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29일 별세한 어머니 강한옥(92) 여사와 유독 애틋했다. 1950년 흥남 철수 당시 남편 고 문용형 옹에 의지해 혈혈단신으로 월남한 뒤 이산의 상처를 오롯이 견뎌야 했던 모친을 각별히 여겼다. 좌판 장사, 연탄 배달 등으로 가족의 생계를 사실상 책임져야 했던 모친의 수고는 오늘의 문 대통령이 있게 한 바탕이기도 하다.
1927년생인 고인은 6남매의 장녀로 북한 함경남도 흥남의 솔안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1950년 흥남철수 때 피란민을 구출한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타고 내려왔다. 경남 거제에 정착한 지 2년 만에 문 대통령이 태어났다.
아버지가 하던 장사가 잘 풀리지 않은 탓에 문 대통령이 어렸을 때부터 집안 생계는 사실상 강 여사가 책임졌다. 시장 좌판에 옷을 놓고 팔거나 연탄배달을 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뼈저리게 가난했던 당시의 경험을 잊을 수 없었다”며 “가난하지만 기본은 지키며 살아야 한다는 부모님이 제게는 나침반이 됐다”고 썼다. 특히 “만져보면 아주 거친 손이지만 또 늘 따뜻했던 손으로 기억한다. 우리 어머니는 가족 생계를 오랜 세월 동안 책임지셨다”며 “여기 이 땅, 우리네 많은 어머니들처럼 그 긴 세월 수없이 많은 눈물과 한숨을 삼키셨다”고 마음을 담았다.
문 대통령은 75년 4월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경찰에서 조사를 받고 검찰로 이송되는 날 호송차를 따르던 어머니의 모습을 생생히 묘사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어머니가 팔을 휘저으며 ‘재인아! 재인아!’ 내 이름을 부르고 차 뒤를 따라 달려오고 계셨다”면서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멀어지는 호송차를 바라보고 계셨다”고 회상했다.
강 여사는 문 대통령이 청와대 사회문화수석으로 재직 중이던 2004년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 당시 북측에 있던 동생 병옥 씨를 만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9월 추석특별기획 방송에 출연해 “제가 아마 평생 어머니에게 제일 효도했던 것이 이때 어머니를 모시고 갔던 게 아닌가 싶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이 취임한 2017년에는 문 대통령의 손을 잡고 청와대 경내를 산책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이후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문 대통령이 강 여사가 있는 부산을 자주 들렀다. 문 대통령은 추석 연휴 등 짬이 생길 때마다 강 여사를 찾아 건강을 살폈다. 지난 26일에도 강 여사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부산을 찾아 문병을 한 뒤, 상태가 호전되자 청와대로 복귀했다.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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