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판다는 국보(國寶)로 불린다. 때론 중화민족의 자존심으로, 때론 친근한 자연의 친구로, 때론 화해와 우호의 물꼬를 트는 외교사절로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중국에서만 서식하는 판다는 번식력이 낮아 개체수가 2,000마리에 못 미친다. 어떻게든 멸종을 막으려는 중국인들의 사랑이 각별할 수밖에 없다. 베이징에서 열린 1990년 아시안게임의 마스코트 판판(盼盼)과 2022년 개최할 동계올림픽 마스코트 빙둔둔(氷墩墩) 모두 판다를 형상화했다. 2008년 하계올림픽 마스코트에도 징징(晶晶)이라는 판다 캐릭터가 포함돼 있다.
이처럼 소중한 판다가 새로 태어나자 중국 전역이 이름 짓기에 한창이다.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에 있는 친링 판다 번식연구센터는 지난 8월에 태어난 새끼 판다 3마리의 100일 잔치를 앞두고 온라인 공간에서 이름을 공모하고 있다. 6일까지 의견을 수렴해 11월 11일 최종 발표할 예정이다. 공모 하루 만에 1만명 넘게 참여할 정도로 열띤 호응을 얻고 있다고 글로벌타임스는 전했다.
단연 주목 받는 이름은 ‘7ㆍ0ㆍ년’이다. 신중국 건국 70주년을 맞이해 여느 해보다 중요한 올해의 의미를 한껏 부각시킨 것이다. 치치(七七ㆍ7), 스스(十十ㆍ10), 니엔니엔(年年ㆍ년)으로 명명해 3마리를 차례로 부르면 ‘70년’이 된다. 이외에 사회의 평안(平安)과 안전(安全)을 바라는 의미에서 핑핑(平平), 안안(安安), 취엔취엔(全全)으로 부르자는 의견과 중국식 햄버거인 시안의 명물 로우지아모(肉夾馍)처럼 오랫동안 사랑을 받으라며 로우로우(肉肉), 지아지아(夾夾), 모모(馍馍)를 제안하는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지고 있다.
물론 판다의 이름을 단순히 인기투표로 정하는 건 아니다. 중국은 2012년 영국 런던 올림픽 당시 판다가 태어나자 대륙을 넘어 전세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글로벌 이벤트로 격을 높여 이름을 공모했다. 그 결과 올림픽을 상징하는 아오리아오(奥莉奥)로 결정했다. 하지만 영어로는 ‘OREO’여서 미국의 비스킷 이름과 같았다. 멀쩡한 판다가 한낱 과자로 둔갑한 것이다. 자존심이 뭉개진 중국은 “이름을 짓는데 어떠한 상업적 고려도 하지 않았다”고 해명하며 쓰린 속을 달래야 했다.
이에 중국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2014년 판다 작명 규칙을 만들었다. △과거에 사용되지 않은 독특한 이름일 것 △가장 중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만큼 중국 전통문화의 특색을 반영할 것 △부르기 편하고 낭랑하게 들릴 것 △어미 판다의 성(姓)을 따를 것 △새끼 판다의 외모와 개성, 출생 당시의 특수한 사건이나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고려할 것 등 5가지 내용을 담았다.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판다로 인해 뒤통수를 맞은 사례도 있다. 지난 9월 독일 언론은 베를린 동물원에서 태어난 자이언트 판다 쌍둥이 이름을 ‘홍(Hong)’과 ‘콩(Kong)’으로 짓자고 제안했다. 중국의 아킬레스건인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의미다. 중국은 장기임대 형식으로 판다를 주요국에 보내 우호를 강화하고 있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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