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지난 5년간 거두지 못한 불법 현수막 과태료만 400억원이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불법 현수막 단속한다 해봐야 사업주들의 ‘배째라 식 대응’에 꼼짝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29일 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서울시로부터 받은 ‘최근 5년간(2015년~2019년 9월) 불법 현수막 과태료 부과액 현황’에 따르면 이 기간 서울시의 불법 현수막 적발 건수는 320만4,703건, 과태료 부과액은 686억 7,034만원에 달한다. 하지만 납부액은 248억 9,131만원에 그쳤다. 징수율로 따지면 36.2%에 불과하다.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장은 현수막의 크기, 게시 위치, 기간, 개수, 내용 등을 점검해 현수막 게시를 허가한다. 허가 받지 않은 현수막은 모두 불법으로 철거 대상이다. 이 가운데 상습적으로 불법 현수막을 내거는 경우 현수막 1개당 15만~35만원 정도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그럼에도 현수막이 난립하는 건, 일단 과태료가 싸게 먹힌다는 생각에서다. 어디에 파격 분양이 떴다거나, 여기다 투자해두면 월 몇 십만 원씩 안정적 수입이 보장된다는 식의 부동산 관련 현수막이 대표적이다. 이런 현수막은 단속을 각오하고 내거는 것들이라 아예 수백, 수천 개를 한번에 집중적으로 내거는 물량공세를 펼치기도 한다. 한 구청 관계자는 “거래만 잘 성사되면 이득이 많이 남기 때문에 수백 개의 불법 현수막을 내걸고 과태료를 받아도 그게 싸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며 “건설업자들끼리는 ‘과태료가 곧 홍보비’라고 이야기 할 정도”라고 말했다.
과태료를 피하기 위한 꼼수도 동원한다. 수백, 수천 개의 현수막을 내걸되, 단속 직전에 자진 철거하는 방식이다. 일종의 ‘게릴라 전법’이다. 법의 허점을 이용하기도 한다.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 20조를 보면 과태료 부과 대상은 ‘현수막을 표시하거나 설치한 자’다. 광고주가 하청업체를 통해 불법현수막을 설치하는 경우 하청업체가 책임지는 식이다.
이 점을 이용해 하청업체를 폐업시키거나 폐업 신고 뒤 다른 업체를 차리는 경우도 발생한다. 복잡한 관계를 만들어 책임을 떠넘기기도 한다. 서울 강서구는 300건 이상의 불법 현수막이 적발된 한 건설업체에 15억원의 과태료를 부과했지만 아직도 받아내지 못했다. 하청업체 등 다른 법인을 끼고 내건 것들이 많다 보니 각 법인들마다 ‘이건 우리 책임이 아니다’며 회피하기 때문이다.
또 장애인 단체가 설치한 불법 현수막의 경우 과태료를 50% 감면해주는 제도를 악용하거나, 이의신청을 해 법정을 끌고 가면서 수년간 과태료를 안내고 버티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 때문에 불법 현수막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광고주에게 직접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구청 관계자는 “광고 계약 때 책임은 설치업체가 진다는 내용의 계약서를 쓰기 때문에 광고주는 법원에서도 빠져나가는 경우가 많다”며 “현수막 광고의 이익을 누리는 광고주에게 직접적 책임을 묻는 방향으로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안하늘 기자 ahn70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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