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년도 더 된 1996년 개봉 영화 중에 ‘인디펜던스 데이’가 있다. 어린 시절 이 영화를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더랬다. 당시 영화가 크게 성공했기 때문에 20년 만인 2016년, 2편인 ‘인디펜던스 데이-리써전스’가 개봉됐지만, 비판의 난도질을 당하며 3편에 대한 가능성을 날리고 말았다.
1편이 내게 강하게 각인된 이유는 외계인이 침공해 오자 비행기 조종사 출신 미국 대통령이 직접 전투기를 몰고 돌진해 섬멸하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습기 짝이 없는 시나리오지만, 어린 나에게 죽음을 불사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은 큰 감동이었다. 즉 할리우드 영화에 아로새겨진 미국 우월주의에 경도된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게 비단 할리우드 영화만의 문제는 아니다. 예전 어른들은 흔히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을 해주곤 했다. 비슷한 것으로 “남자라면 삼국지를 꼭 읽어야 한다”는 말도 있다. 때문에 ‘삼국지’는 부모가 자식에게 사주는 필독의 단골 메뉴였다. 이로 인해 ‘삼국지’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많이 영화와 게임으로 만들어진 대표적인 문화 산물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우리의 역사도 아닌 소설 ‘삼국지’를 자발적으로 자식에게 읽으라고 권장했을까? ‘삼국지’는 진수의 정사(正史) ‘삼국지’와 명나라 나관중의 소설인 ‘삼국지연의’로 구분된다. 정사는 승자를 중심으로 하므로 유비의 촉한이 아닌 조조의 위나라가 정통이 된다. 이런 정사 중 후대에 영향력이 강한 책이 북송의 사마광이 찬술한 ‘자치통감(資治通鑑)’이다.
남송의 주자는 조조 중심의 ‘자치통감’에 불만이 있었다. 남송은 여진족의 금나라에 중원을 빼앗기고 북송의 일부가 남쪽으로 도망쳐 수립한 정부였다. 주자는 힘으로는 금나라에 졌지만, 그럼에도 정의는 남송에 있다고 주장하고 싶었다. 해서 ‘금=조조의 위’와 ‘남송=유비의 촉’이라는 감정을 역사에 투영해 촉한 정통론을 주장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주자의 ‘자치통감강목’이다. 소설 ‘삼국지’는 흥미롭게도 여기에서 시작되어 살을 붙인다.
‘삼국지’의 시작을 알리는 도원결의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고, 적벽대전이나 제갈량이 맹획을 굴복시키는 칠종칠금 역시 크게 부풀려진 솜사탕일 뿐이다. 또 관우가 휘둘렀다는 청룡언월도는 송나라 때에야 나오는 무기다. 즉 관우는 700년 후의 무기를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영화 ‘스타워즈’ 속 제다이의 광선검이라고나 할까?
또 이치로 생각해 보자. 적토마는 동탁이 여포에게 주고, 이후 조조에게 넘어가 관우가 타게 된다. 그리고는 형주에서 관우가 죽을 때까지 계속 함께한다. 그런데 말이 이렇게 오래 살 수 있는가? 또 명마의 전성기는 고작 몇 년에 불과한 것 아닌가? 즉 모두 소설적 산물인 것이다.
중국은 원나라 때부터 무대 연극이 발전하는데, 이로 인해 명나라에 이르면 120회본의 ‘삼국지’가 완성된다. 이는 120회짜리 연속극처럼 짧고 흥미롭게 각색된 대본이다. 또 무대극이었기 때문에 대규모 집단 전투는 장군들끼리의 1대 1 대결로 수정된다. 이로 인해 가장 이익을 본 인물이 바로 관우다.
‘삼국지’의 소설적인 허상에 사로잡혀 우리는 ‘명장하면 관우’, ‘전략가는 제갈량’이라는 공식을 세뇌받게 된다. 때문에 무패의 김유신이나 세계전쟁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113만7000명을 격파한 을지문덕은 이들과 필적할 수 없다. 즉 우리는 스스로의 자긍심을 버리고 문화적인 세뇌 구조에 침잠해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를 후세대에게 자발적으로 재생산하기까지 하니, ‘인디펜던스 데이’의 망령은 비단 나에게만 드리웠던 어두운 그림자는 아니었던 것이다.
자현 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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