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의사와 생활습관 상담… 혈압약 줄였죠”
‘일차의료 만성질환 관리 시범사업’ 시행 의원 가 보니
“약을 3분의 1로 줄이고도 혈압이 유지되는 건 ‘생활습관 변화’ 덕분인 것 같아요.”
29일 서울 광진구 중곡동 더불어내과에서 만난 김미진(52)씨는 5년 전부터 혈압약을 복용해 오고 있다. 예전에 다녔던 병원에선 하루 5개의 알약을 처방해 주었으나 지금은 1개 반만 복용한다. 처음 혈압약을 먹을 때부터 심한 두통이 생겼으나, 당시 의사는 “두통은 혈압약 때문이 아니다”라고만 했다.
지인 소개로 2년 전부터 다니기 시작한 더불어내과에서는 ‘일차의료 만성질환 관리 시범사업’에 등록하기를 권했다. 이 사업은 일차의료기관이 만성질환자에게 단순 진료와 처방만이 아니라 생활습관 개선 교육과 꾸준한 건강관리를 실시해 주는 사업이다. 김씨도 이를 통해 식습관 개선과 운동 등 생활습관 관리를 꾸준히 하다 보니 체중도 줄고 약도 줄일 수 있었다. 김씨는 이날도 윤여운 원장의 진료를 받은 뒤 ‘케어 코디네이터’인 간호사에게 20분 넘게 교육을 받았다. 간호사나 영양사가 담당하는 케어 코디네이터는 시범사업 등록 환자에게 만성질환 관리법에 대해 자세한 교육과 상담을 해 준다.
◇일차의료기관 역할 강화해야 건보료 부담 줄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혈압ㆍ당뇨병 환자 수는 2014년 790만명에서 2018년에는 917만명으로 늘었다. 심평원의 분석 결과, 만성질환자 중 한 곳의 병의원을 정기적으로 다니는 사람이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사람보다 투약도 꾸준하게 하고 합병증으로 인한 입원도 적다. 특히 이런 ‘단골의사’가 투약은 물론 생활습관 교육도 실시해 만성질환자를 잘 관리하면, 개인의 삶의 질이 크게 개선되는 것은 물론 건강보험 재정에도 도움이 된다. 결과적으로 국민이 내는 건강보험료도 낮출 수 있다. 일차의료를 강화하고 국민 보건의 패러다임을 ‘질병 치료’에서 ‘예방’과 ‘건강증진’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일보 취재 결과, 현재 전국 2,566개 의원이 참여해 16만3,000여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시행 중인 만성질환 관리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의료기관의 의료진들은 이 사업이 일차의료 강화와 국민 보건 패러다임 전환의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을 보고 있었다.
이들은 시범사업을 진행하면서 투약을 중단해도 될 정도로 혈압이나 당뇨 수치가 개선된 사례를 다수 확인했다고 밝혔다. 특히 환자와 의사 간 신뢰관계가 형성된 점을 가장 높이 평가했다. “처방전만 타러 온다”는 환자를 진료할 때 느꼈던 자괴감이 사라지고 이제 ‘신뢰 받는 의사 선생님’이 되었다는 보람이 크다.
