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한승진씨
‘실로암 헬스모아’ 앱 개발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수준으로 시각 장애가 있어도 상관없어요. 이렇게 의약품 상자를 손에 들고 카메라 앞에서 빙빙 돌리다 보면 금방 의약품 복용 설명을 들을 수 있어요.”
31일 서울 은천동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한승진(44) 정보미디어팀장은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카메라를 켜고 의약품 상자의 바코드를 비추자 스마트폰 화면에 큰 글씨로 사용 설명서가 떴다. 동시에 스피커에서는 설명서를 읽어주는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카메라로 바코드 등을 인식해 약의 효능ㆍ효과, 용법ㆍ용량, 주의사항 등을 일러주는 스마트폰 앱 ‘실로암 헬스모아’다.
복지관이 추진한 ‘2019 나눔과 꿈’ 프로젝트 중 하나로 한 팀장의 팀이 함께 개발, 지난 2일 본격 출시했다. 2003년부터 복지관에서 근무한 한 팀장은 ‘시각장애인 모바일 도서관 구축’ 등을 총괄한 이 분야 베테랑이다.
한 팀장은 선천성 중증 시각장애인이다. 헬스모아 앱도 스스로 개발 필요성을 느껴 만들어낸 앱이다. 시각장애인에겐 여러 불편함이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의약품 복용이다. 깨알 같은 글씨로 만들어 둔 설명서를 읽을 수도 없을뿐더러, 약품들은 약을 담아둔 용기가 엇비슷해 서로 구분하기도 어렵다. 올바른 약을 잘 찾았다 해도, 양을 얼마나 해야 할지 틀리기 일쑤다.
그러니 울지도 웃지도 못할 일이 종종 벌어진다. 한 팀장은 “시각장애인들에겐 찰과상을 입은 아이에게 화상용 연고를 발라주고, 감기약 대신 설사약을 먹는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며 “나 역시 아이에게 감기약을 과다 복용시킨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 문제가 제기된 건 벌써 20여년도 넘은 얘기다. 하지만 이렇다 할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한 팀장은 “의약품 상자에 점자 표기를 하는 방안, 전자칩을 부착하는 방안 등이 논의됐지만 비용 문제 등으로 제약사와 합의가 좌절됐다”고 말했다. 한 팀장은 일상의 필수품인 스마트폰 카메라와 바코드에서 돌파구를 찾아 낸 것이다.
시각장애인들에 대한 테스트에서도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어냈다. 그는 “시각장애인들은 카메라를 쓸 일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 스마트폰 카메라를 켜는 걸 어색하게 여겼다”며 “그 부분만 적응되면 다들 금세 적응한다”고 말했다.
개발 작업을 생각보다 쉬웠다 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제공하는 6만 여종의 국내 의약품 공공데이터를 끌어왔다. 음성안내는 구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톡백(Talk Back)’과 애플 ios의 ‘보이스오버(VoiceOver)’를 썼다. 화면에 뜬 문자를 음성으로 읽어주는 기능이다. 한 팀장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서비스라면 거창한 걸 생각하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며 “별도로 ‘장애인 전용’을 만들기보다 기존에 있는 것들을 응용하고 개선해 장애인 뿐 아니라 비장애인 편히 쓸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한 게 더 효과적”이라 강조했다.
글ㆍ사진=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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