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유사시’ 판단도 미군이 맡아… 한국 의사와 무관한 파병 길 열려
우리 정부와 군 당국이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후 한반도 주변 위기 상황뿐 아니라 미국 측 위기 상황에도 한미연합사령부가 대응하도록 하자는 미측 요구에 민감한 건 향후 한미 동맹의 정의까지 재정립해야 할 정도로 근본적인 관계 변화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집권 초부터 지속적으로 전통적인 동맹 개념에 대해 재정의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최근에는 쿠르드족-터키 사태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이 “미군의 임무는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하는 게 아니다”라며 “미군은 오직 중대한 국가적 이익이 걸려 있을 때만, 그리고 명확한 목표와 승리에 대한 계획이 있을 때만 싸울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2016년 대선 과정에서도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등에 파견된 미군 철수 공약을 내세우거나, 방위비 분담금 증액이 없으면 주한ㆍ주일 미군을 철수할 수 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실제로 미국은 이달 23~24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개최된 제11차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정(SMA) 협상에서 50억달러(약 6조원)가량을 한국이 분담해야 한다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의 경찰’ 역할을 하던 종전과 달리, 동맹국들과도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감안해 ‘주고 받는’ 관계로 바꾸겠다는 입장을 천명한 것이다. 따라서 이번 미측 요구는 전작권을 한국에게 넘겨주니 반대 급부로 미국의 필요에 따라 한미연합군이 미측 안보 상황에도 대응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계산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한국과 직접 연관이 없는 해외 분쟁 지역에도 미국이 한국군을 동원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점이다. 현재 평시작전통제권은 1994년부터 한국 합동참모본부 의장이 갖고 있지만, 한미가 합의한 ‘연합권한위임사항(CODA)’에 의해 연합위기관리, 작전계획 수립 및 발전, 연합 연습 등 6개 사항에 대한 권한은 한미연합사령관이 행사하고 있다. 특히 위기가 발생했을 때 전시로 이어질지 판단하는 권한이 한미연합사령관에게 있다. 현재는 ‘한반도 유사시’로 연합사의 위기 상황 개입 범위가 정해져 있어 큰 문제가 없지만, 위기 발생 지역에 미국이 포함되면 평소 미국군 대장이 맡고 있는 연합사령관 판단에 따라 호르무즈 해협 등 우리 안보와는 다소 동떨어진 지역에도 한미연합군이 투입되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한미 동맹의 근간인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손을 대는 등 기존 한미 동맹을 재정립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한미 상호방위조약은 통상 태평양 지역 정도까지 한미 동맹의 역할을 규정하는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지만, 미측이 호혜적 동맹을 강조해 한국의 역할 확대를 강조하면서 조약 개정을 요구하면 거부할 명분이 없다는 해석도 적지 않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미국의 의도대로 한미 동맹이 종전의 비대칭적 관계에서 대칭적으로 바뀔 순 있다”면서도 “대칭적 관계로 한미 동맹이 설정되면 당당해질 수 있지만 그만큼 우리가 부담해야 하는 의무는 커진다”고 말했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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