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지난 9월 특정됐을 때 영화 ‘살인의 추억’(2003)이 다시 호명됐다. 관객 525만명을 불러모은 이 영화의 홍보 문구 중 하나가 ‘미치도록 잡고 싶었다’이다. 범인을 체포하고 싶은 형사들의 절박한 심정과 함께 장기 미제 사건이 잊히지 않았으면 하는 봉준호 감독의 바람이 담겼다. 지난 5월 영화 ‘기생충’으로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인생 최고의 순간을 누린 봉 감독은 하반기에 뜻하지 않은 ‘선물’까지 받은 셈이다.
□ 봉 감독은 ‘살인의 추억’ 이후 ‘괴물’(2006)과 ‘마더’(2009), ‘설국열차’(2013) 등 수작을 연이어 만들었지만, 많은 영화 팬들과 영화평론가들은 ‘살인의 추억’을 그의 최고작으로 꼽곤 했다. 동료 감독들이 시기할 만한 영화를 만들고도 자신의 초기 작품에 비교되며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국내 기자와 평론가들이 ‘기생충’의 높은 완성도를 짧게 전할 때 “‘살인의 추억’의 봉준호로 돌아갔다” “‘살인의 추억’ 이상이다” 식의 표현을 썼다. 대가에게 씌워지기 마련인 굴레다.
□ 국내에서 두터운 팬층을 형성한 봉 감독은 해외에서도 인기가 높다. ‘기생충’을 계기로 해외 팬들이 더욱 늘어나는 추세다. ‘기생충’이 칸영화제에 소개될 즈음 트위터에는 ‘#BongHive(봉하이브)’라는 해시태그가 등장하기도 했다. 하이브(Hive)는 벌집을 의미하는데, ‘봉하이브’는 봉 감독에게 열성적인 팬들의 모임으로 해석될 수 있다. 봉 감독의 영화를 단순히 좋아하는 정도를 넘어 벌집 안에서 웅웅거리는 벌들처럼 강한 팬덤을 발휘한다는 뜻이다. ‘봉하이브’는 요즘 미국 연예 언론이 즐겨 쓰는 신조어가 됐다.
□ 지난 27일 미국 연예지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기생충’은 11일 미국 극장 3곳에서 개봉한 후 2주 동안 41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외국어 영화로선 강력한 흥행세라는 평이다. 상영관도 급증하고 있다. 내년 미국 아카데미영화상에 작품상 등 주요 부문 후보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기생충’이 봉하이브를 기반으로 선전을 펼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비틀스의 열광적 팬인 ‘비틀마니아’에 빗댄 ‘BTS마니아’(방탄소년단 열혈 팬)라는 용어에 이어 봉하이브까지도 유행 조짐이다. 국력은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라제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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