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입김에 글로벌 제조사까지 포함 논의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을 겨냥했던 이른바 ‘구글세(디지털세)’ 부과 대상에 삼성전자, 현대차 등 우리나라 제조 대기업들까지 포함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디지털 기업이 아니라도 전 세계 소비자를 상대로 사업을 펼치는 다국적 기업은 매출을 올린 나라에서도 이익에 대한 세금(법인세)을 내야 한다는 논리다. 이런 움직임은 주요 IT기업들이 포진한 미국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다.
30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주요 20개국(G20)은 내년까지 디지털 경제에서의 과세권 배분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OECD는 올해 11월과 12월 두 차례 공청회를 거쳐 내년 초 다자간 협의체(IF)에서 기본 골격을 공개할 예정이다.
디지털세는 글로벌 IT 기업들이 전 세계에서 돈을 벌면서도 정작 시장이 있는 나라에는 법인세를 내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다. 별도 생산시설이 필요 없는 IT기업들은 그간 세율이 낮은 나라에 자산을 이전하는 등의 방법으로 고의적인 조세 회피에 나서기도 했다. 이에 OECD와 G20은 지난 2015년부터 디지털 경제 조세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했고, 프랑스 영국 등 유럽 일부 국가들은 독자적인 과세 방안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런데 IT기업만 대상이 될 줄 알았던 디지털세 부과 대상에 제조업 분야 기업들까지 포함될 가능성이 커졌다. IT기업 외에도 휴대폰이나 가전제품, 자동차 등 상품으로 전세계 소비자를 상대하는 기업에도 과세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는 영국, 미국, 독일ㆍ프랑스, 개도국협의체(G24) 등에서 제안한 기준을 지난 9일 OECD 사무국이 종합해 공개한 ‘통합 접근법’에 담긴 내용이다.
여기에는 기존 논의대로 과세하면 글로벌 IT 기업만 손해를 보게 될 걸 꺼려한 미국의 입김이 작용했다. 온라인 마케팅 등 디지털 방식을 활용해 소비재 기업이 다른 나라에서 일정 수준 이상 매출을 올리는 것도 디지털세 부과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게 미국의 주장이다.
최근의 논의 흐름대로 과세 방안이 확정되면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들도 그간 본사가 있는 한국이나, 공장이 있는 나라에 냈던 법인세를 판매 시장에 있는 다른 나라에도 나눠 내야 할 수 있다. 전 세계 매출이 일정 수준 이상(예 1조원)이고 이익률이 일반 기업들의 통상 이익률(예 10%)을 초과하는 수준이라면 디지털세 적용 대상이 될 수 있어서다. 구체적인 대상, 과세 기준 등은 향후 OECD 논의에서 정해질 예정이다.
OECD는 이와 함께 과세권이 있는 나라들이 글로벌 기업의 국외 소득에 대해 일정 세율 이상으로 과세하는 ‘글로벌 최저한세’ 도입도 논의하고 있다. 조세회피처를 거치면서 지나치게 낮은 세율이 적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기재부 관계자는 “국제조세는 힘의 논리가 작용하는 만큼 선진국이 논의를 이끌어 갈 수밖에 없고 그 중에서도 미국이 자신에게 유리한 제도를 만들기 위해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종=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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