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사업장 노동자 증언대회
지난 4일 오후 2시쯤 경기 용인시 기흥구 지식산업센터 신축공사 현장의 한 건물 8층에서 작업을 하던 외국인 노동자 A(50)씨가 시스템 동바리(건축 구조물의 뼈대를 만드는 지지대) 해체 작업 도중 추락했다. A씨는 곧바로 인근 병원으로 이송돼 심폐소생술을 받았지만 오후 3시30분쯤 사망했다. A씨의 동료들은 “사고가 난 곳은 노동자들이 안전보건에 관한 문제를 수 차례 제기했지만 묵살된 곳"이라고 입을 모았다. 함경식 건설노조 경기도지부 사무국장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항이 많아 고발도 하고 위험발생신고를 진행하던 곳”이라며 “사고 발생 며칠 전 근로감독관의 점검도 있었지만 사고를 피하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2018년 11월12일 포스코 포항제철소 내 하청업체인 롤앤롤 회사에선 롤 교체작업 도중 B씨의 오른팔이 기계에 끼어 절단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6명이 해야 할 작업규정을 어기고 3명이 투입됐고, 현장엔 안전관리자를 배치해야 한다는 규정도 없었다. 송호승 금속노조 포스코사내하청지회 롤앤롤분회 노동안전부장은 “사고를 당한 B씨는 현재까지 열한 차례의 수술을 했고 앞으로 의수를 사용해야 한다”며 “(B씨 사고 이후) 회사에 적정 작업인원 보장을 요구하고 있지만, 작업이 지체되면 원청에서 하청으로 손해배상을 요구하기 때문에 작업자가 어떻게든 작업을 할 수밖에 없다”고 탄식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등이 중심이 된 노동시민단체인 위험의 외주화 금지 대책위원회가 29일 국회에서 연 ‘중대재해사업장 노동자 증언대회’참석자들의 증언이다. 지난해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작업 도중 숨진 하청노동자 고 김용균씨 사고 이후 정부와 국회가 산업안전보건법을 전면 개정하는 등 안전한 일터를 만들겠다고 나섰지만, 산업현장 곳곳에선 이를 체감할 수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
발전소, 조선소, 제철소, 건설현장 등 중대 산업재해가 많이 발생하는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공통적으로 사업장에 안전 관련 문제를 제기해도 개선되지 않는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김용균씨 사망사고 직후인 지난해 12월17일, 정부는 모든 석탄발전소에서 운전 중인 석탄운반 컨베이어 등 위험 설비 점검 시 2인1조 근무를 시행하도록 ‘긴급 안전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현장에선 인력부족으로 이를 실감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이태성 발전노조 한전산업개발본부 사무장은 “정부 발표 이후 170명이 추가 투입됐지만 ‘김용균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김용균 특조위)가 발표한 필요인원(490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2인1조를 할 수 있는 인원이 부족해) 작업 구간을 기존보다 늘리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하청노동자들이 원청기업에 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위험의 외주화’라는 구조적 원인이 자리잡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인 박광수씨는 “원청이 사용하는 (안전)장비를 하청노동자가 사용하기조차 쉽지 않은 게 현장 분위기”라며 “원청의 ‘갑질’을 개선하고 안전문제에 대한 책임이 강화돼야 하청노동자도 안전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안전을 위배하는 무리한 공정 진행 △원청의 안전관리 책임과 불명확한 역할 △안전에 대한 책임 없는 재하도급 확대 등의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임상혁 녹색병원 원장(조선업 중대산업재해 국민참여조사위원)은 “다단계 재하도급을 금지하되 필요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무리한 공정 진행을 방지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주희 김용균 특조위 특조위원은 “발전소에서 만난 안전담당자들은 특조위 권고도 실효성 없는 안전매뉴얼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며 “(각종 권고와 대책이) 잘 지켜지는지 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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