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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유행병에 대한 준비

입력
2019.11.04 04:40
수정
2019.11.06 18:01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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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일 콩고민주공화국 고마에서 보건요원들이 주민들에게 에볼라 예방백신 접종을 시행하고 있다.
지난 8월 1일 콩고민주공화국 고마에서 보건요원들이 주민들에게 에볼라 예방백신 접종을 시행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를 상상해보자. 단 며칠 만에 치명적인 유행성 독감이 전 세계로 퍼져 무역과 여행을 할 수 없게 되고, 사회적인 혼란이 촉발된다. 전 세계 경제를 파괴하고, 수천만 명의 생명을 위협한다. 이런 대규모 유행병의 발생은 생각만 해도 무서운 이야기지만 실제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위험을 줄이려면 지금부터 준비를 해야 한다.

지난 몇 년간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을 포함해 세계 곳곳에서 황열병 에볼라 등 각종 전염병이 계속해서 발생했다. 세계준비감시위원회(Global Preparedness Monitoring Board)의 최신 보고서는 전 세계 인구 3분의 1에 영향을 주고 약 5,000만명을 죽음으로 몰고 간 1918년의 유행성 독감이 21세기 인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만일 그와 유사한 전염병이 오늘날 발병하게 된다면 1918년에 비해 훨씬 빠른 속도로 광범위하게 확산될 것이며, 전 세계 경제의 5%가 손실되는 심각한 영향을 받을 것이다. 이런 전염병 및 다른 건강 관련 비상사태가 세계 안보에 미치는 심각한 위협에도 불구, 전 세계 정치 지도자들은 이에 대비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고 있다. 현재 전 세계 모든 국가가 약속한 보건 안보에 대한 주된 국제조약인 ‘국제보건규칙’을 제대로 이행하는 정부는 없다. 그러니 빠른 속도로 퍼지는 공기전염병에 대해 전 세계가 한심할 정도로 대비가 미흡하다는 사실이 놀랄 일도 아니다.

질병을 예방, 치료, 억제하는 데 필요한 백신, 진단방법, 약물 등 많은 도구가 이미 개발돼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전 세계 지도자들은 그런 도구의 규모를 확대시키려는 노력을 충분히 하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대규모 유행병이 일단 발생하면 지역 사회에 심각한 피해가 가는 것을 막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지역 사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보건 기술을 제공하기 위한 투자가 절실한 이유다.

지역 사회 주민들의 의료기관에 대한 낮은 신뢰도와 효과적인 조치를 방해하는 잘못된 정보의 고의적 확산 같은 요인은 의학적 문제이면서 사회적, 정치적, 안보적 문제이기도 하다. 현재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발병한 에볼라의 사례가 이에 해당된다.

세계보건기구(WHO)와 그 협력기관들은 2014~16년 서부 아프리카에서 에볼라가 발병한 이후 새로운 백신과 의약품, 그리고 혁신적인 보건기술을 포함해 에볼라 대응능력을 크게 향상시켜 왔다. 그러나 현재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발병한 에볼라는 당국 및 보건 종사자에 대한 신뢰 부족으로 인해 훨씬 더 복잡한 환경에서 전개되고 있으며, 이는 오랜 기간 불안에 시달려 온 지역 사회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하향식 대응으로 에볼라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유행병은 대개 지역 사회에서 시작돼 거기서 끝나지만, 국가와 국제당국은 여기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투자를 거의 하지 않는다. 보다 나은 접근 방식은 각 지역 사회의 요구를 인식하고 현지인들이 ‘계획과 책임구조’에 전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대규모 유행병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려면 자금이 필요하다. 그러나 생각하는 것처럼 많은 돈이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대부분의 국가가 보건비상사태 대비를 위해 1인당 1~2달러만 소비하면 된다. 이는 보건 투자 대비 10배 이상의 수익에 해당한다.

오늘날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 세상에서, 한 지역 사회가 유행병의 발생을 예방하거나 관리할 수 없게 된다면 모든 사람이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이를 고려할 때 안보를 포함한 사회 모든 부문이 예방과 기획에 참여해야 하며, 부유한 국가는 저소득 국가가 적절한 수준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여기에는 이미 목표로 한 보건 계획뿐만 아니라 공중보건 체제의 질, 적용 범위, 지속 가능성, 그리고 지역 사회의 완전한 참여를 늘리는 보다 광범위한 투자가 포함된다. 유엔(UN)의 ‘지속 가능 발전목표 3’은 2030년까지 재정적 위험에 대한 보호, 질 좋은 필수 건강관리 서비스의 이용, 안전하고 효과적이며 질 좋은 서민용 필수 의약품에 대한 접근을 포함한 건강보험 혜택을 모두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너무 오랫동안 보건 비상사태는 공포와 방치의 연속이었다. 다시 말해 매우 비효율적이고 비싼 접근 방식 탓에 우리 모두를 점증하는 위험에 처하게 했다. 전 세계 정부는 앞으로의 일을 미리 생각하고 지역, 국가, 국제 차원에서 자금을 늘려 보건체계를 강화하고 보건 비상사태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개선해야 한다. 또한 에볼라와 같은 알려진 병원체는 물론 동물에서 인간으로 전이될 수 있는 알려지지 않은 병원체 모두를 방지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지식도 있고 도구도 있다. 준비하지 않고 있다가 당하는 것에 대해 변명은 있을 수 없다.

그로 할렘 브룬틀란 전 노르웨이 총리ㆍ전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

엘하지 아 국제적십자연맹 사무총장ㆍ세계준비감시위원회 공동의장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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