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정보통신기술 발달은 현대인에게 표현의 자유를 안겨줬다.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만의 생각과 감정을 쉽게 표출할 수 있게 됐다. 표현 공간은 넓어졌지만 표현 방법은 변함없다. 표현의 도구인 말과 글은 공간을 확보하면서 무분별하게 생산된다. 찰나에 내뱉듯 나온 날 것 그대로의 말이 끊임없이 회자되고, 미처 정제되지 못한 글은 칼이 되어 목숨을 해하고 상처를 남긴다. 미국의 저명한 문학평론가 스탠리 피시(81)가 쓴 ‘문장의 일’은 매일 쏟아지는 언어 더미에서 우리가 읽고 써야 할 것들을 찾는 방법을 알려 주는 책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그는 ‘문장’에 집착한다. 배관공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이라고 말하는 그는 꽉 막힌 문장을 보면 어떻게 뚫을 것인가에 평생 집중해 왔다고 한다. 좋은 문장을 향한 그의 방법론은 간단명료하다. 뛰어난 문장을 찾아내고, 왜 뛰어난지 알아채고, 그런 문장을 쓰기 위한 모방 훈련을 계속하라고 조언한다.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해 그가 구체적으로 제안하는 출발점은 내용보다 형식이다. 형식보다 내용과 생각이 중요하다는 통념을 단박에 뒤엎는다. 저자는 하고자 하는 얘기보다 우선 논리 관계 구조인 형식부터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형식을 갖춘 문장에서 말과 글은 시작된다. 저자는 “내용은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교란 요소이며, 형식을 잘 갖춘 명료하고 탄탄한 문장을 쓰는 기량은 형식에 집중해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가 말하는 형식은 주어와 동사를 갖추고, 적절한 형용사와 조사를 쓰는 문법이 아니다. 행위자와 행위와 행위 대상을 연결하는 논리 형식이다. 저자가 예로 든 ‘사람들은 돈이 힘이라고들 하지만, 나는 돈이 부패한다고 말한다’처럼 반론을 제기할 때 좋은 형식을 갖춘 문장이다. 이 문장은 앞서(사람들은 돈이 힘이라고들 하지만) 지금까지의 지혜나 이론을 요약하고, 뒤에(나는 돈이 부패한다고 말한다) 오는 반론을 좀 더 명확하게 한다. 이에 대입해 자신의 주장을 넣는 연습을 반복적으로 해 보라는 게 저자의 요지이다. 그는 제인 오스틴, 스콧 피츠제럴드, 존 업다이크, 허먼 멜빌, 버지니아 울프,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 당대 거장들의 문장을 빌려 종속 형식, 병렬 형식, 풍자 형식 등 세 가지 유형을 대표적으로 소개한다. 틀에 맞춰 자신의 주장을 넣어 다양하게 활용하는 법을 글쓰기 교재처럼 자세하게 설명한다.
문장 훈련에 책의 90% 이상을 할애한 저자는 책의 말미에 내용으로 돌아온다. 궁극적으로 글의 목적은 내용 표현에 있다고 시인한다. 문장 분석을 통해 좋은 글을 골라내어 읽고, 문장 훈련으로 글쓰기의 기본을 갖췄다면 내용으로 글을 완성해야 한다. 저자는 이 같은 글쓰기의 과정을 그림 감상에 비유한다. 그림을 인상적으로 만드는 요인이 화가가 어떻게 그러한 효과를 낼 수 있었는지 분석하는 데 있듯이 글도 문장을 분석하고 모방하는 연습을 통해 식견을 높이고 문장을 읽는 법을 깨달을 수 있다고 했다. 책은 미국의 주요 대학의 글쓰기 강좌 필독서인데, 쉴 새 없이 댓글을 달고 메시지를 보내고, 일상을 기록하는 우리 모두를 위한 필독서이기도 하다.
문장의 일
스탠리 피시 지음ㆍ오수원 옮김
윌북 발행ㆍ272쪽ㆍ1만3,800원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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