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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준의 균형] 아프리카 돼지열병

입력
2019.10.29 18:00
수정
2019.11.05 10:27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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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 DMZ. 국립생태원 제공
철원 DMZ. 국립생태원 제공

아프리카 돼지 열병으로 인해 나라가 떠들썩합니다. 지난 5월 북한에서 최초 보고가 있었을 때 올 것이 드디어 왔다는 생각이 많았습니다. 이미 올해 6월 말까지 2년 간 해외 반입 축산물 318건 중 17건(5%)에서 아프리카 돼지 열병 바이러스 유전자가 양성반응이 나타났으니 언제 터져도 터질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죠.

다만 이렇게나 삽시간에 북한 전역에 바이러스가 번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나 지난 10월 2일 비무장지대에서 발견한 멧돼지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되며 실재적 위협이 나타났습니다. 9월 16일과 17일 파주와 연천 양돈농가에서 ASF가 최초로 보고될 때만 해도 북한의 오염 정도는 잘 알려지지 않았죠. 그 이후 농가에서는 14건, 야생멧돼지에서는 15건이 확인되었고, 북한의 야생 멧돼지가 질병을 옮겼을 것이라는 추측이 지금도 지배적입니다. 북한 집돼지가 철책으로 접근할 리 없다는 것이 일반적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실 제가 듣고 경험해 온 사실과는 사뭇 배치되는 내용이었습니다. 북한과 비무장 지대의 멧돼지 수는 얼마나 될까요? 과연 한국에 필적한 수준의 개체군이 남아있기는 한 걸까요? 우리가 비무장 지대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심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알고 지낸 비무장 지대의 실체입니다. 산림 지역을 서식지 주요 장소로 활용하는 멧돼지에게는 숲은 그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숲이 남아있지 않다면 멧돼지는 1년 열두 달을 버티기 어렵습니다. 비무장 지대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야생 동물의 낙원일까라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하지만 서부 전선은 사계 청소 등 군사 목적에 따른 지속적 산림 훼손과 산불로 인해 남북 양측간 산림이 별로 남아있지 않습니다. 수많은 녹지대는 실제로는 칡이나 초지로 덮인 공간이기에 산림이 들어설 수 있는 공간이 적습니다. 그나마 비무장 지대기에 산림이 조금 더 남아있습니다. 남방 한계선 이남의 민간인 통제 구역은 지뢰 및 미확인 지뢰 지대로 인해 개발 압력을 꽤나 오랜 기간 피해왔고, 전망 확보 등을 위한 군사 작전 제외 구역이기에 산불로부터도 안전했습니다.

황폐화된 북한의 산림.
황폐화된 북한의 산림.

그 결과 한국 내 가장 우수한 생태 지대를 유지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인공위성 영상을 통해 바라본 북측 상황은 어떨까요? 적어도 제 눈에는 헐벗은 산만 잔뜩 들어옵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민둥산이 지천에 널려있고, 그나마 밭으로 개간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산림 황폐화는 농촌지역의 주연료인 임산 연료와 연관성이 있습니다. 산림이라도 남아있는 산들마저도 외따로 떨어져 있습니다. 생태적 연결성이 끊어져 있습니다. 거기에 가뜩이나 심각한 식량 부족은 반드시 야생 동물 수렵으로 연결되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멧돼지 개체군이 비무장 지대 인접지구에 얼마나 남아있을지는 이제 상식의 문제일 듯싶습니다.

황폐화된 북한의 산림.
황폐화된 북한의 산림.

왜 위치 추적기를 단 독수리가 북한에는 내려앉지 않고 한국의 민통선으로 바로 날아드는지 다시 한 번 이해가 되는 부분입니다. 따라서 짧은 시간 내에 북한 전체로 번진 ASF 문제는 방역 체계의 부재가 가장 큰 이유로 보이며, 가정집이나 협동 농장의 소규모 집돼지 개체군 전반에 문제가 번졌을 가능성이 농후해 보입니다. 아무데나 폐기한 집돼지 사체 혹은 그로 인해 감염되어 들판에 쓰러진 멧돼지 사체의 일부가 남으로 유입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황폐화된 북한의 산림.
황폐화된 북한의 산림.

따라서 앞으로도 당분간은 바이러스 유입에 마음을 놓을 수 없습니다. 여실히 나타나는 바와 같이 우리는 아직도 북한의 생태 환경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으며, 다시 우리 문제로 귀결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한반도는 떨래야 뗄 수 없는 연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정치 문제건, 경제 문제건, 생태 문제건 혹은 질병의 문제건 말입니다. 긴 호흡을 두고 살아 숨 쉬는, 균형 잡힌 백두대간을 다시 잇기 위해서는 우리가 넘어야 할 산들이 참 많을 듯 합니다.

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복지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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