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급습 작전으로 시리아 북부 이들립 지역에서 이슬람국가(IS) 최고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가 사망한 이후, 비행 거리로 10시간 가까이 떨어진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IS의 보복 테러 표적이 될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IS의 위세 약화 여부는 새 지도자가 누가 될 것인가에 달려 있지만 경제적 어려움과 불평등을 겪는 동남아 지역에서는 IS 추종 세력이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29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당국은 IS 추종자들이 필리핀으로 대거 유입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아요브 칸 마이딘 피차이 말레이시아 경찰청 특수부 대테러팀장은 “말레이시아의 모든 테러 계획은 이슬람 원리주의(살라피 주의) 성전(지하드) 이념에 영향을 받은 자생적 테러리스트, 이른바 ‘외로운 늑대’로부터 비롯된다”며 “살라피 지하드 이념이 사라지지 않는 한 테러 위협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SCMP에 밝혔다. 인도네시아 경찰 대테러단 고위 관계자도 “IS의 이념이 책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전국적으로 확산돼 영향력을 멈추기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특히 필리핀은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친 IS 세력이 물리적으로 영토와 군사력을 조종할 수 있는 곳이어서 IS 추종자들의 유입 가능성이 높다고 SCMP는 설명했다. 재커리 아부자 미 내셔널 워 칼리지 교수는 “알바그다디의 죽음으로 이라크와 시리아 행을 꺼리게 된 테러리스트들이 필리핀 민다나오를 택해 이동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섬은 2017년 5월부터 IS와 연계된 ‘마우테 그룹’과 방사모로이슬람자유전사단(BIFF), 아부 사야프 등의 무장 반군이 마라위시를 5개월 간 점령한 테러 활동의 온상이다. 에드가르드 아레발로 필리핀군 대변인이 28일 “알바그다디의 사망으로 필리핀에서 IS를 추종하는 테러단체의 보복 공격 가능성에 대비해 경계를 강화했다”고 밝히며 자국민에게 의심스러운 사람을 발견하면 신고해 달라고 당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편 미국의 알바그다디 제거 작전의 전말이 하나둘 밝혀지면서 시리아 쿠르드족이 미 정보당국에 이와 관련한 직접적 정보를 제공한 사실이 드러났다. 미군이 알바그다디 급습에 앞서 그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쿠르드 비밀요원이 미리 확보한 알바그다디의 속옷에서 DNA 확인을 위한 샘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쿠르드 계열 시리아민주군(SDF) 선임 참모인 폴랏 캔은 28일 SDF 공식 트위터 계정에 “지난 5월 15일 이후 우리는 미 중앙정보국(CIA)과 알바그다디를 추적하고 감시하기 위해 계속 협력해 왔다”며 이 같은 사실을 밝혔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26일 기자회견 당시 자세한 내용은 밝히지 않은 채 DNA 검사를 통해 알바그다디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말한 바 있어 쿠르드족의 역할이 경시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워싱턴포스트는 “시리아 철군으로 쿠르드족을 포기했다는 비난을 받아 온 트럼프 대통령이 이제 알바그다디의 죽음에 쿠르드족이 기여한 역할을 과소평가함으로써 (그들에게) 모욕감까지 더하고 있다”고 평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29일 알바그다디의 1순위 후계자 역시 미군에 의해 숨졌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 계정에 글을 올려 “방금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의 1순위 대체인물이 미군에 의해 피살됐음을 확인했다”면서 “(그가 죽지 않았다면) 아마도 최고 자리를 차지했을 테지만, 이제 그 역시 죽었다"고 말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숨진 인물의 신원이나 그가 어떻게 사망했는지에 관해서는 상세한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27일 알바그다디의 사망 사실을 발표하면서 후계자와 관련, "우리는 후계자들을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그들을 우리의 시야에 두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후계자 구도와 관련, 워싱턴포스트는 미 정보당국이 알바그다디의 후계자 6명을 추적 중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는 전날 알바그다디의 잠재적 후계자 중 한 명인 IS 대변인 아부 알하산 알무하지르가 알바그다디를 사망케 한 공격 직후 진행된 별도의 미군 작전에서 숨을 거뒀다고 국무부 고위 관리를 인용해 보도했다. 또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과거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 아래에서 장교로 복무한 압둘라 카르다시를 알바그다디의 후계자로 거론하기도 했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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