 일반에게까지 물든 도박, 사디스트적인 포르노, 치명적인 마약성 진통제 오피오이드 중독까지 양상도 다양하다. 헤지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미국의 민주, 공화 양당이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정치권이 철저하게 기업 권력에 사로잡혀 있는 데다 공고화된 자본주의에서 이 같은 문제들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 탓이다.

헤지스는 다양한 방식으로 미국의 절망을 이야기한다. 각종 철학자와 사회학자의 분석부터 저자가 목도한 인물들의 모습까지 다양한 접근이 동원된다. 16세 때 학교 상담사에게 ‘네 의붓아버지가 반 친구와 동침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후 마약을 복용하기 시작한 파카노의 삶이 대표적이다. 그는 헤로인에 중독돼 학교를 중퇴하고 비슷한 마약 중독자들을 만나 사랑하며 아이를 낳는다. 하지만 경제적 여건이 안 돼 매춘의 길로 내몰리고 사회 갱생 프로그램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악순환을 끊을 수도 없다.

시리아에서 온 대졸 출신 전기기사 아메드도 비슷한 상황이다. 1993년 미국 애틀랜틱시티 카지노에 처음 발을 들인 그는 5,000달러를 잃고 돈을 되찾기 위해 카지노를 수차례 찾다가 어느새 도박 중독자가 됐다. 그는 10년간 100만달러 이상을 도박에 썼는데 대부분은 트럼프 타지마할 카지노로 흘렀다. 누군가가 도박에 중독돼 가족과 사회마저 구원해 주지 못할 때, 대형 기업들은 주머니를 채우고 경제, 정치 권력을 얻는다.

극단적인 사례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50세 이하 미국인 가운데 마약 과용으로 죽는 사람은 심장병, 암, 자살,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들보다 많고, 그 수는 1999년 이후 최근까지 4배나 증가했으니 말이다. 2016년 미국인들은 1,169억달러를 도박에서 잃었고, 미국인이 한 해 스포츠에 불법 베팅하는 돈은 무려 4,000억달러다. 헤지스는 이를 포함한 여러 미국 사회의 징후들을 고려할 때 2030년에는 미국이 지금과 같은 열강 위치에 있지 못할 것이란 도발적인 주장을 한다.

헤지스는 국내 독자를 위해 특별히 서문을 보내면서 한국에도 경고를 보낸다. “한국에서 기업 독재는 최근 형성되기 시작했지만 미국의 권력 구조를 짧은 시간에 그대로 답습했다고 볼 수 있다. (…) 2018년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의 연구에 의하면 제주 고등학생의 12%가 게임중독 증세를 보이고 있다. (…) 증오 그룹은 무너져가는 사회에서 증식한다. 한국인 중 44% 이상이 이민자를 이웃으로 보지 않는다고 한다….”

미국은 정말 파멸할까. 헤지스는 자신이 만난 이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미국의 현재를 짚어 가기 때문에 미국의 진짜 모습에 대한 논리적인 분석을 바라는 독자라면 갈증이 가시지 않을 수는 있다. 다만 손에 잡히지 않는 현상과 수치를 짜깁기하는 것보단 여러 구체적 사례를 깊고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일에서 오는 깨달음은 굉장히 현실적이고 강렬하다.

미국의 미래

크리스 헤지스 지음ㆍ최유신 옮김

오월의봄 발행ㆍ544쪽ㆍ2만4,000원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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