서울 도봉구 방학동 동동가정의학과의 백재욱 원장은 “당뇨나 혈압이 있는 만성질환자들 중 ‘처방전만 타가면 되는데 왜 굳이 두 달에 한 번씩 와야 하는지 모르겠다, 1년치 약을 한꺼번에 주면 안 되냐’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며 시범사업에 참여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겨우 1년에 한두 번 하는 피검사조차 왜 해야 하는지, 혹시 병원이 돈을 벌기 위해 불필요한 검사를 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갖는 환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시범사업 등록 환자들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면서 각종 검사를 해야 하는 이유나 꾸준히 투약해야 하는 이유 등을 알려 주니 의사의 처방이나 지시에 잘 따르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백 원장은 “장시간 상담과 교육도 해 주고, 궁금한 점이 있을 때 문자나 전화로 질문과 답을 하기도 하는 등 적극적으로 소통을 하니 의사와 환자 사이에 있던 불신의 벽이 허물어지고 강한 신뢰가 형성되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갑자기 몸이 안 좋을 때나 건강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을 때 휴대폰을 통해 직접 의료진과 상담을 할 수 있다는 점은 환자들이 가장 큰 만족을 느끼는 부분이다. 동동가정의학과에 7년 전부터 다니기 시작한 김만중(75)씨는 스마트폰에 설치한 건강보험공단의 애플리케이션 ‘건강iN’에 아침 저녁으로 집에서 혈압을 측정해 입력한다. 그러다 평소와 다른 변화가 있다거나 하면 바로 문자를 통해 병원 측에 문의한다. 김씨는 “수년 동안 교육 받은 대로 건강식, 절주, 운동을 매일 실천하며 수시로 스마트폰으로 건강관리를 받았더니, 최근 받은 건강검진에선 ‘신체 나이 50대’라는 판정을 받았다”고 자랑했다. 백재욱 원장은 “휴대폰으로 실제 진료를 할 수는 없다”면서도 “정보를 전달하고 꾸준히 소통하는 통로가 되니 환자와의 관계가 크게 개선됐다”고 말했다.
◇‘케어 코디네이터’ 도입… 본인부담금은 확산 걸림돌
10여년 전인 2007년 ‘고혈압ㆍ당뇨병 등록관리사업’부터 여러 차례 이름이 바뀌어 만성질환 관리 시범사업이 실시됐지만, 올해 1월 시작된 ‘일차의료 만성질환 관리 시범사업’은 교육이나 상담에 대해 별도의 건강보험수가를 지급하고 케어 코디네이터를 도입한 점이 큰 특징이다. 간호사나 영양사 등으로 구성된 케어 코디네이터는 의사 대신 교육을 담당할 뿐 아니라 환자와의 소통에서도 큰 역할을 한다. 윤여운 더불어내과 원장은 “케어 코디네이터와의 상담 중에 환경적인 문제 요소를 파악해 개입할 수 있는 경우가 있었다”고 말했다. 케어코디네이터 조언으로 오메가3를 먹으면 안 되는 환자가 먹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건강식품 복용 습관을 바꾼 적도 있다.
이렇게 환자뿐 아니라 참여하는 병ㆍ의원 만족도도 높은 사업이지만 사업 추진 전부터 의료계 내 논란은 컸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보건복지부가 만성질환 관리를 이유로 ‘영국식 주치의제’와 ‘원격의료’ 도입을 위해 이 시범사업을 활용하려 한다는 의심을 감추지 않았다. 시범사업 추진단장을 맡고 있는 박형근 제주대 의대 교수는 이에 대해 “현재 시범사업에서 건강계획표 작성, 교육과 상담 등에 일일이 수가를 매기고 있고, 휴대폰 상담은 진료가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해 이런 오해는 많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아직 개선돼야 할 부분도 있다. 개인에게 일반 진료비 외에 추가 본인부담금(10%)이 든다는 점은 신규 환자 등록에 걸림돌이다. 사실 내원할 때마다 다양한 교육과 서비스가 제공되는 것에 비하면 겨우 800~2,000원(관리 내용에 따라 다름)의 추가 부담금은 전혀 비싼 게 아니지만, 만 65세 이상 노인은 ‘1회 진료 당 본인부담금은 1,500원’이란 인식이 워낙 강해 추가 요금을 내는 데 거부감이 많다. 백재욱 원장은 “일단 서비스를 받기 시작하면 환자가 만족하지만, 그 전에 신규 환자를 끌어들일 수 있어야 하는데 본인부담금이 문턱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여운 원장 역시 “아직은 처음 온 환자들이 ‘왜 굳이 교육과 상담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면서 “만성질환자의 꾸준한 관리 필요성을 정부가 좀더 홍보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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