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근로자의 36%인 748만명… 통계청 “조사방식 변경 탓”
전문가 “노인ㆍ초단기 ‘세금 일자리’ 증가가 주 원인”
전체 임금근로자 가운데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중이 12년 만에 최고치로 상승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취임일성으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의 정책과는 시장의 일자리 상황이 정반대로 움직인 셈이다. 정부는 “올해 통계 조사방식의 변화로 35만~50만명의 비정규직이 추가로 집계됐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그럼에도 비정규직이 대폭 늘고 정규직은 줄어든 고용 현실은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비정규직 비중, 12년 만에 최고
29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8월말 기준 비정규직 근로자는 748만1,000명으로 1년 전보다 86만7,000명 급증했다. 반면 정규직은 35만3,000명 감소한 1,307만8,000명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전체 임금근로자 중 비정규직의 비중(36.4%)은 2007년 3월 조사(36.6%) 이후 12년 만에 가장 높아졌다. 이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3년 이래 네 번째로 높은 수치다. 비정규직 비율은 2012년 이후 매년 31~33%대를 유지했지만, 올해 들어 급상승했다.
◇화들짝 놀란 정부, “조사방식 때문”
이 같은 결과에 정부는 긴급 진화에 나섰다. 평소 과장급이 하던 브리핑에 이례적으로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 임서정 고용노동부 차관, 강신욱 통계청장이 모두 나섰을 정도다. 이들은 “국제노동기구(ILO)의 권고로 올해 3, 6, 9월 실시한 ‘병행조사’의 영향으로 계약직 근로자 35만~50만명이 비정규직에 추가됐다”면서 “올해 통계를 예년과 직접 비교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강조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기존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선 ‘고용계약기간을 정하였나’를 먼저 묻고, ‘정하였음’이라고 답한 응답자에게만 ‘계약기간은 얼마인가’를 물었다. 반면 올해 새로 실시된 병행조사에선 고용계약기간을 정하지 않았다는 응답자에게도 ‘고용예상기간은 얼마인가’를 추가로 질의했다.
그러자 ‘계약기간을 정하지 않았다’던 응답자들도 이 질문에 답을 하면서 ‘나도 계약기간을 정한 것과 마찬가지구나’라고 인식하게 되고, 실제 8월 진행된 근로형태별 부가조사에선 ‘계약기간을 정한’ 기간제 근로자(비정규직)라고 답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고용동향은 전체 표본의 36분의 1을 매달 바꿔 조사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올해 3, 6월 병행조사에 참여한 응답자 대부분이 8월 부가조사에도 응한다.
정부는 이런 통계적 요인을 제외한 나머지 비정규직 증가에 대해서는 “취업자 증가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용범 차관은 “올해 취업자 증가 폭(51만5,000명)이 컸는데, 통상 취업자 중 비정규직 비율(32~33%)을 감안하면 그 비율만큼(약 17만명) 비정규직이 더 늘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통계 요인 제외해도 고용 질 악화”
하지만 병행조사와 취업자 증가 요인으로도 올해 대규모 비정규직 증가는 모두 설명되지 않는다. 병행조사로 인한 35만~50만명, 취업자 증가로 인한 17만명을 제외해도 비정규직은 지난 1년 사이 20만~35만명이나 늘었다. △2018년 3만6,000명 △2017년 9만7,000명 △2016년 17만2,000명 등의 증가폭보다 훨씬 크다. 여기에 현 정부 들어 올해 6월까지 공공부문에서 15만7,0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민간부문에서의 비정규직 증가 폭은 통계수치보다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대해 김용범 차관은 “노인ㆍ여성의 경제활동 확대, 복지 분야 고용 개선, 서면 근로계약서 작성 등 제도 개선으로 비정규직이 더 포착됐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시간제 근로자에 대해선 “일ㆍ생활 균형문화의 확산, 시간제를 선호하는 고령층과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확대로 증가세가 매년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부의 설명이 핑계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김태기 단국대 교수는 “정부가 예산으로 만든 노인ㆍ초단기 일자리가 크게 늘어난 것이 비정규직 증가의 주 원인”이라며 “조사방식 변경 요인을 제외해도 고용의 질이 나빠지고 있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처우 격차는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6~8월 비정규직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172만9,000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1년 전보다 8만5,000원(5.2%) 늘어난 것이지만, 정규직 월평균 임금 316만5,000원과 비교해 여전히 55% 수준이다.
8월 기준 정규직 근로자의 평균 근속기간은 7년 10개월로, 지난해보다 1개월 늘었다. 반면 비정규직(2년5개월)은 2개월 감소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근속기간 차이는 5년 5개월로 늘어났다.
세종=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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