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 위주 입시 탈피하고자 고안된 ‘학종’ 전형
‘스펙 불공정’ 논란 후 “정시 확대” 주장 나와 혼란 더해져
‘학종’이란 말, 들어보셨나요. ‘종이학’ 접기 아닌 건 아시죠. 수험생이거나 수험생의 가족에겐 아주 익숙한 단어인데요. ‘학생부종합전형’을 줄여서 부르는 말인 학종은 지난해 입시 과열 현상을 비판한 드라마 ‘스카이캐슬’을 통해 입시생 외 대중에게도 알려졌습니다. “영재가 서울대 의대에 학종 전형으로 합격했다”며 드라마 주인공 ‘예서 엄마’(염정아)가 포트폴리오에 집착하는 모습,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면 기억하실 거예요.
요즘 이 학종이 교육계의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학종은 공교육 붕괴의 주범으로 몰린 정시 전형 대안으로 만들어진 입시 전형인데요. 이 학종 전형이 공정성 논란에 휩싸이면서 ‘진짜로 공정한 입시 개편안’ 만들기가 시작된 겁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달 22일 국회 시정연설 정시 비중 확대 방침 언급과 같은 달 30일 국회에서 열린 당정청 협의회 후 본격적으로 청와대와 교육부, 국회까지 모두 머리를 맞대고 학종 공정성 강화, 정시 비중 상향안을 논의하고 있는데요. 흔히 ‘백년대계’로 불리는 교육정책이 매번 대입제도 때문에 흔들리는 이유를 알아볼까요.
◇종이학 접는 학종? 아니죠!
학종은 학생부종합전형을 줄여 부르는 말이라고 알려드렸는데요. 학종을 알려면 2007년 도입된 입학사정관전형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수능 점수 및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등으로 학생을 뽑는 입시 전형이 획일적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 교내 및 대외 활동, 면접 등의 제도로 학생 역량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겠다는 의도로 도입된 게 입학사정관전형입니다. 미국 등 다른 나라 대입 과정에서도 많이 사용하는 전형 방안이죠. 하지만 이 입학사정관전형 때문에 논문이나 공인어학성적 등 외부 ‘스펙’ 경쟁이 치열해진다는 지적을 받자 교육부는 2013년 “교내 활동을 중심으로 평가”하는 학종을 도입했습니다.
기존 전형과는 어떤 점이 다르냐고요. 모든 항목과 평가요소를 바탕으로 평가를 하기 때문에 ‘종합’ 전형이라고 부른다는 점입니다. 내신 성적뿐만 아니라 학생부에 적힌 모든 내용이 평가 대상이 되는데요. 기본 교육 과정에 포함된 모든 과목을 성실히 이수했는지 여부는 물론, 창의적 체험 활동도 중요한 항목이 됩니다.
창의적 체험 활동은 뭐냐고요. 주로 자율 활동이나 동아리 활동, 봉사 활동, 진로 탐색 등이 창의적 체험 활동에 해당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드라마 스카이캐슬에서 나온 독서토론 모임 ‘옴파로스’ 기억하세요. 조금 과장되긴 했지만, 상당히 현실적인 묘사입니다. 독서 활동과 비교과 활동을 얼마나 꾸준히, ‘진정성’을 갖고 했는지도 중요한 평가 항목이 된다고 합니다.
◇학종, 믿어도 되나요?
학종이 입시제도의 주요 전형으로 정착된 후 공정성 논란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스펙을 쌓는 과정에서 일반고 학생들은 외국어고 등 특수목적고 학생들 또는 자율형사립고(자사고) 학생들보다 불리하다는 지적도 그 중 하나죠.
교육부도 나름 노력은 했습니다. 고등학생의 연구논문 저자 등재나 도서 출판 등 기회가 공평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은 스펙들은 학생부나 자기소개서에 기재하지 못하도록 했고요. 학교가 아닌 교외에서 받은 상, 해외 봉사활동, 공인어학시험,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암시하는 내용도 적을 수 없게 했습니다.
하지만 교육 현장에선 어쩔 수 없는 한계점이 드러났어요. 학종 전형에서는 학생부가 큰 비중을 차지하다 보니 학교에선 학생부를 ‘학생들의 노비문서’라는 말도 나왔고요. 학생부를 작성하는 현직 교사들의 입김이 과도했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심지어 “학기 초 교사에게 밉보이면 학종은 기대하면 안 된다”는 말도 돌 정도라고 하네요.
‘교내 상 몰아주기’ 의혹도 문제점으로 꼽혔습니다. 성적이 좋은 일부 학생들의 입시에 유리하도록 교사들이 교내 상을 몰아준다는 의혹인데요. 다양한 요소를 평가하기 위해서 도입한다는 초기 취지와 달리 결국 교내 상까지 성적순이 되어 버리자 공정성 논란이 커질 수밖에 없었던 거죠.
◇그럼 정시 확대가 대안?
학종이 전국민적 현안으로 번지게 된 계기 중 하나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 입시 논란이었습니다. 조 전 장관 딸이 학종 전형으로 대학에 입학한 것은 아니지만, 교육의 공정성이 사회의 화두가 되면서 학종도 불똥을 맞게 됐죠.
결정타는 문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이었습니다. 문 대통령은 연설에서 정시 확대를 언급했는데요. 이 방침은 기존 교육부 입장과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청와대와 교육부, 누구 말이 맞냐”, “정시 확대 정말인가, 모든 대학 대상이냐”, “언제부터냐”, “정부의 교육 철학은 어디 갔냐” 등 온갖 궁금증과 비판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문 대통령은 왜 시정연설에서 대입 제도 개편을 언급한 걸까요. 특히 정시 비중 확대를 언급한 대통령의 발언은 “학종 공정성을 강화하겠다”는 교육부의 기존 입장과 완전히 다른 걸까요.
여야의 반응도 다양합니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은 정시 확대 방침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대입 불공정성을 완화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는데요. 다만 정의당은 “정시 확대는 우리 교육의 주요 방향과 목표였던 창의교육 확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방침”이라며 정시 확대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습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대통령의 말 한 마디로 대입제도 개선의 핵심 쟁점은 정시 수능 비율 확대라는 블랙홀에 빠져 버렸다”며 “정시 확대는 대통령의 핵심 교육 공약이자 2025년부터 시행하기로 한 고교학점제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라고 지적했어요.
◇그래서 정시야, 학종이야? 전문가도 공방
수능 위주의 정시 전형과 학교생활 기반의 학종 전형, 무엇이 더 낫냐고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입장이 갈립니다. 더불어민주당의 김병욱 의원과 김해영 의원은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정시확대 왜 필요한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는데요. 이날 참석한 이현 우리교육연구소장은 “일주일 34시간 중 28시간을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을 공부하고 있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으로 시험을 내는데 왜 수능을 보면 고교 교육이 무너진다고 주장하는 건가”라고 되물으며 정시 확대의 당위성을 강조했습니다. 교육평론가 이범씨도 “내가 의대를 가냐 못 가냐에 따라 생애 소득과 안정성에 큰 격차가 발생하는데, 당연히 납득할 수 있는 합격, 불합격의 기준이 제시돼야 한다”며 정시 확대를 주장했습니다. 사회 불평등이 더 큰 문제이기 때문에 그나마 공정하다 평가 받는 정시 전형부터 늘려가야 한다는 논리도 뒷받침됐습니다.
반면 정시 확대가 공교육 붕괴를 가속한다는 지적도 나왔어요.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김태훈 정책부위원장은 “수능 위주로 학생을 뽑던 과거에도 학교 교육이 붕괴하고 재수생이 증가한다는 비판이 빗발쳤다”며 “학종이 문제면 학종을 고칠 생각을 해야지, 다시 15년 전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학종 선발 비율이 이례적으로 높고 특목고ㆍ자사고 학생을 많이 뽑는 서울 주요 대학만 타깃으로 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청와대와 교육부의 입장도 비슷합니다. 또 정시 비중을 높이더라도 내신 비중을 일부 확대하면 학교 수업도 챙기게 해 공교육 붕괴를 막을 수 있지 않느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교육부는 해법 찾을 수 있을까? 글쎄…
갈팡질팡 오락가락 입시 제도의 가장 큰 피해자는 아무래도 학생들이겠죠. 허점을 보완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학생들의 혼란이 심해지지 않도록 발 빠르게 대처하는 게 교육부의 역할일 것입니다.
정부가 마련 중인 ‘대입 공정성 강화 방안’은 다음 달이 돼야 그 내용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 당정청 협의회 후 브리핑에서 “대학과 시도교육청 등의 의견을 듣고 (교육부가) 11월 셋째주에 구체적인 방안들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는데요.
교육부는 현재 학종 선발 비율이 높고 특목고, 자사고 학생을 많이 뽑는 대학 중심으로 입시제도 실태를 조사 중입니다. 또 학종 공정성 강화 방안 중 하나로 인맥을 통한 부정 입학 사례를 막기 위해 아예 학종 비교과 영역을 폐지하는 방안도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어요. 이를 토대로 학종을 개선하는 방안은 물론 정시 비중 확대를 포함한 입시 개선안이 나오는 게 이 달 초ㆍ중순쯤으로 전망됩니다.
문 대통령도 시정연설에서 입시제도 개편안을 언급한 지 사흘 만인 지난달 25일 교육개혁 관계장관회의에서 “수시에 대한 신뢰가 형성될 때까지 서울의 주요 대학을 중심으로 수시와 정시 비중의 지나친 불균형을 해소할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라”고 지시한 바 있죠. 이번에는 학생들이 공정한 기회를 토대로 노력한 만큼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입시 제도가 정착될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여기서 잠깐
대학입시 제도 변천사를 알아볼까요.
1945년 해방 후 대학별로 입학시험을 보는 제도가 생긴 뒤 54년 ‘대학입학 연합고사제’가 실시됐어요. 62년 국가 고사로 전환됐다가 64년에는 대학별로 입학시험을 보게 또 변했죠. 이른바 본고사 시대죠. 69년에는 예비고사라는 게 생겼습니다. 예비고사와 본고사를 모두 보는 제도였죠. 81년에는 이 본고사가 폐지됐고 예비고사와 내신이 함께 반영됐습니다. 이어 86년부터는 학력고사가 시작됐습니다.
학력고사를 대체한 수능은 94년에 등장했으니 25년이 넘었네요. 2001년에는 국ㆍ영ㆍ수 위주의 본고사가 국공립은 물론 사립대학까지 금지됐고, 수능 9등급제가 도입됐습니다. 2008년 수능부터는 백분위 점수를 제공하지 않았고요. 이후 사회탐구 및 과학탐구 선택 과목 수 변경, 수준별 수능 도입 등 작은 변화까지 살펴보면 입시제도는 거의 2년마다 변해온 셈입니다. 여기에 정시, 수시, 학종 등 전형 방안도 다양해 교육부 관료든, 교육전문가든 한국의 대입제도를 완벽히 파악하지 못한다는 얘기도 있을 정도죠.
이정은 기자 4tmr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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